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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Jun 07. 2024

저는 ‘장기기증 희망등록자’입니다.

크으… 그 양반 갈 때도 예술로 가는구만

  나의 지갑에는 남들이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카드 한 장이 항상 수납칸을 지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갑을 바꾸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꺼내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카드이면서도 내가 집 밖을 나설 때마다 항상 챙겨나가는 아주 요상한 카드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모두 아니다. 이 카드는 ‘장기•조직기증 희망등록증’이다.


  그렇다. 나는 장기기증을 희망했다. 좀 고상하게 표현을 해보자면 나는 뇌사단계에 빠져들거나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여러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해 주게 된다. 종류도 다양하다. 심장과 안구와 같은 장기는 물론이고 심장판막과 같은 인체조직까지 포함되어 있다. 

   2012년 12월 8일에 등록을 신청했으니 꽤나 오래되었다. 그 당시에 나는 보건복지부 대학생 기자단으로 활동 중이었기에 정부의 장기기증 정책을 자주 접했던 터라 기증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낮았었다. 그리고 결정타로 기말시험을 준비하다 케이블 TV에서 보게 된 영화 때문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이 영화는 시한부 인생이나 장기기증과는 1도 관련이 없는 현재까지도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타짜‘이다.


크으… 그 양반 갈 때도 예술로 가는구만


  이 대사는 ‘타짜’의 명장면인 고니와 아귀의 도박씬에서 나온다. 뜬금없지만, 이 대사를 곱씹게 되면서부터 나의 장기기증 희망의사가 시작되었다. “정말 예술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건 어떤 걸까?”라는 질문의 답이 나에겐 ’장기기증‘이었던 것이다.  한 줌의 재가 되기 전에 짧은 시간만 견뎌내면 꺼져가는 수많은 삶들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데 이만큼 숭고하고 고귀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결심을 한 뒤에는 조금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내가 태어난 생일날, 나의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을 결정했다. 


  장기기증을 마음먹고 나서 주변에 관련이야기를 하면 좋은 반응은 없었다. 머랄까 분위기가 차가워진다고나 할까? 최근에도 지인들이 나의 지갑에서 ‘장기•조직기증 희망등록증’을 보게 되거나 술자리에서 우연히 장기기증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얘기하다 보면 지인들은 항상 얼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도 않았을뿐더러,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죽고 나서도 다시 수술대에 올라 장기가 적출된다는 생각을 하면 얼굴이 찌푸려지는게 당연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장기기증을 하고 나서 시신을 방치했다는 등의 안 좋은 얘기들이 있어 아직까지 거부감이 있다고들 한다. 이러한 얘기들은 현재로서는 분명히도 없는 이야기다. 기증자 예우를 위해 공공기관인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서 장례절차 안내와 같은 유가족 지원, 기증자 이송, 장제비 지원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요즘에는 예우를 안 했다가는 SNS에 모든 것이 알려질 터라 예우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이러한 기증자 예우도 내가 지금까지 장기기증 희망을 철회 없이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의 보도자료를 통해 기증자의 기증사실이 언론으로 보도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게 장기기증 소식이 알려졌으면 한다. 언론에 보도되어도 문제없을 만큼의 안정적인 삶을 살아나갈 것이기에, 나의 일생과 세상에 남기는 나의 마지막 선물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널리 확산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을 희망등록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인들이 나의 소식을 듣곤 장례식장에 찾아와선 슬픔보다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 이종원 이 새끼 진짜 죽을 때도 예술로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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