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

이마누엘 칸트

by joni


나는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

-이마누엘 칸트





나는 나 스스로를 꽤나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 나름대로 신념과 원칙이 있다는 것만은 확신한다. 내가 나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세운 신념과 원칙, 더 나아가서는 그걸 생각해 낸 내 머리통 자체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이 짧다고, 실수가 많고 비이성적인 선택과 결정을 하는 순간이 많다고 느끼는데, 그건 모두 내 행동의 결과로 인한 실패가 잦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인간이란 참으로 끔찍하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확신이 없어지면 결국 (잘못될)결과에 대한 불안감과 벅찬 책임감만 남게 되니, 그 책임을 지는 게 두려워져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들거나 또는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데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게 된다. 하지만 칸트의 정언 명령이 의미하는 내용처럼,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법칙을 스스로 세워본다면 이런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칙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이 주어지고,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로 귀결되는 절대적인 법칙. 이걸 가질 수 있다면 고민과 망설임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힘을 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서 이런 절대적으로 수호해야 할 가치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나같은 그저 그런 인간에게는 참으로 어렵고 벅찬 과제가 된다… 내 머리통을 믿어야 하는데, 내가 가진 이성을 활용해야 하는데, 도무지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나는 나를 신뢰할 용기가 없다.


'남을 괴롭히지 말라'라는 말을 정언 명령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따져보자. 남을 괴롭히지 말라, 이 말 자체가 다소 광범위하고 모호하긴 한데, 어쨌든 뭔가 다른 목표로부터 파생된 말이 아닌, 순수히 내용 그 자체로 도덕적인 의무를 가지므로 정언 명령에서 말하는 ‘선의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남’이란 누구인가? 우리 엄마도 남이라면, 나는 엄마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자식으로서 내 인생을 더 멋지게 살아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엄마한테 패악질을 부리지 않는다는 식의 일차원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근처에서 내 삶을 지켜보는 우리 엄마가 나의 좌절과 실패로 괴로운 마음이 든다면 그로인해 나는 내 인생을 더 잘 살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생겨버리는 게 아닐까? 우리 엄마는 종종 전화를 걸어와서는 내게 ‘나는 네가 그렇게 사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할 때가 있는데, 이제 나는 그럴 때마다 '남을 괴롭히지 말라'라고 하는 이 문장을 떠올려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또 어떤가? 엄마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나는 종종 밥을 안 먹었는데도 먹었다고 말할 때가 있다. 이건 아무래도 칸트가 들으면 ‘부도덕하다’고 말할 법한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하얀 거짓말을 한 것 뿐인데, 이것도 안됩니까, 칸트 선생님? (칸트는 아마도 안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역시, 1. '거짓말을 하지 말라'라는 원칙에 따르면서 2. 엄마를 괴롭히지도 않아야 하므로 3. 밥도 제때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바로 이 명언에 따르자면, 나는 해야한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분명 밥을 제때 먹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셈이니 결국 이 명언은 옳은 말이다. 거역할 수 없는 마법의 문장이기에 명언으로 남은 것임이 절절히 와닿긴 한다.

엄마가 내게 ‘너 그렇게 사는 게 엄만 맘에 들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 내가 세운 도덕 법칙인 ‘남을 괴롭히지 말라’에 해당되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나는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처럼, 내가 이렇게 살지 않는 것이 ‘해야 하는 일’에 해당하고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살지 않을 수 있다’로 귀결이 된다. 실질적으로 대체 어떻게 해야 내가 이렇게 살기를 그만둘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게 내가 해야 할 의무이고 그러므로 할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남을 괴롭히지 말라’라는 도덕 원칙은 도통 신뢰하기 어려운 나 자신의 머리통과 이성으로부터 비롯된 명령인가, 아니면 보편적인 것인가? 칸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풀어서 말하자면 내 행동의 원칙이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따를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이 될 수 있는지를 자문해보라는 뜻이다.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원칙은 보편적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원할 때마다 남을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이 세상이 지금처럼 돌아갈 리가 없다. 그러니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원칙은 나의 자의적 주장이 아닌 ‘보편성의 정식’에 해당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못 믿을 사람(나)이 한 말이라고 해도 칸트의 원칙에 따라서 되짚어봤을 때 문제가 없으므로(그리고 우리가 감히 칸트의 방식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고통에서 해방되어도 괜찮겠다. 그리하여 아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엄마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엄마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내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칸트의 이 명언은 기본적으로는 도덕적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해야 한다’에서 '해야 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정언 명령에 따라 세운)를 뜻하는 것이고,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은 내게 하거나 안 하거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위대한 철학가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내 마음은 자꾸 이 말을 내멋대로 해석하려고 드는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의무가 도덕적인 것이든 아니든, 무조건 내게 주어졌기 때문에 해낼 수 있고 해내야 한다는 강압적인 말로 오해를 한다. ('나는 오늘 청소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 처럼.) 만약에 나처럼 이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또 있다면,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나한테 주어진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내가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게 도덕적인 의무라면 칸트의 말에 틀림이 없지만 이걸 나처럼 제멋대로 해석하면 자기 자신을 아주 괴롭히는 말이 되고 말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지금보다 더 잘 살고,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은 칸트의 이성과 논리에 따라서 말해보자면 가능한 일이다. 엄마가 괴롭지 않으려면 내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하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방금 내가 이 문장을 자꾸만 멋대로 곡해하게 된다고 말할 때 설명한 방식대로, 내게 주어진 것이라면 나는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식의 무식한 의지와 대책없는 긍정의 말로 오해해도 된다! 이것만큼은 내게 주어졌으니 내가 못해낼 리 없다. 인간으로서 더 잘 사는 것이 내 도덕적 의무이기에, 내게는 자유의지가 있기에! 지금까지 나는 영 못미더운 방식으로 자유의지를 휘둘러 왔다지만 이제부터는 이 원칙에 따라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되도록 그걸 휘두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자책과 자기비하를 금지하는 원칙도 정언 명령에 따라서 세워봐야 하겠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니, 칸트와 니체라도 믿어야지. 이럴 때에 쓰라고 다들 명언으로 길이길이 남겨놓은 것일테니까.


끝으로 덧붙이자면 혹시라도 나처럼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고 괴로워지는 사람이 또 있다면 이 글을 주의하시라. 지금 이 모든 내용은 내가 멋대로 지어낸 궤변에 불과하다고 이제와서라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다… 사실 칸트의 말이 이런 뜻이었을 리가 없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아주 아주 못미더운 머리통을 가졌으니 세상 어느 누구도 절대로 지금 내가 나불대는 헛소리를 믿으면 안된다….




나는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

-이마누엘 칸트


의무는 능력을 전제한다는 의미.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것은 그 행동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즉 자유의지가 인간에게 있음을 증명한다. 만약 어떤 일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질 수 없다. ‘불가능한 것을 하라’는 명령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인간이 도덕률을 따를 의무를 지닌다는 사실은, 곧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로운 존재만이 도덕적 판단과 책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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