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저 건물에서 일해볼 수 있을까?
나는 샌드위치를 만드는 곳에서 평일에 하루 8시간씩 풀타임으로 일했다. 이런 마켓이나 델리, 카페는 주말에도 보통 문을 열지만 이곳은 평일에만 영업을 했는데 주변이 모두 오피스 건물이어서 주요 고객이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위치도 큰 도로가에 눈에 띄게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숲 안에 숨어 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고객이 이곳을 알고 찾아오는 단골이다.
아침 7시부터 일찍 문을 여는 이유도 아침을 사러 오는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포리지와 아이리쉬 브렉퍼스트 롤은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주변에 이렇게 막 만들어서 따끈하게 파는 곳이 없기 때문에 내가 그들이라도 단골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다. 피크 타임인 점심시간에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샌드위치를 사러 온다. 한 주에 두세 번씩 오는 단골도 자주 오는 편이지만 매일 오는 단골도 있다. 개인적으로 친분은 없어도 이런 단골들과는 자연스럽게 내적 친밀감이 생긴다. 더군다나 이들은 항상 똑같은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재미있는 것은 얼굴만 봐도 뭘 주문할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내 손이 재료 쪽으로 먼저 움직인다. 역시나 그 손님은 같은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손님도 나도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피스 빌딩 숲에 있는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아일랜드에 오기 전 6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었다. 직장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을 꼽으라면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이 아닐까. 식사를 함께 하는 동료들과 오전부터 메신저로 메뉴를 정하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회사 건물을 나가는 나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식사를 마친 후 15분 정도 회사 근처 산책로를 걸었었는데 회사가 경복궁, 서촌 근처여서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한 길이 많았다. 잠시나마 그렇게 걸으며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고, 업무로 받은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머리를 식혔었다. 회사를 다니며 유일하게 웃음이 번지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샌드위치를 사러 온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나 스스로 질문했다. '한국에서처럼 다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대답은 늘 망설여졌다. 아니 마음 깊은 곳에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I can't do it.
그즈음 남편은 아웃도어 의류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오피스 잡으로 전직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없어서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인터뷰도 봤다. 만약 나에게 인터뷰가 잡혔다면 며칠 전부터 인터뷰 준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게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대본을 달달 외울 것 같은데 남편은 굵직굵직한 아이디어만 메모해 놓고 그대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어쩜 저렇게 긴장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와는 달라도 많이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고 포기하려고 하는 나를 남편은 여러 번 붙잡고 독려했다. 그래서는 안됐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반응은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다.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도전하고 싶지 않아서 도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원했다.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나 스스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났고, 괜히 그 불똥이 남편에게도 튀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 했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링크드인 프로필부터 완성해보기로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링크드인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고, 비공개 지원을 하는 한국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나의 CV를 공개적인 플랫폼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용기를 요구하는 결정이었다. 로마에 있으니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처럼, 유럽에 있고 여기에서 직장을 구하기 원한다면 링크드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렇게 링크드인의 프로필을 완성하기는 했지만 한국에서의 직장 경력을 제외하고 별로 적을 내용이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받은 학위도, 인턴 경험도 없었다. 태국 레스토랑과 마켓에서 일했던 나의 경험은 오피스 경력과는 너무나 무관해서 CV에 적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1:1로 가르치고 있었던 것과 짧은 동화책 한 권을 번역했던 것으로 그나마 두 줄을 추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프로필을 완성하고 첫 단추를 끼웠다. 해외에서 직장을 구해본 경험이 없으니 모든 것이 막연하게 느껴졌다. 자신감이 충만해도 인터뷰에서 제대로 실력을 다 발휘할까 말까인데 내 영어 실력으로 무리 없이 인터뷰를 보고, 업무를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지 도저히 확신이 안 서니 지원이고 뭐고 내 마인드셋부터 바꾸는 것이 시급했다.
'나는 못한다.' 울고 불고 해 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직업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은 내 마음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글로벌 기업에서 한국인을 뽑는 포지션을 발견했다. 이전 같으면 지원조차 해볼 생각도 못했겠지만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몇 번을 되뇌었다.
CV를 업로드하고 제출 버튼을 눌렀다.
며칠이 지났다.
오전 쉬는 시간에 휴게실로 올라와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 같으면 받지 않았을 텐데 데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아 급하게 휴게실 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리크루터로부터 온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