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프랭클린의 명언 해석기
시간은 금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정확히는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이다. 그런데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돈’이 ‘금’이 되어서, 벤저민 프랭클린이 최초 의도했던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다소 확대해석되어 버렸다. 원래는 1748년 출판된 에세이 <젊은 상인에게 주는 충고(Advice to a Young Tradesman>에서 이 말을 썼다는 사실에서도 이 발언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다.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 말을 두려워해야 한다. 돈이야 어떻게 해서든 벌면 되겠지만 시간을 벌 수는 없는 법인데, 왠지 우리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사는 것 같다. 시간이란 개념은 참으로 기묘하다. 현대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을 별개로 보지 않고 ‘시공간’이라는 하나의 연속체로 다룬다. 따라서 시간이 없다면 공간도, 공간이 없다면 시간도 존재의 근거를 잃게 된다. 모든 존재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천 위에 올려진 당구공과 같아서,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곧 그 존재의 모든 변화와 인과관계가 정지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느끼기에 시간은 늘 미래로만 흐르지만, 이는 거시적인 엔트로피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며, 미시 세계의 물리 법칙 안에서 시간은 본래 방향성을 따지지 않는다. 이러한 시공간의 왜곡이 극단에 달하는 곳이 바로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너무나도 무거워서 주변의 시공간을 극단적으로 왜곡시킨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시공간이 휘어지는 블랙홀의 경계를 물리학에서는 사건의 지평선이라 부르며, 이곳을 기점으로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의 상식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시간이라는 게 뭘까? 조금 전에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시간이라는 천 위에 띄워져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시간 없이는 딛고 서있을 바닥이 없는 셈이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가진 질량으로 이 시간의 천을 아래로 내리누르며 서 있기 때문에, 이 천의 표면을 (작은 블랙홀이 그러하듯) 조금이나마 휘어뜨렸을 것이다. 물론 내가 지구 같은 행성만큼 무겁지는 않으니 그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나라는 하찮은 존재마저도 시공간에 아주 약간이라도 왜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나만의 방식으로 미묘하게 휘어 돌아간다. 인간의 수명이 100년쯤 된다고 말할 때면 이 100년이라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터무니없이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대충 1년이 100번쯤 반복되면 필히 내 시간은 끝날 것이다. 시간이 금이라는데, 유튜브며 게으름이며 공상 따위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는 이 금덩이를 사탕처럼 녹여먹는 철없는 인간이다. 그러나 이건 내게 주어진 나의 금덩이이니, 나는 이걸 내 맘대로 활용할 자격이 있다. 시간의 파도는 내 어리석음의 질량에 짓눌려 힘없이 휘어지고 늘어진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실제 문장이었던 ‘시간은 돈이다’로 돌아가보자. 시간은 정말로 돈으로 환산되고 있다. 시급, 주급, 월급, 연봉. 모두 각자의 질량에 따라서 시간이 제각각 휘어져있다는 내 이론이 맞는 것 같다. 누군가의 시간은 시간당 1만 원을 조금 넘고, 누군가의 시간은 시간당 수십, 수백, 마구잡이로 늘어나는 걸 보면 말이다. 이제 시간은 인류에 의해 얼마든지 거래가 가능한 재화 정도로 격하되었다. 내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한 시간에 1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을 지불하면 나는 아르바이트생이 나 대신 일하는 시간만큼 내 시간을 다른 곳에 쓸 수가 있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시간을 ‘벌어들일’ 수는 없지만, 남의 시간은 돈을 주고 구매할 수는 있는 셈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노동은 이 ‘시간’을 사고파는 행위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만 내가 가지고 태어난 이 100개쯤 되는 금덩이(시간)는 내가 아무 데도 안 쓰고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해서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는 건 또 아니므로, 이걸로 자꾸자꾸 거래를 해야 한다. 돈이랑도 바꾸고 경험이랑도 바꾸고 행복과도 바꿔야 한다.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온전히 내 결정이므로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할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해보자면 오직 이것만이 내가 가진 전부임을 인정해야 한다. 돈과 명예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이 창조해 낸 가치이지만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창조물이 아닌, 태초부터 존재한 어떤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은 이데올로기든 플라스틱이든 여러모로 불완전한 지점들이 많지만 우주의 결과물이나 자연의 피조물은 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생태계가 그렇듯이, 별들의 운항이 그렇듯이, 시간에도 일말의 허점이나 오류가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이 100개의 금덩이를 다 써버리고 나면, 지금 내 발밑에서 매끄럽게 구불거리는 시공간의 천은 가차 없이 일순간에 쓱 하고 사라져 버릴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자. 우리 모두 끝을 모르는 어두운 심연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시간이 왜 금인가? 시간이 왜 돈인가?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으로 더 벌지 못하도록 고안된 이 시간을 ‘사들이기라도 할’ 요량으로 꾀를 부려 만들어낸 것이 고작 ‘금’이고 ‘돈’이었다. 시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임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깨우친 영리한 자들이 이렇게나 교묘한 방법을 잘도 고안해 냈다. 나의 시간에 남의 시간을 더해서, 원칙적으로 100개쯤 주어진 자신의 금덩이를 실제로는 200개 가진 것처럼 쓸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내 마음 또한 솔직하고 당연한 것이다. 과연 내가 가진 시간을 남에게는 한 톨도 내놓지 않는 채로 살아갈 수 인간이 존재할까? 노동 없는 인간,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은 정말로 드물 것이고 하물며 나는 그런 삶이 딱히 멋진 삶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 시간을 아주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따름이다. 내가 가만히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있을 때에도, 잠들지 못해서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는 순간에도, 날씨 좋은 계절에 공원 잔디밭에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말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는 찰나에도 나는 나 자신이 이 녹아내리는 시간의 금빛 물줄기를 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만이 내가 가진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아주 똑똑히 잘 보고 있어야 한다. 나의 시간이 나의 질량에 짓눌려 어떤 모양으로, 어떤 방향으로 휘감기고 펼쳐지는지를. 내가 나의 시간을 가지고 어떤 거래를 하고 있는지를.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나의 시간의 흐름이란 얼마나 아깝고 슬픈 것인지를… 시간은, 무슨 수를 써도 벌어들일 수 없다. 돈은, 시간을 내고 벌어들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한다. 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을 돈으로 바꿀 수는 있을지언정, 적어도 내게 있어서 시간은 그냥 돈이 아니다. 내가 가진 이 금덩이는 그깟 돈보다는 훨씬 더 값지고 가치 있으므로 그런 종류의 비유 자체가 일면 모욕적이라고까지 느낀다. 나는 돈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그저 시간을 지나치게 사랑할 따름이다. 여태까지 녹여먹은 시간들의 일분일초를 지나치게 많이 사랑한 나머지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게 너무 싫었던 나는 지금 경제적으로는 쬐끔 큰일이 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자의적으로 흘려보낸 그 어떤 시간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할 수 없다! 하던 사업을 멈추고 떠났던 한 달간의 이집트 여행, 야간자율학습시간을 몰래 빠져나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노래방, 일하지 않고 게임만 주야장천 해대던 날들까지 모두가 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었고, 지금의 나는 그 황금빛 시간의 물줄기를 흠뻑 뒤집어쓴 채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내가 헛짓거리하며 시간을 낭비했다며 비난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 나는 그 모든 시간을 녹여서 지금 여기에 도착했으므로. 그 어떤 시간도 결코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없으므로. 지금의 내가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앞으로 남은 시간에 다시 한번 희망을 걸고 또 시간의 강 위에서 힘차게 노를 저을 것이므로. 때로는 돈과 바꾸고, 때로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저녁식사로 바꾸고, 때로는 외로움과 슬픔에 잠긴 눈물과도 바꾸면서 내 시간이 남의 발밑이 아닌 내 발밑에서 녹아내리게 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다. 늘 그랬듯 녹아내린 시간은 결국 나를 지탱해 준다.
오직 나의 시간만이 오롯이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