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읽는 돌멩이의 변명

프리드리히 니체 명언 해석기

by joni

나는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리는 이 문장을 다소 오해하는 것도 같다. 문장의 의미를 단순화시킨 다음에 내가 속해 있지 않은 타 집단을 ‘우르르 몰려다니며 허튼짓을 하는 무리들’로 비하하고 조롱하기 위해 쓰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느 정도는 니체의 의도와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는 듯하지만 사실 그게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 아니다. 우리는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로 태어났으므로, 완전히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을 주체적인 삶이라 부를 순 없다. 인간이란 어쨌든 무리 생활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전제하고서 하는 말이니, ‘혼자 노는 나’에 대한 우월감의 표현으로 이 문장을 쓰는 것은 일면 오해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니체의 정신은 내가 가장 선망하는 형태의 가치이기도 하다. 그는 ‘인생을 사랑하라’고 했고, ‘더 이상 당당하게 살 수 없을 때에는 당당하게 죽어야 한다’고까지 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이어도 주체적인 의지와 원칙을 세우고 웃으면서, 활기차게, ‘운명을 사랑하면서’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고 있을 죽음마저도 당당하게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타협 없이, 두려움 없이 나아가서 끝내 삶 자체를 긍정하라는 말은 외골수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에겐 적잖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이런 신념을 가진 니체가 '무리 지어 다니는 놈들은 다 별로야'라고 말한 것은, 무리에 속하느라고 운명의 주인인 ‘나’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을 것 같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며 오직 나만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고로, '사회에 속하기 위해서' 아등바등 애쓰는 나를 목격했을 때에는 재빨리 냉정한 머리로 돌아와서 곰곰이 따져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애쓰는 이유가 내 내면에서부터 시작된 동기 때문인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가치(사회적인 가치)로부터 온 것이라면, 우리는 니체가 말한 것과 같은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없다.


그러나 당장 나 자신만 떠올려봐도 전혀 이 말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성공,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갈구하면서 바닥을 기고 밧줄에 매달리고 절벽에 턱걸이를 한다. 왜 다들 의대에 가고 싶어 하는가? 그것이 스스로 세운 나만의 가치와 원칙에 토대를 둔 결심인가? 나는 왜 이토록이나 돈을 벌기 위해서 기를 쓰는가? 나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하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원초적인 질문들을 니체가 세운 원칙에 따라 하나하나 해부해 보면 우리의 삶이 사실은 온전히 나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삶이 불행해진다고 배웠다. 월세보단 전세로 사는 것이 덜 손해 보는 거라고 배웠고, 월 220 버는 것은 비참하다고 배웠다. 그런데 누가 이런 말들을 시작하는 걸까? 이건 어디서 나온 연구 결과일까? 흔히 말하는 '지잡대'를 졸업한 사람에겐 삶의 행복을 논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이런 말들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한 맺힌 귀신처럼 떠돌아다니며, 알뜰살뜰 저축하지 않고 값비싼 두바이 쫀득 쿠키를 덥석 덥석 사 먹는 사람들의 마음이 괜스레 불편해지도록 해코지를 한다. 실체도 없고 근거도 없는 문장 몇 개가, 마치 명언처럼,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서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기생충을 심는다.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숙주가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이 몹쓸 기준과 가치들을 전염병처럼 전파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육신은 이제, 불안과 두려움이 시키는 대로 학벌을 키우고 전세 대출을 알아보고 월급을 드높이기 위한 일들에만 매진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계속해서 손바닥 안의 모래알갱이처럼 스르르르르르... 새어나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남들 하는 것처럼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거나 '망한 인생'이 되고 만다는 이 강력한 신념은 내 안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말'이 맞는 것일까? 니체의 말을 기억하자. '나는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 그러나 앞선 나의 주절거림들은 싹 무시하고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나 좀 들어주길 바란다.

나는 학창 시절이면 꼭 몇 번쯤 가도록 되어 있던 수련회를 잘 견디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참여했던 수련회에서 빨간 모자 교관에게 사납게 대드는 바람에 상담실로 끌려가 내 부모님과 삼자 통화를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금 전 학생들 앞에서와는 정반대로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우리 부모님의 머나먼 목소리 앞에서는 한없이 공손하고 물러지던 악독한 빨간 모자 교관을 초등학생인 나는 진심으로 혐오했다. 나는 아무런 설명도,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무언가를 매섭게 명령함으로써 무조건적인 복종만을 요구하는 수련회의 (고결한) 존재의 이유를 끝끝내 납득하지 못했고, 결국 수련회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 다시 생각해 보았을 때에는 나는 스스로가 좀 별난 애였던 것처럼 느껴져 그 시절의 내가 참 싫었다. 그거 뭐라고, 좀 시키는 대로 좀 하지. 다른 친구들처럼 교관들 말 잘 들었으면 엄마도 덜 걱정했을 테고, 나도 그 안에서 다른 친구들처럼 나름대로 추억도 쌓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때 수련회에서 탈주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공동체 의식’ 같은 걸 좀 제대로 배웠더라면 지금 내가 이렇게 사회로부터 낙오될 것만 같은 간당간당한 기분을 덜 느끼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불행하고 나름대로 지루하더라도 삶 자체는 지금보다 안정되어 있지 않았을까? 나는 요즘 이런 고민 때문에 머릿속이 혼미할 지경이다. '어떻게 해야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까?'라는, 니체의 사상에 따르자면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는 질문을 나는 요즘 스스로에게 제일 많이 던지고 있다.


'나는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이 문장은 명언 치고는 참 직설적이고 통쾌한 면이 있다. 비난의 어조를 띄기에 나 같은 외톨이들이 듣기에는 일면 속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참 전에 내가 직접 적었듯, 이 말은 인간은 집단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서 하는 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집단에 포함된 개인이기에, 때로는 집단의 가치를 나 자신의 가치로 오해하기도 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나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니체는 이런 걸 경계하라고 한 말이다. 하지만 어느 집단에도 속해있지 못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은 이 명언을 자기 멋대로 통쾌하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1명)는 집단이 제공하는 최소한의 긍정적인 지지와 소속감을 아직 얻지 못했으니, 지금은 일단 그것부터 하는 게 훨씬 더 시급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또는 소속감을 제공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공을 들이고 어떤 부분을 완전히 무시할지를 판별하는 도구로써 이 문장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의 어떤 모습을 니체가 비판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우리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서 다른 집단을 깔아뭉개는 종류의 원칙을 세우고자 한다면 그건 당당하게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저 세상과 조금 더 잘 연결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 중 하나로서 기능하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나도 커서, 세상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나의 뾰족한 모서리들은 박박 갈아내어 없애버리고픈 마음만이 충만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니체의 의지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바꾼다든가, 때로는 그걸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거짓말을 한다든가, 극단적으로는 내 마음이 시키는 것과 아예 반대로만 행동해서 그토록 원하던 소속감을 얻은 다음에는, 지금까지 내가 생존을 위해서 저질러 온 바로 이 자기기만적 행태부터 당장 내다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소속감을 얻은 나는 이제 니체가 말한 것과 같이, 사회적인 가치관에 파묻혀서 개인의 개성을 잃어버린 상태에 완벽히 부합하는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내가 대체 니체의 어떤 지점을 오해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니체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나는 일단은 집단에 속하기 위해 니체가 말한 것과 반대로 행동하되,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고 나면 또다시 고독한 오늘의 내가 가진 마음가짐으로 되돌아와야만 한다. 누가 감히 이런 나에게 ‘운명을 사랑하라’고 외치는 거야? 니체 니가 내 인생을 살아 봤어?


항상 글을 쓰다 보면 끝에 가서 화가 나고 마는 것도 웃기는 버릇이다. 빨간 모자 교관한테 싸가지없이 대들던 그때의 반항심처럼, 위인들의 명언 앞에서 삐죽삐죽 솟아나는 비틀리고 꼬인 마음과 자기 연민이 나를 또 삼자대면을 위한 골방의 상담실로 데려가고 있다… 어쨌든 집단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집단에서 말하는 가치와는 별개로 개인인 내가 가져야 할 나만의 소신을 끊임없이 갈고닦으며 나아가는 것, 그리하여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만큼 자신 있게 사는 것, 니체가 말한 이 모든 것이 내가 이 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 그 자체인 것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세상이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라면 나는 바닥에 깊이 눌러 박힌 돌멩이다. 다른 돌멩이들이 물살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구르면서 올챙이도 만나고 붕어도 만나는 동안, 나는 뭔가 뿌리라도 있는 듯이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휩쓸리는 돌멩이들을 두고 지나치게 가볍게 군다며 비난해 봤자, 바닥에 박힌 나는 붕어도, 올챙이도, 개구리도 만나지 못한다… 사실은 나도 다른 돌멩이들처럼 구르고 떠돌고 싶다. 니체는 구르는 돌들에게 말한 것이지, 나처럼 바닥에 뿌리내린 이상한 돌멩이에게 말한 것이 아니다. 명언에서마저 소속감을 못 느끼고 있다니, 정말 구제불능인 자기 연민이다. 호옥시라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1명)이 있다면 우리 함께 정신을 똑바로 차려보자.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쩌면 우리는 이미 '자신만의 가치관을 지키라는' 니체의 정신을 받들고 있는 게 맞을지도 모르니까(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다만 어쨌거나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에 따라서, 좀 남들처럼 잘 구르는 것도 무지막지하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일단 물살에 맞추어 구르는 방법만 터득하면, 그때는 내가 이 강바닥의 돌멩이 월드 다 씹어먹는 거다. (자기 연민이 더 나쁜 걸까,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는 게 더 나쁜 걸까?)




나는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것은 사회적 획일성과 집단에 묻혀 개성을 잃어가는 상태를 경계하라는 뜻이다. 니체는 집단과 동일시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서 고통과 도전을 통해 스스로를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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