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4일 토요일
30살은 너무 빨리 왔다.
나는 지금 부모님 집, 내 방 침대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노란 스탠드 불만 하나 켜놓고 5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고장 난 적 없는 노트북을 켰다.
남자 친구의 전화 너머 스무 살짜리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듣고 난 후, 나이 타령을 하려 글을 쓰려다 문득 내 방을 둘러보았다.
어제 인터넷 주문으로 산 봄옷, 30살 처음으로 샀던 명품 시계와 주얼리, 28살 첫 연애 때 그에게서 받은 인형들, 26살부터 4년 동안 다닌 첫 직장에서 만든 미술 교과서, 25살 처음 그림책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모았던 자료들, 24살 대학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던 주얼리 세트, 심지어 초등학생 때 쓰던 스케치북까지 역사가 담겼다.
짐이 너무 많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는 대학교 3, 4학년 때였는데, 그동안 모은 돈으로 엄마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었다. 새 아파트는 처음이었다. 벽지가 예뻤고, 깨끗했고,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내 방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비좁고 짐이 너무 많게 느껴진다. 다 갖다 버리고 싶다.
서른 살이 넘으니 확실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확고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더 크게 말하고 싶다. 하고 싶은 분야에서 경력을 쌓지도 않았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고, 심지어 지금은 퇴사까지 한 상태이다. 하지만 왠지 이 짐을 다 정리하고 나면 내가 되고 싶던 내가 되어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한 바탕 내 인생에서 생긴 짐들을 털어 버릴 시기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