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언의 정확한 원문과 창시자를 한 사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작자 미상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의 명언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놀랍게도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우선 '성공'이라는 단어의 정의부터 똑바로 세워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 '사회적 성공'을 뜻하는 거라면 나는 이 명언에 대해 말을 얹을 자격이 없는 셈이다. 나는 성공을 해본 역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일을 수습 못한 채로 내팽개쳐두기를 일삼았고, 심지어는 거기다 '실패'라고 딱지 붙이기마저도 포기해 버렸으므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덕분에 비참하게도 '실패'의 감각만큼은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은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자잘한 인생의 경험들을 성공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만약 오늘 내가 늦잠을 잤음에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한 것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자기 인식이 훨씬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늦잠을 잤다는 점에 대한 자책과 실패에 더 몰두한다(혹시 나만 그런 걸까?). 아아악 방금 전에 발견했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고, 단어를 바꿔서 잘못 적어두었다. 나는 정말로 문제 있다. 이 와중에 제목 쓰는 것 마저도 실패하다니?
아니! 그러니까 바로 이런 생각을 고쳐먹자는 것이다. ‘지금 발견해서 고쳤으니 다행이고, 결국 제목을 똑바로 적어내는 일에 성공했다.’라고 말해야지.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 가 아니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이 문장을 오랫동안 뜯어본다.
인간은 결국 애완견이 화장실을 가릴 때처럼, 삶의 작은 성공들을 만끽하며 실패를 찍어 누르는 훈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개가 훈련사의 말을 잘 들을 때마다 작은 간식으로 보상을 받듯, 인간도 무언가를 성취할 때마다 '성공했다', '내가 쓸만한 인간이다'라는 식의 감각적 보상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실패의 경험은 작동 방식은 이와 유사하지만 성공과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김치찌개 전문점에서 뜨거운 냄비 손잡이를 꽈악 움켜쥐어본 경험이 있는 나는 더 이상 불 위에 올려진 냄비에는 절대로 맨손을 갖다 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너무 멍청한 예시이긴 한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실패에서 비롯되는 고통과 비참함을 경험한 자는 본능적으로 실패를 피하기 위해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뜨거운 냄비뿐만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 겪어온 모든 실패의 부산물이 가르쳐준 진리에 순종하며 그 괴로움을 또 겪지 않기 위해서 나는 밤낮없이 골똘하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이유는, 1. 우리가 그간 학습한 바에 따라 실패가 예견된 일에는 뛰어들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수 있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실패해 본 자가 성공 또한 해낸다는 것도 아주 지당한 말씀이라 하겠다. 실패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의 이 몸부림은 심지어 의식의 영역으로부터 촉발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반 강제(?)로 숨 쉬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자율 신경계의 일부인 마냥 저절로 행동에 배어 나온다. 그 정도로 (애완견의) 보상 훈련의 효과는 강력한 것이다!
이제는 이 문장을 2.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실패로부터 비롯되는 쓴맛이 어느 정도로 쓴 지, 그 비참함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고통이 닥치는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한번 당해보라는 뜻이다. 그러고 나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질 테니까. 그러나 아무리 멋진 의도가 뒤에 숨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실패는 끔찍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니, 이건 감각이 마비된 자가 아니고서야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물론 3. 실패를 통해 배우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이 명언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잘못 생각했는지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서 그 과정과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다음번에는 당연히 더 잘할 수 있게 되리라는 반박 불가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렇게 실패를 쌓아 올리고 그 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서 끝끝내 성공에 도달하라는 긍정의 메시지인 것이다. 아, 그러거나 말거나, 전구를 만들기 위해 수천 번의 실패를 견뎌낸 에디슨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모자란 인간인 내게 있어 실패란, 그저 겪을 때마다 너무 괴로운 일일 따름이다… 너무 싫고, 무조건 피하고만 싶다.
그럼에도 나는 꾸역꾸역 생각을 고쳐먹는다. 자꾸 실패하는데도 자꾸 시도하는 이유는 결국 성공을 원하기 때문이다. 성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없다면 결코 이 무수한 실패들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이다음번에는, 계속 그런 식으로 스스로의 정신을 마취해서 실패의 고통을 무시하면서 나아간다. 내가 실패한 것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성공으로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한심한 강박이 점점 쌓아 올려진다. 그러면 나는 나를 더 학대하고 혹사시키고… 이래서 실패가 무섭다. 이래서 실패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다. 이건 당연한 본능이다.
그래서(다시 한번 꾸역꾸역 생각을 고쳐먹는다), 글의 앞단에서 나는 인생의 작은 성공 경험들을 지속적으로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실패는 계속 두렵고 앞으로도 두려울 것이다. 대신 우리는 다시 훈련을 받는 개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내가 제대로 해낸 순간에 떨어지는 그 쬐끄만한 간식을 확실하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게 아무리 작아도, 당장 나를 배부르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간식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깨닫고 나면 그 보상을 다시 한번 얻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노력하게 될 것이다. '성공의 맛을 아는 자'라더니, 역시 이런 표현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 더해서 내가 나를 ‘자주 성공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뭘 하든 ‘실패’를 예상하고 두려움을 느끼며 매 순간 임하는 것 대신에, 어지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 있게 도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당장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큼의 기대감과 열정, 에너지,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이다. 실패를 기대할 바에는 성공을 기대하는 편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러 모로 이득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한참 전에 나는 이 글의 제목을 반대로 적는 바람에 실패를 +1 쌓았다. 덕분에 나는 다음에 또 글을 적을 때에는 제목을 두 번 체크할 것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언의 뜻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자신 있게 글을 적어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하고 완성해 냈을 때에 주어지는 쬐끄만 성공의 간식보상 또한 최선을 다해 만끽하여 내일 또 무언가를 시도해 보기 위한 내면의 힘을 마련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호! 오늘도 성공했다!'라고 외치며 글을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야... 호... 성공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작자 미상
이 명언의 정확한 원문과 창시자를 한 사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 문장은 여러 문화권에서 비슷한 형태로 존재해 왔으며, 특히 토머스 에디슨과 관련한 일화로 인해 유명해졌지만 에디슨이 실제로 이 문구 자체를 직접 말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에디슨은 다만 '그렇게 많이 실패했는데 포기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작동하지 않는 1만 가지의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
("I have not failed. I've just found 10,000 ways that won't work.")
어쨌거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상징적 표현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용기를 가지라는 인류 보편적인 교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