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첫 기일

윤년의 제사법

by 고스무 도우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나는 할머니에 대해 더 자주, 더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가까이 지내지 않았던 외삼촌이 돌아가신 뒤 몇 달은 울음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곤 했는데, 최근 1년 정도 나는 외삼촌 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더 잦아졌다. 살아계시던 마지막 몇 해 동안 아예 할머니라는 존재를 잊은 듯이 살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요즘 내가 할머니와 관련된 그다지 많지 않은 기억을 되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때로 우습기까지 하다. 하지만 할머니가 자꾸만 꿈에 찾아오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를 읽어왔다. 어느 날 나는 또 한 번 꿈에서 할머니의 기묘한 모습을 보았고, 그날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뽑아 들었다. 다른 것을 읽느라 며칠간은 이 책을 외면하다가 한 차례 반납기한 연장을 하고도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잠자리에 들어 이 책의 첫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윤성희의 <어제 꾼 꿈>이라는 단편이었다. 그 소설에서는 할머니를 남겨두고 떠난 할아버지가 아들이며 딸이며 처제의 꿈속에 찾아다녔다. 오로지 할머니만 쏙 빼놓고. 그날 우리 할머니는 내 꿈에 찾아오셨나. 어쩌다 보니 매일 밤 다른 이의 할머니와 나이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읽다보니, 할머니의 기일에 딱 맞춰 소설집 한 권을 끝내게 되었다.


오늘은 할머니의 첫 기일이다. 윤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제사는 정오에 치러졌다. 대구는 이미 여름. 오늘도 해가 아주 쨍쨍하고 무더웠다고 한다. 제사는 밤에 모시기 때문에 귀신들은 밤에만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귀신은 밤에만 돌아다닐 수 있어서 제사를 밤에 지내게 된 건가. 우리 할머니는 환한 대낮에,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당당한 호랑이 할머니로 오셨으면 좋겠다. 그러고는 우리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약한 그 모습 그대로 오셨으면 좋겠다. 불호령을 내리던 모습도, 눈시울을 붉히다 눈물이 나오기도 전에 하얀 난닝구로 눈을 훔치시던 모습도, 나와 오빠만 보면 싱글싱글 웃으며 우리 머리와 볼과 등과 손을 자꾸만 쓰다듬으시던 그 거칠고 쪼글쪼글하고 얼룩덜룩한, 그 고운 손으로 오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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