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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Feb 22. 2024

사랑은 사랑으로 잊어야 한다?

나는 반대한다.

‘연애’라는 행위를 하지 않은 지 2년 5개월쯤 되었다. 그렇게 연애를 쉬어가는 동안 좋은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을 둔 덕분에 셀 수 없이 많은 소개팅을 제안받았다. 특히나 소개팅을 통해 연애 중이거나 결혼에 성공한 사람들은 나에게 소개팅 기법에 대한 코칭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나는 한사코 소개팅을 거절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호의를 베풀던 그들의 입에선 육두문자에 근접한 비난이 쏟아졌다. 


“너 결혼 안 할 거야?”, “지금 놓치면 다시는 이런 기회 없다?” 등등 다양한 겁박과 회유를 받았지만, 마음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거절의 이유를 설명하는 듯한 침묵의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나면 나의 연애 서사를 알고 있는 지인들의 얼굴엔 마치 맹자에 빙의한 듯 얼굴 한 가득히 측은지심이 드러났다.


“혹시 아직 못 잊었어? 사랑은 사랑으로 잊어야 해.”   

지인들의 물음에 나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그들의 추측이 꼭 맞았다. 나는 여자친구를 못 잊었다. 일상의 걸음걸음마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볼 때마다 항상 생각이 났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생각이 났고, 어느 날엔 꿈에서도 등장해 나를 더욱더 힘들게 했다. 여자친구와 나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을 알고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했기에 헤어지고 나서도 다른 지인들과 함께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보는 사이였다. 그게 되려 독이 되었는지 잊혀질 때쯤이면 다시 리셋되었다. 


결국엔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사라졌던 불면증이 다시금 나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잠에 들면 여자친구와 행복했던 시간들이 꿈에서 반복되었고, 그러다 눈을 뜨면 연락조차 쉽게 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현실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새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와 매일매일을 함께 했다.  


스스로도 ‘청승’이라 생각하는 나날들을 보냈지만, 지금은 다행히 과거형이다. 이제는 여자친구를 잊었냐고 물어본다면 “잊었다.”라고 입 밖으로 낼 수 있을 만큼 무뎌졌다. 그리고 그동안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가지 않은 건 자기 합리화의 느낌도 들지만, 그만큼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는 나의 의사표시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러 지인들의 말처럼 “사랑은 사랑으로 잊어야 한다.”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가끔 저 말을 들을 때면, 업무 중에 열심히 작성한 계획(안)을 실수로 이전 버전으로 덮어버렸던 끔찍한 일이 생각난다. ‘나의 연애 최종(안)_v3_FFF’와 같은 연애가 순식간에 ‘나의 연애 최종(안)_v1’으로 되돌아와 진심을 숨겨둔 채 새로운 글인 것 마냥 처음부터 다시 써 내려가야 하는 느낌이다. 또, 사랑을 사랑으로 잊으려 한다는 게 마치 이전의 연애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보잘것없게 만드는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내가 사랑을 사랑으로 잊어본 경험이 없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의 연애와는 달리 장기간의 이별 준비를 거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에 나의 생각이 꼭 정답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사랑을 사랑으로 잊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도 합리적인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저 '행복'이라는 단어의 뜻을 체감시켜 준 소중했던 사람을 한순간에 쉽게 뜯어낼 수 있는 메모지처럼 취급하는 걸 분명히도 슬픈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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