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 때는 몰랐지만 아일랜드에 살면서 제대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공원'의 소중함이다.
6년 전 더블린에 도착하고 다음 날, 처음 시내에 나갔다. 더블린의 시티 센터는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주요 장소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있어 늘 붐비는데 그날 마침 토요일이어서 트리니티 대학 정문부터 그라프톤 스트릿까지 오고 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제 막 더블린에 온터라 어디가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는 데다 가뜩이나 사람들도 많아 정신이 없었는데 그라프톤 스트릿의 끝에서 어디서 많이 본듯한 공원의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영화 '원스'에 나오기도 했던 '스티븐스 그린' 공원이었다.
'와,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 한복판에 공원이 있다니.'
그날은 정문까지만 가보고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그 이후로 나의 삶은 거의 1일 1 스티븐스 그린 공원이었다. 학원이 근처에 있어서 평일에 학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공원에서 자주 점심을 먹었고, 학원에서 시내로 갈 때에도,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일부러 스티븐스 그린 공원을 통해서 가곤 했다. 왠지 모르게 공원에 들어서면 마음이 늘 편안했고, 특히 지치고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는 더욱 위로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사람들과의 약속 장소도 일부러 공원으로 잡았다. 특히 아일랜드의 여름에 공원은 여느 카페나 레스토랑에 비할 수 없이 만남의 장소로 완벽하다. 같은 어학원에서 만난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도 스티븐스 그린 공원에 자주 갔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눴던 여러 모로 좋은 기억들이 참 많은 곳이다.
이렇게 공원의 맛을 알게 된 나는 더블린에서 제일 쉬운 것이 '공원 찾는 것'이라는 것도 금세 알아버렸다.
더블린에 살면서 집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뷰잉을 참 많이 다녔었는데 어느 동네를 가나 크고 작은 공원 한 두 개가 꼭 있었던 것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날씨에 따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공원에는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 뛰고 있는 사람들,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축구를 하는 사람들, 누워 있는 사람들,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이 있다.
금방이라도 내게 닿을 것 같은 구름과 낮은 하늘, 곧게 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다소 쌀쌀하지만 몸이 움츠러드지 않을 정도의 바람,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녹음, 그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안식하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 있노라면 나는 실로 안식을 넘어 공원이 가진 치유와 재생의 힘까지 느끼곤 했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나서 공원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해졌다.
몇 개월 간 지속된 락다운 동안에는 5km 이상의 이동, 사람들과의 접촉이 제한됐고 모든 레스토랑과 카페가 문을 닫아 정말 집과 공원, 마켓만 왔다 갔다 했었다. 겨울에는 해가 너무 빨리 져서 참 힘들었는데 그나마 햇살이 나올 때 동네 공원에서 잠깐이라도 산책을 하며 우울한 기운을 떨칠 수 있었고, 일이 끝난 후에는 남편과 함께 공원에서 뛰며 러닝의 즐거움을 다시 맛보기도 했다.
포르투갈에 온 지 한 달 반,
나는 아일랜드의 공원이 무척 그립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그렇고, 다른 도시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리스본에서는 아일랜드와 같은 공원을 찾아보기가 참 힘들다. 구글맵에서도 검색해 봤지만 집 주변에는 아쉽게도 없었다.
공원이라고 나와서 눌러보면 실제로는 공원이 아니라 체육 시설 같은 곳이고, 조금 큰 공원다운 공원은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동료가 사는 지역에서 동네 공원이라고 하는 곳을 가본 적이 있는데 크기가 작고, 벤치 몇 개, 나무 몇 그루 심겨 있는 정도여서 내가 생각하는 공원과는 너무 달랐다. 아일랜드에서 끝없이 잔디밭이 펼쳐지는 공원을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꽤 넓은 녹지가 중간중간 나오는데 "이런 곳을 공원으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남편과 자주 얘기하고는 했다. 처음 리스본 공항에 도착해서 비앤비로 이동할 때 언덕 언덕마다 얼마나 촘촘하게 아파트가 들어서 있던지... 이 도시의 빽빽함을 상쇄시켜줄 공원 같은 장소가 군데군데 있어야 함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면 모두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어느 곳이나 장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마음 편히 산책하고 쉴 수 있는 동네 공원이 없는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느껴질 것 같다.
어쩌면 아일랜드를 떠나온 나를 향한 아일랜드의 얄궂은 복수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