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나픽추>>>>>마추픽추
공실률 80%인 호스텔에 나와 마지막 여정을 떠났다. <갓수 : 마추픽추로 마지막 여정>을 찍어야 하는 날이다. 충분히 고산지대로 올라왔으니만큼 이날의 길은 평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걸어야 하는 길은 '페루레일'이 지나는 길이다.
기차를 타지 않는 대신, 철로를 걷는다. <건축학개론>처럼 분위기 있게 남녀가 오손도손 걷는 그림은 생각하지 말자. 울창한 수풀에 스콜처럼 비가 왔다안왔다하는 기후에 낭만따위 없다. 우비를 뒤집어쓰고 <인디아나존스>가 된 것처럼 걸어야 한다. 벌레따위는 이제 무섭지 않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우비를 뒤집어쓰고, 빗방울이 멈추면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괴롭혔다. 꾸역꾸역 기찻길을 걸어간다. 걸어가다보면 저 멀리서 페루레일 기차가 오기도 한다. 예의바르게 길을 비켜주자. 철로는 우리 것이 아니다.
그렇게 걷고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은 <아구아스깔리엔떼스>였다. <쿠스코>가 페루의 배꼽이자 마추픽추의 입이라면 <아구아스깔리엔떼스>는 마추픽추의 목젖쯤 된다. 저 곳에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까지 올라가면 된다. 왜 저서기까지 기껏 걸어놓고 버스를 탔냐고? 마추픽추는 일일 입장 관객 수에 제한이 없다. 일찍 들어가서 늦게 나가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걸어가면 2시간이나 걸린다. 아침 8시 입장을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날 수는 없다.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서 숙소를 잡고 들어갔다. 도착하니 점심과 저녁 사이였다. 우리는 씻고 저녁을 먹었다. <아구아스깔리엔떼스> 광장을 지나가다보니 한 소녀떼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을 보니 어디서 왔냐고 묻더라. 당당하게 "싸우쓰 코리아!"라고 답을 하니 한국 노래로 답가를 주더라(..). 졸지에 사진도 같이 찍었다. 한류는 위대하다. 위대한 한류의 참맛을 느끼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소소하게 캔맥주 한 캔씩 하고 잠이 들었다.
새벽 같이 일어났다. <아구아스깔리엔떼스>의 버스정류장엔 나를 포함한 수십 명의 관광객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니 마추픽추 매표소까지 30분이 걸렸다. 자, 이제 남미 여행의 알파이자 오메가, 빛과 소금인 <마추픽추>를 볼 차례였다. 티켓을 보여주고 입장했다. 그림은 참으로 위대했..다!
..가 아니라 햇살 없이 안개가 짙었다. 1~2월의 남미는 우기라 구름이 많다. 특히 <마추픽추>는 고산지대라 심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날씨가 좋아졌었다. 풍경은 흐리지만, 우린 그 풍경 안에 있었으니까. 아니, 풍경이 우릴 감싸안고 삼켰다.
마추픽추의 풍경은 절경이었다. 깎아지른 산맥 위에 있는 천년의 고도는 장관이었다. 페루 정부도 열심히 관리를 해서 그런지, 보존이 잘 되어있었고 쓰레기도 없었다. 우리는 가이드의 진행에 따라 곳곳의 스팟을 따라갔다. 알파카와 사진도 찍었다. 물시계, 무덤, 음식창고 등등 여러 곳의 설명을 들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 마추픽추는 마음으로 보는 거다.
같이 여행을 한 포르투갈 친구들과는 여기서 헤어졌다. 우리는 <마추픽추> 뒤에 있는 고산인 <와이나픽추> 입장권을 끊어놨다. <와이나픽추>는 <마추픽추> 뒤에 있는 고산으로 인터넷에 나오는 '마추픽추가 한 눈에 보이는 사진'은 거진 여기서 찍었다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마추픽추>와 달리 유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높은 산'이다. 너무 높은 산이라 안전시설도 미비했다. 실제로 꽤나 많은 관광객이 <와이나픽추>에서 떨어진다더라.
<와이나픽추>에서 두 발은 사치다. 90도 가까이 깎아지른 산을 두 발로 올라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동방예의지국 출신인 우리는 공손하게 네 발로 <와이나픽추>를 영접했다. 폐도 4개였으면 좋으련만 폐는 예의없게 2개뿐이었다. 밧줄로 된 손잡이가 계단 옆에 있었지만 네 발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양구 출신 빠블로, 카투사 출신 김샤카와 왕멘, 공익 출신인 나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청년 4인팟은 그렇게 처절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 옆에는 미국에서 오신 60대 노부부가 올라가고 계셨다.
네 발로 공손하게 올라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그림은 상상하지 않았다. 그저 올락가기만 했다. 꾸역꾸역 올라가니 정상이 보였다. 정상에서 본 마추픽추는 정말 조그마한 장난감 같았다. 졸지에 백두산보다 위에 올라온 우리는 정상에서 물을 마시고 다른 관광객이 준 과자를 나눠먹었다. 일어서서 셀카를 찍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공손하게 앉아서 셀카를 찍었다. 계단이 설치되고, 손잡이가 생긴 현대에도 올라가기 힘든 <와이나픽추>를 옛날 잉카인들은 어떻게 올라왔을까.
<마추픽추>로 내려오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한 발씩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남미를 여행하러 온 거지, 남미에서 장사치르러 오지 않았다. <마추픽추>로 내려온 우리는 그야말로 탈진했다. 복원된 성벽에 기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아구아스깔리엔떼스>로 내려갔다(..). 그렇게 고생해놓고 왜 이렇게 빨리 나왔냐고? 별천지인 백화점도 1시간만 있으면 지겨운 법이다. 2시간만 지나니 마추픽추도 거기서 거기더라.
<아구아스깔리엔뗴스>로 내려온 우리는 밥을 먹고 <쿠스코>로 내려갈 기차를 기다렸다. 싼 티켓을 사기 위해 막차를 골랐다. 막차는 저녁 10시였다. 5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기차를 탔고, 숙소엔 새벽이 다 되어서 도착했다. 갓-수들은 하루라도 멈춰선 안 된다. 내일의 여행을 위해 칼 같이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