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건 명언도, 속담도 아니다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
- 사실 이건 명언도, 속담도 아니다
소통이 열쇠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싸울 의지도 상실된다. 말이 조금이라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야 내 주장과 이유를 차근차근히 상대방의 귓구멍에다 밀어 넣으면서 그들의 고집이나 의견도 야금야금 꺾어나갈 수가 있는 법인데, 말이 아예 안 통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같이 산다'는 게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면, 세상에 (아무리 쌍둥이라도) 나와 완벽하게 마음이 맞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당연한 전제이므로, 서로 생각이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달라도 모종의 이유에서(사랑이든 우정이든 피치 못할 사정이든) 같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거기에는 서로 이해하고 맞춰가자는 뜻이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해와 조율을 해나갈 수 있단 말인가? ‘말’이라는 건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뜻하는 게 아님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수화든 점자든 문자든 바디랭귀지든 이 ‘말’이라는 건 집단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에게는 너무나 유용한 무기인데, 이 무기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고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이집트로 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장 시급하게 하려고 했던 일도 이집트에서만 사용되는 숫자 표기법을 외우는 것이었다. 이걸 모르면 당장 이집트에서 물건을 계산할 수도, 전화번호를 찾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꾸 까먹고 헷갈려서 결국 우버로 택시를 부를 때는 주변의 이집트인들을 붙들고 택시 번호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 날이 많았다.)
그러니까 말이 안 통하는 채로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내가 원하는 바도, 상대방이 원하는 바도, 공통의 목표와 공통의 과제도 해결할 길이 막막해지니 이럴 바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 것이다. 이 '같이 산다'라는 표현을 가정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로까지 넓혀보면 훨씬 더 무서운 말이 된다. 솔직한 말로 써보자면 나는 어떤 의미에서건 소통을 잘 해내는 사람이 곧 사회적으로도 잘 기능하는 인간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건 하나를 팔더라도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라면 타인이 뭘 원하는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것을 필요로 할지를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파고들 것이다. 내가 속한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현재 어떤 지점에서 노이즈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쉽게 파악해 내고 또 스스로 그 노이즈 안에 포함되어 있는, 즉 세상과 잘 소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속에서 본인의 역할이나 떠다니는 기회 같은 것들을 포착할 준비 또한 아주 잘 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흐름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세상 안에서의 ‘나’가 다른 구성원들과 잘 소통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꾸만 허우적거리게 된다거나 정체되기도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불 때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바람이 불어서 흔들리는구나’ 하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다람쥐가 지나가서 흔들리는 거야’라고 생각했다고 가정을 해본다. 실제 사실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니 둘 중 누가 맞았고 누가 틀렸는지를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게 된다. 아무도 모르고 알아낼 방법도 없으니까. 하지만 둘 중 어떤 의견이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했는지, 즉 어떤 의견이 다수와 ‘말이 통했는지’는 중요해진다. 만약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이 불어서 흔들렸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면, 이 사람들이 속한 사회에서는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린다’는 내용이 사실이 되고 진실이 되므로, 그걸 토대로 세계에 대한 인식과 룰을 구성할 것이다.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그러므로 바람이 불 때는 나무 밑에 가서 열매를 줍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는 동안 ‘다람쥐가 지나가서 흔들렸다’라고 주장한 사람은 자신의 주장이 왜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내 생각이 틀려서인지, 아니면 나 빼고 다른 모두가 너무 멍청해서 이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 등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는 무한한 질문 속에 갇히는 수가 있다. 그러니까 말이 안 통한다는 건 일종의 고문이나 다름없다. 이런 질문의 루프에 갇히면 헤어 나오기까지 너무나도 슬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지어야 할 텐데, 그 결론이 ‘내가 틀렸었구나’가 되든 ‘남들이 바보라서 몰라본 거야’가 되든 이 질문의 루프에서 헤어 나온 이후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사실 바람이 불어서였든 다람쥐가 지나가서였든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중요한 건, '나무가 흔들렸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사고방식이 의심받거나 이해받지 못할 때, 즉 ‘내 말이 통하지 않았을 때’ 그 원인을 알아내는 것에 마치 생사가 달린 듯 지독하게 집착할 것이다(내 얘기인가?). 나의 ‘말’이라는 건 곧 나의 ‘자아’를 반영하는 것이니, 내 말이 이해받지 못하면 내 자아가 부정당했다는 기분마저 들 수 있으니까. 그래도 언제나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내 말이 다수의 말과는 다르더라도,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나와 말이 통하는 누군가, 몇몇, 소수 또한 존재할 거라는 사실이다. 이건 정말 사실이다(내가 제정신이 아닌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 몇몇의 사람들과 우리끼리만의 작은 무리를 형성하고 고독감을 이기며, '내가 틀렸는가?' '내가 바보인가?', '내가 괴상한가?'라는 의심으로부터 벗어나서 ‘말이 통하는 우리끼리 같이 살아가기’를 해낼 수도 있다. 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내 말의 어디가 남들에게 가닿지 못했는지를 스스로 이해해 나갈 수도 있고, 이렇게 얻어낸 통찰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조금 더 세상과 잘 소통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도저히 여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겠을 때는 이해받지 못한 나로서의 상태를 지속할 바에, 나와 닮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의 능동성을 길러 보자. ‘나의 말’을 바꾸는 게 더 쉽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냥 나의 의견을 바꾸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지만, 글쎄... ‘나의 말’을 바꾼다는 건… 적어도 나한테는 너무 슬픈 일이 될 것 같다. 내가 잘못되고 틀린 게 아닌데도 나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스스로를 부정한다면 그런 식으로 세상은 또 특별함, 오리지널리티, 독창성을 잃게 되는 게 아닐까? 다양한 변수와 돌연변이들이 종과 세계의 진화에 끼친 막대한 영향을 떠올려보면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에 들어맞도록 깎아내거나 폐기하는 행위가 이 세계에 크나큰 손실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만 나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어떤 것들은 분명 옳고 그름이 나뉘어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다람쥐 때문에 나무가 흔들렸다고 믿는 나를 미워하는 짓은 그만두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나무가 흔들렸다'는 사실, 그것 딱 하나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이 글마저도 그저 내 멋대로 말하는 '나의 말'일뿐이다. 사실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라는 이 문장은 나만 쓰는 것 같다(듣는 사람들은 이 문장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내게는 ‘그래…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라고 말한 다음에 쓸쓸히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날들이 종종 있다. 컴컴한 방구석 소파에 홀로 앉아서 '내가 옳았는지?', '내가 이상한지?', '내가 바보인지?'를 대답 없는 텔레비전에 대고 반복적으로 되묻고 추궁하면서 외로움에 휩싸인 채로 앉아있어야 했던 밤들. 이 밤들을 내가 어찌 잊겠는가? 내가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는 인간인지, 내가 가진 능력이나 재능은 정녕 쓸모가 없는 것인지,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지, 과연 나는 50살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를 매일매일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이런 질문들은 나만이 이해하는 내 고질병 같다. 나는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까? 말이 통해야 같이 살 텐데, 내가 세상의 어떤 말을 못 알아듣고 있는 것일까?
결국 이렇게 또 신세한탄 글을 적고 말았다… 이런 글은 그다지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
혹시라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내게 말을 걸어주길 바란다. 나도 답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나는 너의 말을 이해할 것이다…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
- 사실 이건 명언도, 속담도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어낸 말도 아니다.
보통은 문자 그대로 부부 사이나 친구 사이에 많이 쓰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