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원 Feb 15. 2024

결혼은 법률상 계약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계약의 상대방이 없다.

설날을 맞아 할머니를 뵙기 위해 KTX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20살의 대학생활부터 33세의 직장인이 되기까지의 생활을 모두 수도권에서 해왔기에 명절마다 귀향길에 오르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지만, 요 몇 년 새 익숙치 않은 일들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제는 명절 승차권을 예매할 때부터 걱정이 앞선다.


나의 걱정거리는 많은 미혼남녀들이 올해도 겪었을 '결혼 독려'이다. 나의 경우에는 우연하게도 사촌 동생들이 결혼을 다들 이른 나이에 해버렸고, 귀여운 조카들도 여럿이다. 이런 조카들을 부모님이나 할머니가 마주할 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결혼 독려' 이야기가 시작된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주제로만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명절 때마다 이루어지다 보니 나는 이러한 '결혼 독려'를 지인들에게는 ‘결혼 공격’이라고 지칭하기로 했다. 어른들의 말씀에 ‘공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만큼 내가 받는 피로감이 상당함을 대변한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거나, 결혼을 꿈꾸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현재로서의 나에게 결혼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할 뿐이다.


수년이 흘렀지만. 대학에서 ‘가족법(친족·상속법)’을 수학하던 때에 교수님께서 "결혼은 계약이다."라는 말을 하셨던 적이 있다. 실제로 2015년 9월 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선고한 이혼 판결에서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혼인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했다.

"혼인은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여 부부의 실체를 이루는 신분상 계약으로서, 그 본질은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인격적 결합에 있다."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의 말을 접했을 때에는 이론적으로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막 성인이 된 청춘에게 혼인은 법률상 계약에 해당하고 이를 위해선 '혼인의사의 합치'라는 실질적 요건과 혼인의 신고라는 형식적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이 와닿을 리가 없었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이제서야 관련된 내용을 다시금 들춰보니 이제서야 학문이 아닌 생활의 영역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위에서 말한 '혼인의사의 합치'에는 민법 제812조(혼인의 성립)에 따른 혼인신고 의사를 혼인의사로 보는 '형식적 의사설'과 사회적인 관계에서 부부관계를 설정하려는 의사를 혼인의사로 보는 '실질적 의사설'이 있다. 당연하게도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실질적 의사설'을 취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에 나온 판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 즉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로서 신고된 것이 아니면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간의 혼인관계는 무효이다.”

'혼인의사'는 판례에서 밝힌 바와 같이 결혼을 하고자 하는 쌍방의 의사가 맞아야만 비로소 요건을 갖춘다. 이러한' 혼인의사'에는 플라토닉 같은 사랑이 전제되어 있을 것이고 부가적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경제적 상황 등이 혼인의 조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부가적인 조건과 관련해서는 사람들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를 것이고, 이로 인해 고부갈등 등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부정할 수 없다. 미래의 나조차도 결혼에 어떤 조건을 붙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릴 듯이 매서운 '결혼 공격'을 당한 설 연휴를 보낸 뒤, 직장에서의 야근을 마치고 홀로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나는 아직까진 부가적인 조건을 '혼인의사'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여기에는 "내가 뭐라고"라는 약간의 자존감 낮은 생각도 깔려 있지만, 부가적인 조건보다 더 급한 계약의 상대방이 없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


현재의 나는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한 제안서를 작성하는 단계이고, 상대방이 나를 믿고 계약할 수 있도록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계약의 선행 조건이 달성되어야 나는 비로소 평생을 함께할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교수님이 알려주신 협의상, 재판상 계약파기 방법을 법 이론으로만 머릿속에 남겨둘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주제와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2015년 판결에는 결혼을 준비하는 또, 결혼한 모든 이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 있기에 다음과 같이 기재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는 혼인의 본질이 요청하는 바로서, 혼인생활을 함에 있어서 부부는 애정과 신의 및 인내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고 보호하여 혼인생활의 유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혼인생활 중에 장애가 되는 여러 사태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일시 부부간의 화합을 저해하는 사정이 있다는 이유로 혼인생활의 파탄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사랑으로 잊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