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깨달음에도 단계가 있다

by joni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불교 선종의 화두에서 유래한 말.


깨달음의 단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문자 그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가, 깨달음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얻고 나서는 다시 ‘산은 여전히 산이고, 물은 여전히 물이다’로 귀결되면서 이미 있던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이만큼의 깨달음에 도달해 본 바가 있었는지를 자문해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교적 신앙심을 실천하며 살지 않기에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깨달음은 인간의 한평생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와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해 온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 사람을 보이는 그대로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인식하여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닌 걸까?’라는 식의 혼란을 겪는 순간이 온다. 그런 다음에는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로 되돌아오게 되고, 그제야 상대방을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처음 느꼈던 것과 같은 결론을 내리지만 혼란을 겪은 다음에 말하는 결론이란 처음의 것과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셈이다.


중간에 겪는 이 혼란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 사람을 더 알아갈수록 전에는 몰랐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감상들이 자꾸 생겨난다. 그렇게 최초에 내가 그려놓았던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가 수정되거나 덧칠되면서 내 머릿속의 그림은 최초의 형태를 서서히 잃어간다. 위에 덧칠된 것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추상적으로 변한다. 어느새 내가 그렸던 그림이 모두 망쳐진 듯한 기분이 들어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이다. 더 이상 이 사람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모습이 아니다. 이것을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내가 이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새로 그려진 그림을 사랑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게 된다. 실망도 하고 서운해도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지속되고 있다면, 서서히 이 새로운 그림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을 견뎌내다 보면 이 엉망이 된 그림 속에서, 최초의 바로 그 스케치 라인을 다시 발견하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아주 오랫동안 관찰해 온 사람처럼,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 속에서도 의미와 형태를 마침내 재발견해내고 그 참뜻을 납득하면서, 이 그림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이 더해져 더 멋진 그림이 된 것이자 처음부터 존재해 왔던 것을 되찾은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멋진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모든 게 처음으로 되돌아오지만, 내가 처음 이해했던 내용과는 전혀 달라져있는, 이 사람을 설명하는 한결같은 무언가를 직시하게 된다.


이건 깊이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산은 늘 산이었지만, 멀리서 바라본 한 겹의 산만 알던 내가 산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내밀하고 복잡한 숲길을 헤매는 과정을 통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몸소 이해하고 나서야 ‘아, 이게 바로 산이라는 것이구나’하고 결론지을 수가 있는 것이다. 수많은 나무들과 다람쥐, 새, 흙 그리고 사계절을 지나며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과정까지, 산의 레이어란 너무나 다층적이다. 멀리서 바라본 산은 그저 멋진 것에 불과했지만, 깨달음을 얻고 나서 바라보는 산이란 단순히 멋진 것이 아니라 장엄하고 충격적이다. 오랜 시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 눌러앉은 채로 수많은 동식물을 품어내고도 자신의 형태를 잃지 않은 산, 우리는 그것을 너무 멀리서만 바라보거나 어쩌다 한 번씩만 바라보아서 그저 단순하게 ‘멋진 것’으로만 남겨두는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태어나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가진 이야기와 경험이란 간단하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악당’과 같은 쉬운 말로만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깊고 레이어가 많은 것이다. 작가들은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인물 하나를 창조하기 위해서도 긴 시간 고민하고 어마무시한 양의 자료 조사를 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실제 인간을 구성하는 데이터란 감히 당사자가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인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저 사람은 저 사람이요, 이 사람은 이 사람이다. 너무나 절묘하게도, 이 문장 자체가 처음 들여다볼 때와 오랜 고민 끝에 들여다볼 때, 내게 와닿는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듯한 마법을 부리고 있다.


단순한 사실을 깨달으려면 정말로 먼 길을 헤매면서 돌아와야 하는 가보다. 수많은 대가들이 말하듯 결국 처음 떠올린 그것이 바로 정답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제대로 혼란을 겪어보고 오해해 보고 길을 잃어보기 전까지는 처음 그 정답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때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똑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많이 방황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걸지도 모른다. 돈은 그냥 돈일 뿐인데, 그걸 한참 쫓다 보면 대체 돈이라는 게 진짜 가치 있는 것인지를 되물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이 헤맴의 시간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는 이 명언에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어려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직접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솔직하게 방황하다 보면 반드시 깨우침의 시간이 올 거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복잡하고 거창한, 무릎을 탁 칠만큼 특별한 해답이 아니라, 내가 최초에 내렸던 결론을 재발견하는 것일 뿐인 것 같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처음 그 문장을 다르게 보게 될 순간을 고대하는 것이다. 이 기다림의 시간 동안 그저 솔직하고 자유로운 것만이 가장 빨리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일 것이다. 다시 단순하게 보일 때까지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의 욕망과 나의 오해, 기대라는 물감을 죄다 꺼내서 캔버스 위에다 마구 덧칠해도, 이 깨달음의 스케치는 결코 흐려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아직 이 답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일 뿐, 내가 찾는 답은 이미 눈앞에 놓여 있음을 나는 믿는다. 내 답이 틀렸다는 생각을 멈추고,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내놓은 답을 스스로 온전히 이해하게 될 순간을 앞당기기 위해, 마음껏 괴로워하고 방황하자. 이 방황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자 고통이니, 이를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세상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한 반쪽짜리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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