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크로키

프롤로그

by 고스무 도우치

어린 시절, 미술을 배울 때 종종 ‘크로키’라는 것을 했다. 조금 빳빳한 종이에 붓펜으로 그린다. 주로 사람을 모델로 세워두고 관찰한다. 크로키의 생명은 스피드. 선의 굵기를 조절하여 사람의 윤곽부터 이목구비, 옷의 주름까지 세세히 묘사해나간다.


크로키는 여러 재료를 바꾸어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게으른 내가 좋아하는 활동이었다. 다만 검은색 펜 하나로 이것저것을 세세히 묘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또한 게으른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활동이기도 했다.




"당신의 생애 최초의 기억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생애 최초의 기억이 한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중요한 질문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질문을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해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듣는 일을 좋아한다.


단 하나뿐인 최초의 기억 외에도 우리는 수많은 기억 타래들을 둘둘 감은 채 살아간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것이, 왠지 너무 어렴풋하고 이상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기억은 말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이 질문을 받은 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기억을 글로 풀어내보기로 했다. 기억을 써보는 일은 재미도 있고, 필요도 있다.




기억의 장면을 형형색색으로 칠하지 않고도, 그저 백지에 까만 글씨로 휘리릭 그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에게 보이는 대로, 내가 느꼈던 대로, 내가 쓰고 글이 쓰이는 대로 세밀하게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글이 된다는 것이 당연하지만 참 신기하다. 내가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은, 그 기억들을, 그것에 관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세세히 지어내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일은 재미도 있고, 필요도 있으므로, 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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