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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May 04. 2019

여성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왕좌의 게임 시즌 8 에피소드 3

<< 글 전체가 스포일러입니다 >>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큰 인기에는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제게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다양하고 강한 여성 캐릭터들, 그리고 그녀들의 삶의 전략들을 표현하는 방식을 망설이지 않고 고를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시즌 8 에피소드 3을 이야기하자면, The Long Night의 최고의 영웅은 누가 뭐래도 리안나 모몬트와 아리아 스타크 되겠습니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첫 등장부터 늘 당당하고 멋지던 리아나. 어린 나이에도 위엄과 신념, 의리와 충성을 보여줬던 정말 인상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작은 집안의 어린 여성에게 어떠한 자리도 주어지지 않을 성인 남성들의 세계에서 단 한순간도 기품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간 그녀. 많지 않은 등장 동안 그녀가 남긴 명언들과 명장면들 중 (https://scatteredquotes.com/characters/lyanna-mormont/)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볼튼에 대적하기 위한 군사를 모으던 회의입니다. 자신들이 보낼 수 있는 군사가 62명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존이 어이없음을 숨기지 못하며 '62명?'이라고 되묻자 여전히 결연한 자세로 덧붙이죠. 우리는 작은 가문이지만 모두 자랑스럽게, 일당십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비웃음을 살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눅 들기 십상일 장면에서도 그녀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합니다 (족보만 들이대는 대니와 생각하는 기능을 잃은 존은 리아나에게서 좀 배우라고...).


그리고 전쟁 전야, 미래를 위해 몸을 사릴 것을 권하던 조라의 권유를 거절하고 함께 싸우기로 결심한 그녀는, (아마도) 가장 작았던 전사로서, (용 다음으로) 가장 큰 적을 상대로 만서 싸우다 결국 장렬하게 전사하고 맙니다. 절대적인 죽음 앞에서 소리 지르며 앞으로 달려들던, 그리고 크게 한껀 한(...) 그녀를 보며 주르륵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으아아아... 네가 거인을 때려잡다니... ;ㅁ;




아리아야 뭐... 사실 두 번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굉장한 전사 - 암살자이죠. 그럼에도 다시 새삼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물론 에피소드 3에서 그녀가 보여준 어마 무시한 활약과 더 어마 무시한 능력 때문입니다. 춤추듯 흐르며 모두 베어버리는 검술,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보다도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몸놀림, 그리고 무엇보다, GOT 시즌 2부터 7까지 말도 안 되게 험난한 길을 걸어오며 다져온 의지력. (무한히 쓸데 없던 존과 달리) 쉬지 않고 얼음 좀비들을 때려잡던 아리아의 용맹함은, 평생 불을 무서워하던 하운드조차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게 할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잠시 전의를 잃고 패닉 상태에 놓이기도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미 전설이 된 명대사 Not Today 한마디를 남긴 후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나이트 킹을 박살 내며 삶과 죽음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은 위대한 영웅이 되지요. 아아아... 으아아아... 얼마나 소리를 지르고 허우적거렸는지요...ㅠㅁㅠ



리아나와 아리아, 여자아이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주변 인물로부터 빈축을 사곤 했던 이 두 작은 캐릭터들은, 실제론 어떤 성인 남성들 보다도 훌륭하고 강한 군주였고 전사였지요. 결국 중요했던 것은 그녀들의 성별도, 나이도, 신체적 조건도 아닌, 자신들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도전에 응하고 어려움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와 실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드라마를 즐겨온, 그녀들의 승리의 순간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지른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만약 그녀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만약 처음부터 리아나와 아리아가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정치와 검술 등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녀들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지요. 극 중에서 그녀들은 물론 상대적으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비교적 좋은 집안 출생이었고, 아리아의 경우 아버지 배려 덕에 좋은 스승에게 수준 높고 적합한 검술 교육을 받을 수 있었죠. 존에게 좋은 검을 선물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남녀 불평등이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모든 여성들이 저런 운을 타고났을 거라 생각하긴 어려울 겁니다.


마 전에 Girl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크게 유행을 했었죠. 만약 우리가 '여자는 남자와 달라서' 등등의 말들을 앞세워 차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만들어내고 강요해온 차이들을 없애 나간다면, 모든 여성들은 남성들이 할 수 모든 있는 것들을 당연히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을 나눠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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