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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Aug 08. 2018

여전히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집 앞에 잠깐 빵을 사러 나갈 때든, 멀리 며칠 여행을 갈 때든, 꼬박꼬박 카메라를 하나 들고나가는 것은 내 오랜 습관 중 하나이다. 이제는 스마트 폰만 있으면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크고 무겁고 번거로운 카메라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대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게 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는 성에 차지 않는다. 찍는 느낌도, 가지고 노는 맛도, 그리고 솔직히 사진 결과물도.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니콘 D750. APS-C로 만족할 수 있을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차이가 나긴 나더라.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00년도부터였을 것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집에 있던 전자동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가 지금처럼 보급되기 전 - 혹은 비싸고 특수한 무언가로 생각되던 시절 -, 많은 사람들 집에 재산처럼, 장식처럼 있었을 법 한 까만 전자동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친구들 사진을 찍었었다. 필름도, 현상 인화비도 지금에 비해 무척 쌌었기에, 별생각 없이 인화를 해서 친구들에게 사진을 선물했었다. 정말 별것도 아닌 사진들이었지만 자기들의 사진을 받는 것에 다들 무척 기분 좋아해 했고, 아마도 그때 좋았던 기분이 지금까지 사진을 좋아하게 된 이유들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그 당시 가지고 다니던 필름 카메라. 물론 지금은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도 언젠가 버려졌겠지. (출처 : https://goo.gl/HHEDY9)

그 이후, 여러 카메라를 사고, 팔고, 써왔다 (다행히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은 한 번에 불과하다). 한동안은 필름 카메라를 썼고, 과정이 비싸고 귀찮다는 생각에 모두 처분하고 디지털카메라들을 전전하다, 필름의 재미를 못 잊고 다시 필름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길 몇 차례, 이제는 필름과 디지털, 큰 카메라들과 작은 카메라들을 (아마도) 적당히 조합해 정착을 하게 되었다.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아내 것을 모두 합쳐 무려 10대.

- 니콘 F6, 니콘 D750, 니콘 FM, 후지필름 XE2, 리코 GR1, 리코 GR (그리고 몇 개의 렌즈)

- 아내의 리코 GR2, 로모

- 2대의 인스탁스 카메라


아내 또한, 나를 만나기 전부터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좋아했었다 했다.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것을 좋아했던 관계로 본인의 예전 사진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은 둘이 함께 다니며 서로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고, 많은 사진을 함께 남기고 있다. 둘이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그리고 사진을 좋아하는 것도 잘 맞아 다행이라는 생각.

아내의 로모. 난 아내가 로모로 찍은 사진들을 무척 좋아한다.
한 번 샀다가 고장이 날 거라는 무서움에 팔았었지만 잊지 못해 다시 들이게 된 리코 GR1s. 정말 좋다. 고장나면 또 살 거다.

아내와 손 잡고 많은 나라들을 다닐 때마다 우리들 손에는 다양한 카메라들이 들려있었다. 대단한 작품 사진들을 찍는 프로들은 아니지만, 수없이 많이 찍어온 사진들을 아내와 함께 볼 때면, 사진을 찍은 순간들, 그때의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기억난다. 어떤 날이었는지, 왜 그곳을 그 순간 지나갔었고,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느낌은 어땠는지. 그리고 보통은, 그런 기억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신기할 정도로 생생하게, 어떻게 이런 디테일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멋지게 잘 나온 사진이든, 아침에 찍어 아직 눈이 퉁퉁 부어있는 사진이든, 유명한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이든, 특징을 알 수 없는 평범한 곳에서 찍은 사진이든, 사진들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 사이에서 늘 새롭게 태어난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은 그래서 만들어진 걸까.


아내의 리코 GR2와 내 GR.

사진과 글을 좋아했기에, 예전부터 여러 차례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도전했었다. 싸o월드와 같은 공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진과 글들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쓰기도 했고, 그 후에는 티x토리 블로그를 2년 정도 운영했었다. 혼자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것들, 찍은 사진들, 일상에서 가지게 된 생각들...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 후 아내와 1년 동안 여러 나라들로 신혼여행을 다니며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고, 즐겼던 많은 순간들... 프랑스로 건너와 많은 것들이 조금 빡빡해지면서 블로그 운영은 접게 되었지만, 즐겁고 좋은 기억이었다.


한편, 트위터, 페이스북은 물론 인스타그램, EyeEm, 500px까지, 다양한 통로를 통해 사진을 올려왔지만, 이러한 서비스들은 늘 뭔가 참 아쉽다. 아껴왔던 사진들을 타인들에게 보여주고 다른 이들의 사진을 찬찬히 감상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빠른 속도로 스크롤을 내리고 모든 것을 소비해버리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또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하고 싶지는 않고. 새로 찾게 된 이 공간에 아마 뿌리를 내리게 되겠지 싶다. 앞으로도 계속,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 테니,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이야기들과 보이고 싶은 사진들이 늘어날 테니.


(아래는, 비교적 최근에 찍은 몇 장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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