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악법도 법이다.
- 소크라테스는 사실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는 이 말을 꽤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왔는데, 어떤 날은 그대로 체념하고 수긍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에는 ‘악법이 무슨 법이야?’하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 말에 가장 부합하는 예시를 들어본다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차별하고 학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은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한 사건을 들 수 있겠다. 당시 독일의 법학자들은 '국가가 정한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법은 그 내용이 악하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극단적 법실증주의를 내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분명 뉘른베르크법이 '악법'임을 알면서도 그 내용을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다'라는 문장은 지금의 현대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법이 부당할 때는 고치라고 배운다. 실제로 내가 직접 고치지는 못해도 항의하고 건의하고 저항해서 삭제하고 새로 만들고 고쳐나간다. 이런 일들이 가능해진 이유는 우리가 법이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무조건적으로 수호해야만 하는 가치라는 듯이 저울을 엄하게 치켜든 정의의 여신상마저도 불온한 인간이 창조해 낸 불완전한(장님인) 상징물일 뿐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모순되고 부족한 인간이 고안해 낸 법률들은 온 우주를 작동시키는 패턴과 물리 법칙처럼 당연하지도, 완벽하지도 못하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뉘른베르크법만 보아도 그렇다. 당시의 독일인들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터무니없는 수준의 그릇된 논리를 내세워 단체로 유대인을 죽이는 것에 동의했다. 그때는 말이 되는 소리처럼 들렸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만 보아도, 법은 반드시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다듬어지고 수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법도 법이라고 주장하며 눈에 뻔히 보이는 모순에 순응하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이 문장을, 이제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내야 한다. 아무리 얌전하고 성실한 인간이어도 옳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시끄럽게 떠들고 난장을 피우며 저항할 줄도 알아야 현대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저, '룰이 이렇게 되어있는 걸 어떡하겠어. 좀 부당하긴 하지만 다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니 따르지 않는 사람은 도태될 뿐이야.'라고 말하며 자신의 사회적 안위를 살피는 것에만 급급하다. 부당한 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외침에 악법도 법이라고 대꾸하며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지속 불가능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기울어진 땅 위에 볏짚으로 엉성하게 1인용 집을 짓는다.
악법은 결코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없다. 분명 처음에 제정될 당시에는 '악법'이 아니라 그냥 '법'이었을 것이다. 왜 앞에 ‘악’ 자가 붙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제 더는 이 법이 다수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부터 아무도 원하지 않는 내용을 누군가가 자기 멋대로 법으로 만들어버렸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모두가 이 법을 미워해도, 어쩔 수 없이 존재해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민주주의라는 엔진으로 작동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것들을 가능케 하는 상황이 성립할 수 있는가? 어떤 한 원칙이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절대적인 규칙서에 기록될 수 있을까?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며 마지못해 동의한 법칙이 어떻게 우리 삶 속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사회가 실재한다면, 그 사회는 민주주의를 가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거나 어딘가가 심각하게 망가져있는 상태라는 의미다. 모두가 기울어진 땅 위에 볏짚으로 된 엉성한 1인용 집구석에 들어앉아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악법을 만들자고 제안한 사람들 또한 나와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은 인간에 불과할 것임을 확신한다. 그들과 나 사이에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나와 달리 그들은 많은 시간을 법을 탐구하는 데에 쏟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보다 법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어떤 구조와 맥락에서 법이 작동해야 할지를 나보다 더 잘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인간으로서, 그들을 믿고 있다. 그들이 악법을 제정하여 나처럼 법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을 괴로움에 빠뜨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한다. 때문에 그들에게 법과 관련한 업무를 일임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누군가는 분명 지금 ‘악법’이라 불리는 것들을, 우리 사회에 속한 인간이라면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라 부르며 엄숙하게 나를 심판하는 근거로 활용하기로 결정해 버렸다. 결과로 놓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은 결국 그들이 다른 인간들보다 더 우월하거나 나은 존재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일들은 법과 관련한 분야가 아닌 곳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오판을 하며, 이기적이고 어리석다. 이걸 용서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사회 또한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이 모든 조건들 아래에서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이 부당한 법칙들을 합당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선수로 뛰어야 하는 경기장에 잘못 그려진 선을 지우고 똑바로 긋는 일인데, 본인은 발끝이 간신히 선 안에 들어있다는 이유로 여기에 손을 보태지 않고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며 팔짱을 낀 채 외면하는 행태는 이기적인 것을 넘어서서 멍청한 행동이다. 본인이 언제 어떻게 잘못 그려진 선 밖으로 밀려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잘못된 법칙을 고치는 것은 곧 현재의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그게 바로 우리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다.
그러니까 악법도 법이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악법도 법이긴 하다. 누군가 법이라고 적어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악법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해서는 안된다. '악법'이라는 말은 이제 곧 사라질 예정인 것들에 대해 붙이는 임시적인 명칭으로만 세상을 희미하게 떠돌 뿐이다. 나는 우리가 법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 걸친 모든 종류의 원칙과 철칙, 규칙, 주장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말을 얹고 반박하고 수정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비판적인 사고와 진리,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다운 인간이라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악법도 법이다
- 소크라테스는 사실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부당한 판결을 받았음에도 시민으로서의 계약과 법적 안정성을 위해 결과를 수용했지만, 결코 악법을 긍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탈옥하거나 법의 집행을 방해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것을 일본의 법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실정법 존중을 강조하기 위해 왜곡하여 해석하는 바람에 이 문장이 소크라테스의 말인 것처럼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