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에 처음 유럽 땅을 밟아 보기 전까지 유럽은 나와 상관없는 아주 다른 세계였다. 우선 20대 때는 돈이 없었고,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유럽 여행을 갈 만큼의 관심이나 열정이 없었다. 그런 내가 서른 살에 혼자 유럽 3개국 여행을 떠났고, 이후 서른 하나에 다시 유럽에 와서 6년째 살고 있다. 대체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걸까.
아홉 수를 믿고 싶지 않았지만 참 지독한 스물아홉을 보냈다. 사랑의 실패로 인한 자존감 바닥.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을 겨우 붙잡고서 출근을 했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널브러져 남자 아이돌이 나오는 방송만 골라 봤다. 그렇게 잠시 현실 도피를 한 후 자정이 넘어서 한참을 뒤척거리다 잠이 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또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약속을 잡기도 했다. 차라리 그렇게 정신없이 사람들과 만나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한참을 떠들다 피곤에 쓰러져 자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었다. 사실 전략이고 뭐고 어떻게든 그 시간을 지나가야 했던 것뿐이지만.
어쨌든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2배속, 3배속으로 흘러가 주진 않았다. 모두가 벚꽃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봄에 한 이별 이후 이 모든 스물아홉의 지독한 시간들이 빨리 퇴화하고 허물로 벗겨져서, 서른이라는 새로운 막이 어서 드러나기만을 바랐다. 나는 누구일까,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그쯤이었다. 누군가의 관계에서 나를 바라보거나 만들지 않고, 오롯이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아도, 사랑받지 않아도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채울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술을 잘 모르지만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교 교양 수업 때 미술사와 관련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명화 속에 숨겨진 의미를 함께 찾아보고 해석하는 것이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과제를 하기 위해 이제껏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미술관들을 가볼 기회도 있었다. 그땐 과제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누군가 소중하게 잘 간직해온 숨겨진 보물을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설렘이 컸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반 고흐 전이 크게 열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았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미술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조예가 깊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 멈춰 서서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고흐의 그림이 주는 묵직한 평안함. 그 느낌을 꽤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을 언젠가 마음껏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하면서.
어느 날, 점심을 먹으며 J언니의 첫 유럽 여행기를 듣게 되었다. J언니처럼 진지하게 재미있는 사람을 아직도 난 본 적이 없다. 그 언니가 가볍게 툭 던지는 한마디도 나에겐 깊고 의미 있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막연하게 한 번쯤은 유럽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렇지만 전제도 항상 붙었다. ‘기회가 되고 시간이 되면.’ 이 정도면 거의 안 가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의 홍보 실무를 혼자 도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을 껴서 가까운 데로 며칠 만이면 모를까 유럽은 퇴사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것이었다. 내가 서른이 되는 다음 해에 설 연휴가 꽤 기니까 한번 생각해봐야겠다며 유럽 얘기의 종지부를 찍으려는데 “존재야, 일단 비행기를 끊어. 끊으면 어떻게든 가게 되어 있어.” 가볍게 툭 던지는 것 같지만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 마지막 말. 그때 직감했다.
내년에 나는 반드시 유럽에 가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