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아닌 '둘'이어야 비로소 완전해진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금의 야근을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던 평일의 초저녁. 나의 아침 출근길을 위로해 주고선 낮시간 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던 에어팟을 손에 쥐었다. 그러곤 몸에 배어버린 습관대로 본체에서 왼쪽 유닛부터 꺼내어 차례대로 귀에 꽂고선 즐겨 듣는 노래를 재생했다. 제법 괜찮았던 하루에 걸맞게 자연스럽게 노래가 흘러나왔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제법 오래된 사이여서 그런지 투정을 부리는 듯 삐그덕 거렸다.
2022년 6월 즈음에 첫 인연이 시작되었으니, 날짜로만 치면 2년 3개월에서 4개월 정도를 한 몸처럼 지내왔다. 이렇듯 길었던 시간 동안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나의 생일 무렵에도 나를 떠나갈 뻔했지만, 빠른 수습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그날부터 나만 모르게 혼자서 끙끙 앓는 속앓이가 시작되었고, 참을 만큼 참다가 결국에 임계점을 넘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렇게 영영 떠나버리게 된 것이다.
퇴근을 위해 일어섰던 몸을 다시 의자에 앉히고는 '시스템 종료'가 아닌 인터넷에 접속했다. 검색포털에서 '에어팟 프로 연결 불량', '에어팟 프로 한쪽 안 들림' 등을 검색하며 공장초기화도 해보고 블로그 등에서 소개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엔 에어팟의 왼쪽 유닛은 더 이상 나의 퇴근길을 축복해 줄 수 없었다.
출퇴근을 BMW(Bus Metro Walk)로 하는 나로서는 에어팟이 고장 났다는 사실은 하루종일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어야 하거나 또는 들었던 나에게 지하철에서 조차도 갖가지 소음을 마주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함을 의미한다. SNS에서 보았던 어떤 짤에서 직장인의 찐 광기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 안 끼고 휴대폰 안 보고 허공 응시함"을 언급한 적도 있으니 출퇴근길에서 위로와 행복을 주는 음악감상은 비단 나만의 행동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나저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한쪽만 데려가시나요.
노래를 듣지 않고는 힘든 퇴근길이기에 오른쪽으로는 반쪽의 사랑 노래를 듣고 왼쪽으로는 누군가들의 인생사와 같은 도시의 소음을 공감해 가며 지하철에 몸에 맡겼다. 노이즈캔슬링을 하고서도 왼쪽으로는 소음이 들려오다 보니 왠지 모르게 또, 어쩌면 당연한 부조화를 느꼈다. 차라리 애초부터 하나였으면 이렇게 까지는 생소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서라도 혼자에 익숙해져야 될까?
다시 이어지지 않을 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괜스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속 연결을 해제했다가 재차 연결하기를 반복하면서 두 개의 유닛이 하나의 사랑노래를 뿜어내기를 기다려본다. 차라리 두쪽이 모두 고장 났으면 좋았을 텐데, 마치 지독했던 이별 후의 짝사랑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집 근처 지하철역인 신림역에 도착했다. 누군가에게는 나와 같은 퇴근길로, 누군가에는 청춘의 화려한 밤의 시작일 이 시간에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는 한 커플이 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고, 결국 여성분이 먼저 울음을 터트리고는 남자분을 떠나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도 안타까운 공기의 흐름을 공유했다.
신림역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짧은 걸음길에서 역에서의 커플을 떠올리며, 에어팟 한쪽이 고장 난 지금의 나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침 출근길의 나처럼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다가 한순간에 반쪽을 경험하게 되어버린 이런 상황.
개찰구 앞 커플이나 나의 에어팟은 문제점이 해결되어 다시 '둘'이 되거나 새로운 인연을 찾을 때까지는 불편함과 공존해 나가야 한다. 원래 반쪽 + 반쪽이 완전체였던 만큼 하나는 불완전하기에 반쪽은 또 다른 반쪽을 기다려야 할 뿐이고, 그 기다림의 아픔은 언제나 오롯이 혼자 감당해나가야 하기에 아픔이 크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다.
P.S.
나는 현실에서의 연애와는(사랑은 사랑으로 잊어야 한다?) 다르게 곧장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로켓의 속도와 함께한 다음날 아침, 기존의 인연과 외적인 모습은 비슷하지만 내면은 더 좋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새로운 인연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상형과 물건의 취향에도 공통점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