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은 흐른다.
-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은 흐른다’의 ‘만물’에는 지금 여기 앉아있는 ‘나’도 필히 포함이 된다. 만물이 흐르듯이 나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표현에서도, 이 ‘같지 않음’은 흐르는 강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발을 담근 ‘나’도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흘러가버리는 지금, 힘들고 고통스러운 지금의 순간도 흐르고 있다는 자각을 가능케 해 주기 때문이다. 만물이 흐르듯이 나의 존재도 끊임없이 휘어지고 펼쳐지면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꼭 좋은 방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의 상태가 영원히 고정된 채로 지속될 리 없음을 깨달으면 어떤 상황에서든 겸손해지거나 덜 절망적이 되거나 하는 식으로 내게 생각을 바로잡을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이 짧은 문장은 참 대단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대립과 투쟁의 조화’가 만물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근본 원리라고 보았다. 유명한 예시로는 활의 작동 원리가 있는데, 활시위가 당겨질 때, 활의 장력은 바깥쪽으로 향하고 시위는 안쪽으로 당겨지면서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니까 대립과 투쟁, 갈등은 ‘만물은 흐른다’의 ‘흐름’을 담당하고, 이런 변화와 역동성이 우주 전체를 움직이는 질서라고 본 것 같다. 이 싸움이 끊이지 않는 상태야말로 조화롭다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이 내게는 꽤 살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성과 감성이 작동하지 않는 사물에 있어서는 이런 힘의 균형 상태가 안정됨, 조화로움을 가져오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나약한 보통의 인간인 내게는 이런 '균형'이 벅찬 일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잡아당기는 어떤 힘에 맞서서 똑같은 힘으로 버티지 못하면 나는 끌려갈 것이고, 나를 찍어 누르는 힘에 대항해서 반대로 힘껏 밀어 올리지 못하면 그대로 깔려 죽고 말 것이니, 이 문장은 결국 이치에는 맞는 말이겠지만 나는 물러터진 홍시 만도 못한 마음을 가진 찰흙덩어리인지라 어떤 날에는 그만 납작하게 눌려 터져 버리거나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만약 헤라클레이토스가 아스팔트 바닥에 눌어붙어 터져 버린 지금의 나를 본다면 그는 내게 ‘조화롭지 못하다’고 말할까? ‘일어나! 너 때문에 지금 균형이 무너졌잖아!’라고 호통치면서? 아니면 자연스러운 힘의 균형에 따라 내가 떨어져 나간 것을 두고 ‘역시 만물은 흐르는군’이라고 말하고 스쳐 지나가려나? 지금 나는 비난을 하려는 게 아니라 이 대립과 투쟁의 시간을 부족한 인간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쪼잔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뿐이니 부디 오해는 하지 마시라.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맥락은 이런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내 멋대로 '만물은 흐른다'를 해석해보고 있을 따름이다.
일면 평화로워 보이는 한 사람의 내면에서도 언제나 이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 한편에서는 '이딴 글, 적어서 무슨 소용이 있어?'라고 말하고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 적어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에게 의미가 있어.'라고 말한다. 이런 종류의 내면적 싸움도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라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에 부합하는 것일까? 내 마음이 이렇게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뉘어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내버려 두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매 순간 행동거지를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말 한마디와 작은 눈썹의 들썩임까지도 신경을 쓰면서 나 자신의 ‘본능적인 무례함’, 즉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근육의 충동적인 움직임을 통제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는 내 마음은 결국 어느 한쪽을 편들고 있는 셈이니, 나는 비등비등한 힘으로 서로를 견제하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곧 조화이며,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라던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무시하는 오만함을 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의 미운 부분이란 내가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내 마음의 미운 부분과 그걸 바꾸고자 애쓰는 좋은 마음 간의 전쟁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끝끝내 한쪽이 승리하거나 둘 다 멸망하거나 하는 이유로 이 전쟁이 일순간 끝나버린다면, 나는 이쪽 방면으로는 더 이상 변화라는 것을 도모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승리한 쪽의 역사가 옳았던 것으로 기록될 것이며, 나의 이성은 그 역사서를 원칙 삼아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잡아나갈 것이므로. 패배한 쪽은 영원히 내 무의식의 심연 깊은 곳에 위치한 독방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살게 되리라. 그 못난 마음이 얼마나 정당했든, 얼마나 억울하게 패했든, 이제 나는 그의 말은 철저히 무시하려고 들 게 틀림없다...
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고방식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서로 끊임없는 견제와 투쟁을 벌이며 서로 밀고 밀리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듯이, 나의 인간적인 성장에 있어서도 더 이상 나와 싸워줄 무언가가 없는 상황을 두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유리병 속에 갇힌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병 바깥의 상대를 인지하고 맞부딪치며 배우고 성장한다. 이런 싸움의 대상이 없는 인간이란 자신이 갇혀 있는 유리병 안에서 성장을 도모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또는 그 안에서 완전히 고인 채로 썩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계속 싸우고 투쟁한다는 것은 깨뜨릴 수 없는 유리병을 스스로 넘어뜨려 계속 굴리면서 몸집을 키우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평생을 외쳐왔다. '고통은 당연하고, 인생은 전쟁이며, 삶은 지옥이다!' 나는 타인과 대화할 때에는 ‘나 자신과의 전쟁을 멈추면 안 된다',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싸우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또 동시에, (비밀스럽게)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찾아올 ‘마음의 평화’를 간절히 바라온 모순된 인간임을 인정한다. 나도 편안해지고 싶고, 이 긴장 상태의 끈을 끊어버리고 싶고, 투쟁하고 대립하는 것을 그만둔 채로 그저 침대에 몸을 던져 눕고만 싶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푹신하고 포근한 침대마저도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장을 증명하는 증거물 8475398번일 뿐이다. 매트리스 속의 포켓스프링이 갑작스레 던져진 내 몸의 굴곡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나를 아주 ‘균형 있게’ 반대 방향으로 밀어 올려준 덕분에 내 몸뚱아리와 매트리스는 ‘조화’를 이룰 수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편안함을 느껴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에서 벌어지는 이 지극히 사적인 전쟁을 멈출 명분이 내겐 없다. 내게는 계속 나와, 타인과, 세상과 싸우고 투쟁하면서 힘의 균형을 맞춰가야 할 이유만 너무 많다. 나는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으므로. 그렇다면 나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운 채로 철저히 헤라클레이토스의 원칙에 따르고 있는 이 포켓스프링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이 대립의 끈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단단하게 감아쥐고 내 쪽으로 당길 수 있어야 한다. 이걸 놓는 순간을 우리는 ‘포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걸 있는 힘껏 당기고 있는 이유를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말하는 행복과 성공, 승리는 내가 당기는 힘이 반대의 힘보다 압도적으로 강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반대로 끌어당기는 힘의 크기에 딱 맞게, 최대한 비슷한 세기의 힘으로 당겨야 침대에 드러누운 몸뚱아리가 서서히 끌려올라가 본인의 두 발로 땅에 똑바로 설 수 있는 것일 테다. 내가 너무 세게 당기면 나는 일어나다 못해 앞으로 고꾸라져 코가 깨질 것이고, 너무 살살 당기면 계속 침대에 누워 있게 된다.
너무 소중한 기도이기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 ‘만물은 흐른다’. 나는 계속 투쟁한다. 나를 포기하는 건 나 자신뿐, 나를 계속 찍어 누르려고 힘을 가해 오는 이 세상은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이겨먹으려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세상에 두 발로 똑바로 서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니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엄청난 괴력이 아니다. 세상의 무게에 딱 맞는 정도의 힘, 그거면 된다… 하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운동이라고는 쥐똥만큼도 해오지를 않아서 내 몸뚱아리 하나 들어 올릴 기본적인 근육조차 없는 지경이다. 아, 아니, 또 비관에 빠지지는 말고. 그 정도 힘은 이미 내 안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어차피 만물은 흐르고, 지금 내 안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평생 없는 채로만 존재할 리도 없다. 다만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법한 지점은 오히려 괴력을 내는 것보다 딱 필요한 만큼만 힘을 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참 중간이 없는 극단적인 사람으로서, 이 ‘균형’, ‘조화’ 같은 말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말이 아닌가 한다. 결국 이 난해함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면 스스로 끊임없이 시도해 보고 움직여보는 수밖엔 없을 것이다. 타고나기를 감이 좋게 타고난 인간들이 부럽다. 하, 부럽다! 하지만 역시 만물은 흐른다. 나는 오늘 시도하고 실패해 본 다음에 조금 조율해서 내일 또 시도하고 또 실패할 것이다. 만물이 흐르듯이 나도 끊임없이 흐르는 힘으로 끝끝내 드러누운 침대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다. 그거면 됐다. 나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만은 세월을 따라 흘러가버리지 않도록 잘 붙들어 매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투쟁이다.
만물은 흐른다.
-헤라클레이토스
세상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만물유전설’을 짧게 설명한 표현이다.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운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사상을 ‘판타 레이(panta rhei)’라고 부른다. 비슷한 말로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