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원 Jul 19. 2024

'꽃'보단 '꽃말'을 선물합니다.

과꽃: 나의 사랑은 당신의 사랑보다 깊다

  장마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우중충했던 어느 주말. 지하철에서 샛노란 꽃을 든 중년의 신사분을 보았던 적이 있다. 꽃을 들고 있는 본인의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장미처럼 새빨간 얼굴이 되셨지만, '꽃'의 안전을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이셨기에 지하철의 승객들은 자발적으로 안전거리를 유지하곤 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사분이 무사히 지하철에서 내리셨을 땐 나는 자연스레 신사분의 미래를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출구로 향하는 신사분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여사친들과의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성분들이 남자들의 꽃 선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과 연관성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사람이 꽃집에 가서 (수줍게) 꽃을 주문하고 또, 자신에게 전달해 줄 때까지의 수고로움이 오롯이 전달되어서라는 내용이었다.


꽃집... 어색하지.... ㅎ

  적은 경험이기는 하지만 꽃을 구매하고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하나씩 곱씹어 보면 여사친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꽃의 구매 단계에선 '꽃'보다는 '꽃봉오리'에 가깝지만, 상대방에게 전달되기까지 설레고 힘든 과정을 겪음으로써 비로소 꽃이 활짝 피어나는 느낌이다.


  위에서 적은 경험이라고 이미 밝혔지만, 나에게서 꽃은 매우 매우 희소성을 가진 아이템이다. 꽃을 받은 적도 별로 없거니와 선물한 적도 손에 꼽는다. 최근의 기억으로는 여자친구의 학위수여식에서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파란 장미’를 선물했었고, 직장에서 형들과 술을 마신 후에 유부남들의 생존권을 지켜주고자 꽃을 구매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선물한 꽃의 꽃말은 (형수님들에 대한) 감사 (헌신)이었다. 이를테면 "Thank You For Your Service"랄까?


  나는 이처럼 꽃집에 가면 꽃의 형태와 색상보다는 꽃말을 유심히 확인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예쁘고 화려한 유형의 꽃이 아니라 꽃이 가진 무형의 의미를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을 선물할 때면 상대방에게 이 꽃을 왜 주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한 다음에 매대에 올려진 꽃들을 위에서부터 쭉 훑어보곤 가장 적절한 꽃말을 가진 꽃을 선택한다.


(예전에는 일일이 사장님께 꽃말을 물어보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대부분의 꽃집에서 꽃과 함께 꽃말을 적어놓아 구매가 한결 편해졌다.)


  예를 들면 힘든 일은 겪은 친구에는 '밝은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소국'을 선택하고 썸을 탈 때에는 '설렘'의 뜻을 가진 '킹스톤',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는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리시안셔스'를 선택하는 식이다. 그렇게 꽂을 구매하고 나면 어색하게 손에 든 채로 주말에 보았던 중년의 신사분처럼 혹시나 꽃이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이동을 거쳐 상대방에게 무사히 꽃을 전달한다.


꽃말을 알고 나면 꽃은 감정이 된다.


  평생을 대문자 I로 살아온 내향적인 성격 탓에 대면한 자리에서 꽃말을 말해주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약속을 모두 마치고 집에 갈 때나 집에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메시지를 보내며 꽃말을 전달하곤 한다.


  그렇게 뒤늦게나마 꽃말을 알게 된 상대방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의 진심을 알게 되고, 시간이 흘러 꽃이 시들더라도 나의 진심은 잔잔한 꽃향기와 같이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



  꽃 선물이 어색하지만, 받고 나서 기뻐하는 상대방을 보면 왠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선물한 꽃을 통해 너의 얼굴에서도 웃음 꽂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빠 나, 친정 갔다 올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