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있던 구두를 확 벗어 던져버리고 싶었던 그날
그렇게 난 갑자기 화장실에서 얼떨결에 스크리닝 인터뷰를 보게 됐다.
처음에는 인터뷰라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간단하게 몇 가지만 확인하고 끝나겠지 했는데 웬걸 리크루터가 내 경력에 대해 꽤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라커룸과 화장실이 같이 있어서 동료들이 들락날락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고, 내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인터뷰라 대답은 잘해야겠는데 그렇다고 거기 있는 사람들 다 들리게 또박또박 크게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일랜드에 온 이후 영어로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항상 긴장되고 불편했었는데 리크루터와 전화 인터뷰를, 그것도 일하고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화장실에서 하고 있다니...
내가 실은 아주 무척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리크루터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정말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 집중 또 집중했다. 마음 같아서는 리크루터에게 나중에 다시 통화해도 괜찮을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이게 마이너스가 될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어찌어찌 (내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는) 대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쉬는 시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이제 곧 가장 바쁜 점심시간이 시작될 참이었다. 12시가 되면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긴장이 탁 풀리고 머리가 하얘졌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터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돌아볼 새도 없이 부리나케 1층으로 내려갔다.
며칠 뒤에 리크루터에게 한번 더 연락이 왔고, 과제와 인터뷰에 대한 안내를 메일로 받았다.
나도 드디어 인터뷰라는 것을 드디어 해보는구나.
리크루터가 면접 날짜, 시간, 장소와 함께 면접을 준비할 때 참고하면 좋은 자료도 보내주었다. 구글에서 '인터뷰에자주 나오는 질문'을 검색하자 수많은 자료가 쏟아졌다. 이를 토대로 예상 질문을 뽑았고 답변지를 만들었다. 인터뷰 경험이 있는 남편에게도 조언을 구했고, 어느 정도 답변지가 완성이 됐을 때는 남편에게 교정을 부탁했다.
면접에서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옷장을 열어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죄다 모자 달린 점퍼에, 청바지에, 티셔츠에...
한국에서 직장 다닐 때 입었던 옷들은 애초에 가져오지를 않았고, 여기에 와서는 더더욱 살 일이 없었다. 급한 대로 원피스를 하나 샀고, 예전에 일했던 레스토랑 연말 파티에서 신기 위해 사서 딱 한번 신었던 7cm 하이힐을 꺼냈다. 아마 아일랜드에서 이 구두를 더 신을 일 없이 이사할 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도 놔두니까 한 번은 더 써먹는구나 싶었다.
답변지를 수차례 고치고 읽어보며 긴장 속에 며칠을 보냈고, 드디어 면접 날이 왔다. 그런데 당일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심한 몸살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한과 열, 근육통 때문에 면접 준비고 뭐고 오전 시간을 침대에서 통으로 보내버렸다. 진통제를 먹고 밥을 좀 먹고 나니 조금은 회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실로 나와 답변지를 읽고 있는데 얼마 안 가 근육통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집에서 면접을 보러 가는 회사까지 바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 결국 택시를 탔다. 딱딱한 인조가죽의 7cm 하이힐은 내 발을 계속 조여왔고, 누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1층에서 리크루터를 잠깐 기다리는 사이 오고 가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 청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운동화... 검정 정장 재킷,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있는 내 모습에서 그들과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리크루터는 나를 면접실로 안내했고, 팀 리더는 다른 건물에 있어서 온라인으로 면접에 참여했다. 그때 나는 대면 인터뷰보다 전화나 화상 인터뷰에서 훨씬 더 긴장했다. 일단 경험이 없기도 하고, 상대방의 표정이나 반응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다.
대체로 인터뷰에서 많이 나오는 질문들이 다뤄졌다. 어렵고 힘들었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나와 맞지 않는 동료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팀으로 일하는 게 좋은지, 독립적으로 일하는 게 좋은지, 나의 강점과 약점 등등. 그리고 프로젝트와 직무에 대한 질문, 그리고 내가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고 답변을 받는 것까지 해서 1시간이 정말 금세 가버렸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아주 잘 했다기 보다는 준비한 만큼은 다 얘기할 수 있었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적어도 후회는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회사 건물을 나오자마자 1시간 동안 쏙 들어가 있던 근육통이 확 느껴졌다. 하이힐을 신고 있었기에 다리부터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면접을 보는 동안에는 면접을 잘 봐야 한다는 긴장감이 너무 커서 몸살 기운을 압도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집에 갈 때도 택시를 타기엔 부담스러워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발이 아파서 계속 걷지도 못하고 걷다가 멈춰 서기를 반복하며 겨우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정장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은 내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집에 가는 길은 왜 그리 또 멀게 느껴지는지...
'아... 왜 이렇게 쉬운 게 하나도 없을까.'
면접이고 뭐고
신고 있던 하이힐을 확 벗어 던져버리고 싶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