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나를 좀 도와주길 바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작자 미상
이 명언에서 말하는 하늘이라는 게 대체 뭘까? 신 또는 운명 같은 것일까? 운명의 세 여신이 내가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만 보다가, 내가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다고 판단이 되면 그제야 나를 찾아와서 도와줄 거라는 어떤 약속의 의미인 걸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열심히 해야 신들이 만들어놓은 노력의 기준에 부합하는지가 궁금해진다. 나는 어쩌면 정신적인 가치도 물질적인 단위로 변환을 해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세속적인(속물적인) 인간인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하늘이 나를 돕는 방식은 정말이지 기이하기 짝이 없다. 이 명언에 따르자면 내가 내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운명은 내게 기회와 운을 내려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다. 과학만능주의로 점철된 현대를 살고 있는 인간에게 이런 말은 다소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하게 들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사실 이 말의 뜻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스스로 돕는 자’라는 것은 결국에는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뜻 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시대가 '노력'의 가치를 얼마나 폄하하고 있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노력하는 정신에 가치를 부여하기보다는 운과 때, 처음부터 타고난 것들에 더 마음을 기울이고 신경을 쓰고 있다. 세상에 무조건 옳고 그른 것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절대적인 진리 중 하나는 그 어떤 것도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하루 종일 일하고 지친 채로 집에 기어들어왔다고 해서 엉망진창인 집안 꼴을 마주하며 한숨만 쉬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어제 벗어서 아무 데나 던져놓은 양말은 내가 직접 들어서 빨래통 안에 넣지 않으면 영원히 그 자리에 고대로 있을 심산인 것이다. 내가 어제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지 않으면 그 그릇들은 설거지통 안에서 단 1cm도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세상만사 어떤 형태로든 물리적인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무는 햇빛을 더 많이 쬐기 위해서 이파리 달린 가지를 최대한 트인 곳을 향해서 밀어 올려 키를 키우고, 흐르는 강물은 앞길에 놓인 장애물을 끊임없이 때려서 깎아내어 길을 만들고 있다. 왜? 그렇게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햇빛이 저절로 나무에 내리쬐지 않고, 물길을 가로막고 있는 큰 바위가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 삶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 개의 손가락과 하나의 두뇌, 한 쌍의 눈과 다리로 세상을 어루만지고, 인지하고, 관찰하며 뛰고 또 뛰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치를 가질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돕지 않는 자’라고 하면 결국 본인에게 닥친 문제를 방치하고 외면하는, '노력하지 않는 자'인 셈이다. 내가 방바닥에 던져진 양말을 못 본 척하고, 설거지통에 쌓인 그릇들을 모른척하는 것은 나 자신을 돕지 않는 상태다. 이렇게 살면 더러운 양말과 그릇, 그리고 하늘도 나를 돕지 않는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 노력의 가치를 알지 못하거나, 삶의 고통으로 인해 의지가 꺾인 자는 아주 쉬운 일조차 해낼 수 없게 된다. 요즘 도무지 힘을 내지 못하고 있는 나는 설거지를 하는 것, 빨래통에 양말을 주워 넣는 것과 같이 단순하고 평범한 일 앞에서도 자꾸만 ‘못하겠다’고 말한다. 몇 발자국 걸어가서 허리를 굽히는 일, 딱 10분만 시간을 내서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일을 정말 내가 해낼 수가 없는 것일까? 내 손발에게 묻는다면 아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단박에 '할 수 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내 마음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몸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내 마음이 안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육체가 지쳤을 때 단 몇 시간만이라도 편안히 쉬게 함으로써 내 근육에게 다시 힘을 내어 움직여줄 것을 요구하고 설득할 수 있듯이, 내 마음 또한 다시 힘을 내도록 (시간을 들여서) 설득해 낼 방법을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도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삶의 고통을 직면한 내 마음이 ‘못하겠다’고 말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그걸 바꾸도록 설득해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스스로 돕는 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양인 게 아닐까? 어쨌거나 내가 믿고 의지할 데라곤 나 자신 밖에는 없으니까…
슬프지만 내 운명은 나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남의 조언과 도움, 무엇보다도 우연과 운의 작용을 기대하려면 삶에 대한 희망 또한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를 돕는 노력을 포기해 버리면 도움, 기회, 우연, 운을 기대하게 하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만다. 희망이 없는 자에게 기회와 운이 따를 리 없다. 왜냐하면, 희망 없이는 기회와 운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스스로 돕는 자가 되는 것, 즉 내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내어 노력한다는 것은 눈을 똥그랗게 뜬 채로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움직이면서 주변에 숨어있는 특별한 기회, 즉 하늘의 도움을 직접 찾아 나서는 일인 셈이다. 하늘의 도움이란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없을 만큼, 내 삶을 180도 바꿔놓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것이기에, 그 도움을 얻기만 한다면 지금 내 삶에 닥친 어떤 문제든 단박에 해결될 것이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나는 이 모든 말들이 조금 무식하리만치 과격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지만 어쨌든, 자꾸만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내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이렇게라도 해보는 것뿐이다. 나는 그저 이 오래된 명언에 따라 나 스스로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 운명은 내 것이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겪는 수많은 고통과 슬픔은 모두 온전히 나만의 것이고, 타인에게 나누어주거나 팔아버릴 수가 없다. 나만큼 내 문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을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내게 주어진 양말이고 설거지이며, 이걸 해결할 사람도 나뿐인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가 가지를 스스로 밀어 올리지 않으면 평생 해를 볼 수 없을 것이며, 아무도 내게 순순히 길을 내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운명이고 나만의 것이다… 내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자 노력한다면 하늘 또한 나를 도울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하늘이 이 명언을 통해서 인류와 그렇게 하기로 진작에 약속을 했다! 근본적으로는 내 무의식이 나를 구할 것이다. 내가 노력한다는 것은 희망을 품는다는 뜻이고, 희망을 품은 자의 눈에는 품기 전보다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마련이므로. 나는 나를 돕고, 내 무의식에 자리 잡은 운명의 세 여신은 노력하는 자인 나의 눈을 가린 안대를 풀어준다. 내가 해야 할 일이란 그저 스스로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전부이므로 이 모든 것이 나로서는 크게 손해 볼 것 없는, 꽤 좋은 거래라고 할 수 있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작자 미상
이 명언은 여러 문화와 시대에 걸쳐 발견된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작가 아이소포스의 우화에 등장한다. 헤라클레스와 마차꾼이라는 이야기에서 진흙에 빠진 마차 앞에서 신에게 기도만 하고 있는 마부에게, 헤라클레스가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자는 신도 돕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