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두 명언이 내 머릿속에서 맞짱을 떠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ipsa scientia potestas est (지식 그 자체가 힘이다)
- 프란시스 베이컨
모르는 것이 약이다
-한국의 속담
둘 다 맞는 말인데, 둘 다 맞는 말인데.
최근에 어디선가 괴상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그 숏폼 비디오의 주장에 따르면 이건 ‘중국에서 일어난 실화’라는데,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나이가 지긋하신 한 할머니가 큰 솥에다 밥을 짓다가 근처에 있던 쥐약 통을 실수로 솥에다 쏟아버렸는데, 쌀이 아까웠던 나머지 ‘쥐한테 해로운 거지 사람한테 해로운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그냥 그대로 밥을 지었다. 이후 완성된 쌀밥을 남편과 나누어 먹었고, 평소 소식을 하던 할머니는 그걸 먹고도 큰 탈 없이 병원에서 깨어났지만 대식가였던 할아버지는 그 밥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후에 홀로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솥에 아직 남아있는 쥐약 쌀밥이 아까워서 그걸 닭들에게 모이로 주었다가, 다음날 기르던 닭들이 죄다 죽어 마당에 쓰러져있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이후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자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이 쥐약을 먹고 죽은 닭들로 만든 요리를 대접했는데(아까우니까...?), 그걸 먹은 마을 사람들도 모두 죽어버렸다는 거다. 화룡점정으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으로 식음을 전폐한 덕분에, 본인만 살아남았다는 내용으로 이 해괴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아는 것이 힘이구나. 할머니가 무지했던 탓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 이 괴상한 이야기의 본질이므로. 아, 이렇게 생각한 나는 사실 좀 순진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의 본질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명언과는 별 관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비디오에 달려 있던 해시태그들이 대부분 ‘중국몽’, ‘멸공’ 등의 뚱딴지 같은 단어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상 속 내용의 진위를 따져보고자 검색창에다 ‘중국, 쌀밥, 쥐약, 할머니’ 등등의 방식으로 여러 키워드를 조합해서 검색해 보았으나, 국내 뉴스 기사로는 이와 관련된 보도를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쯤 하니 합리적 의심이 든다. 혹시 누군가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서 ChatGPT 같은 도구를 활용해 지어낸 이야기인 게 아닌가 하는. 당연히 이건 내 편집증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에 지나지 않으므로 아무것도 사실로 결론난 것은 없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에 곧잘 동조하는 나로서도, 이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모른다’고 결론 내려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인데, 모르는 채로 생각을 해보려니 역시 힘이 쭉 빠진다. 중국 오지에서 일어났다는 이 기묘하고도 안타까운 사건은 대체 ‘멸공’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그저 추측만 할 뿐, 이 비디오를 만든 자의 진짜 의중은 역시 '모른다'라고 하겠다. 이 영상을 게시했다가 금방 삭제해 버린 이유도 나는 모른다. (삭제당한 것인지 스스로 삭제한 것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다.) 이쯤 되니 '이런 건 아무래도 모르는 게 약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무리 이게 정치적 선동이나 혐오를 조장할 목적으로 만든 영상이라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정확한 제작 의도를 간파해 낼 방도가 없으니 그냥 재밌는(기묘한?) 이야기 하나 들은 셈 치고 넘어가면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무슨 수를 써도 내가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 생각만 나는 법이다.
흠. (역시 나는 그냥 모르는 채로 둘 수가 없어서 쓸데없는 생각을 시작해 버렸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미명 하에, 이렇게까지 은밀하고 ‘지나치게’ 독창적인 방법까지 고안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게 됐다. 앞으로의 나는 타인의 별 뜻 없어 보였던 말조차도 자꾸 의심하고 확대해석하여 경계하게 될까? 이런 것들은 차라리 모르고 사는 편이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걸까? 왜냐하면 나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쉽게 분노하는 인간이므로, 이런 하릴없는 숏폼 영상 하나에도 기만당했다고 느끼고 과민반응해서 내 남은 인생을 스스로 망쳐버릴지도 모르니까…?
이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혐오를 조장하려 했든 말든, 결국 ‘알 수 없는 것’이야말로 내가 제일 못 견디는 일인 건 틀림없다. 모호한 것, 파악할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알아내서 이해해 버리는 게 속이 편하고, 그게 바로 내가 밤잠 설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내 안에서 잘 작동하려면 그냥 모르는 채로 두는 법을 먼저 깨우쳐야 한다. 내게 있어 ‘멸공’과 ‘중국몽’을 이 이야기와 결부시키기는 너무 쉬웠다. 이미 그 두 단어가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너무 많이 봐왔고 또 그 쓰임새의 이유 마저도 일정 부분 이해하고 있으므로. 코끼리 생각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나 자신을 다그쳐도 이젠 코끼리 생각 밖에는 안 나는 거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처럼, 내가 알고 있는 그 두 단어의 용법과 속뜻을 나는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에다 힘으로 보태 써버렸다. 나는 계속 '진짜 의도는 모른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진짜로 몰라서 모르고 있는 건 아닌 것이다. 오만을 떨고 싶지는 않으므로, 내 선에서 100% 확신할 수는 없으므로 그저 ‘모른다’고 말했다. 이건 비겁한 짓일까? 아는 것이 '힘’이 되려면, 비겁하게 뻔히 보이는 답을 바닥에 내려놓고 못 본 척 지나쳐버리면 안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모르는 것이 약이므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고 흘려보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일까?
모르는 게 약이다. 이 말의 원래 뜻은, 어떤 것들은 모르는 채로 남겨두어야 내 삶이 불필요하게 복잡해지지 않을 거라는 뜻 같다.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 일들이 분명히 있다. 누군가 내게 바퀴벌레를 잔뜩 갈아서 만든 음료를 프로틴 음료랍시고 건네서 내가 맛있게 마셨다면, 그게 바퀴벌레로 만든 거라는 사실은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내 정신적 안위에는 도움이 될 거라는 의미다… 실제로 그걸 마심으로써 내 몸이 프로틴을 얻었고, 먹는 데에 있어서 어떤 의심 같은 게 들지도 않았다면… 그러면 그걸로 된 거겠지. 아무 문제도 없으니까. 아니, 과연 그럴까?! 나는 아무래도 그런 사람이 못될 것 같다! 나는 사실을 알고 나서 끝없는 구토와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일평생 다시는 프로틴 음료를 못 먹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바퀴벌레로 만들어진 거라는 사실을 아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내게 있어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는 채로 산다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비밀이 언제, 어떻게 밝혀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는 건 인생의 기회와 경험을 그 모르는 만큼 박탈당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무언가를 모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컥 답답한 마음이 들어버렸다.
물론 세상 만물을 모조리 이해하거나 알게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나는 세상을 많이 많이 알고 싶다. 숨겨진 진실과, 분명 알 수 있는데도 알 수 없는 것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들, 내게만 알려주지 않은 사실들까지. 모름이라는 '약'보다는 앎이라는 '힘'이 더 탐이 난다. (물론 바퀴벌레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야 실제로는 천 가지 만 가지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바퀴벌레가 사실은 아주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프로틴 음료를 마신 것이 바퀴에 대한 나의 인식과 편견을 확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앞으로는 벌레 따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 되고, 심지어는 곤충이라는 미래 식량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먼저 접한 셈이니 식량난이 닥칠 미래의 내 생존율을 미리 쬐끔 올려놓는 식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또 그 반대로는 바퀴는 인수공통 질병을 전파하는 매개 곤충이므로 앞으로는 절대 먹지 않도록 훠얼씬 더 조심하게 된다든가 더 나아가서는 이미 내가 바퀴벌레의 맛을 잘 알고 있다는 점(앎의 힘 +1)을 통해서 더 이상은 바퀴를 모르고 먹는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될 수도 있고 기타 등등! 이렇게 따지고 보면 아는 것의 힘이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다.
어쨌거나 끔찍한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무지해서 남편과 기르던 닭들, 마을 사람들까지 죄다 죽게 만들었지만 본인만큼은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이 현대문학 말이다. 물론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이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세상인 줄은 알지만, 이 이야기를 실화라고 말하던 그 영상의 첫 문장을 나는 믿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니, 나는 아는 것이 힘이라던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을 실천하고자 하는 바에 가깝다고도 하겠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에 따르려면 나는 아마 그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의심조차 하지 않았어야 했을 텐데, 그건 솔직하게 말하자면 해시태그 때문에 가능하지가 않았다. 내가 확증편향을 가진 오만한 인간이어서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생각할 때 이미 알고 있는 ‘멸공’과 ‘중국몽’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코끼리! 코끼리!). 알고 있는 것을 모른척할 수는 없다. 그러니 더 배우자, 더 많이 알자. 아는 것이 힘이라면 나는 힘이 세지고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 영상 속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알지 못한다… 이런!
아는 것이 힘이다
ipsa scientia potestas est (지식 그 자체가 힘이다)
- 프란시스 베이컨
프란시스 베이컨의 1597년 저서 '명상록(Meditationes Sacrae)'에 이 문장과 유사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정보와 지식이 개인과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데에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한국의 속담
때로는 무언가를 아는 것으로 인해 오히려 근심이나 걱정이 생기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고 마음 편하게 지내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