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의 감각

운동회의 소리와 피로에 관하여

by 고스무 도우치

지금 나는 아이들이 합창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 소리는 빗소리를 뚫고 멀리서도 예쁘게 들려온다.


초등학교 주변에 살면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들이 있다. 가장 잦은 것은 종소리다. 가끔 초등학교 종소리에 잠에 깨어서는 '아이들은 벌써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옷 입고 가방을 챙겨서 학교에 갔겠구나.' 하며 몸을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문득 내가 가장 듣고 싶은 건 운동회의 소리들이다.


운동회의 감각은 아주 가끔 나를 간지럽힌다. 소리도 냄새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도, 그 무엇도 아니지만 어딘가에서, 몸 어느 곳에서 간질간질 피어오르는 듯한 그 감각. 어쩌면 소리와 냄새와 생각과 그 모든 것들이 다 잘 섞인 채로 (..몸 어딘가에 잘 펴 발린 채 저장되어 있을지도.) 그중에서 나는 오늘 '소리'에 관해 생각하기로 한다. 빗소리와 차 소리, 지나가는 사람 말소리와 집안의 냉장고 소리, 전등 소리 등 모든 소리들이 귀로 쏟아지는 지금 나는 운동회의 소리들을 힘껏 상상해보고 있다.


장난기 가득한 배경음악 소리, 와글와글 모인 가운데 여기저기 튀어 오르는 즐거운 비명소리, 마이크를 타고 울리는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 제각각 아이들의 율동에 맞추어 흐르는 다소 탁한 음악소리, 탕- 하는 총소리, 여리고 가는 것들이 모여 우렁차게 부서지는 함성 소리...




운동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늑한 집 냄새를 침범하는 사각거리는 모래 냄새와 땀 냄새가 뒤범벅이 되어 온몸이 찐득해져 있다. 그날은 학원도 쉬고 일찌감치 샤워를 하고는 낮잠을 자곤 했다. 노곤한 몸을 침대에 뉘이면 온몸에서 '운동회의 피로'가 덮치듯 밀려온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서른 살이 넘어버린 지금도 가끔은 '운동회의 피로'가 느껴지는 때가 있다. 하루 종일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상하게도 운동회 후의 몸에 찾아들었던 그 감각이 고대로 느껴진다. 그럴 때 나는 꼭 '운동회 끝난 때랑 똑같아' 하고 말한다. 이제는 몸이 다 커버린 나는 그때와 똑같이 샤워를 하고, 다른 할 일은 미뤄둔 채로, 잠에 빠져든다. 피로를 조금씩 축적한 채로.


내가 듣지 못하는 운동회가 내내 있어왔을 것이다. 또 아이들은 웃고 떠들고 소리를 지르고 율동하고 달리고 넘어지고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울고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는 운동회도 멈추었다. 어쩌면 운동회는 코로나 이전부터 서서히 멈춰왔는지도 모른다. 이 아이들은 자라서 몸이 무지하게 피곤할 때 어떤 감각을 떠올리며 잠들까?

차라리 시간도, 성장도 다 멈춰서 모든 게 다 끝나고 나면 다 같이 탕- 하고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먼 미래의 아이들과도 운동회의 감각으로 합심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가망도, 자신도 없는 바람이 쓸쓸하게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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