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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21. 2017

7년의 밤

객관적으로 징징충 ㅇㅈ/ ㅇㅇㅈ

#7년의 밤

##20살 이후


카페에 앉아있는데 비가 온다. 내 오른쪽에서 ‘우리은행 직무 길라잡이’를 뒤적거리던 남자분은 가신 지 오래고, 내 왼쪽에서 공부를 하시던 여성분도 가셨다. 남은 건 내 맥북과 이동진의 책 그리고 내가 먹은 일회용 커피컵뿐이다. 


20살을 넘긴 지 7년째다. 27.5세니까 7년도 넘었다. 스물을 넘기고 서른도 넘긴 수많은 선배들 앞에서 스물이 뭐 그린 대수겠냐만은, 내게 충분히 의미있는 숫자다. 


그동안 살아온 7년은 다시 되새겨보니 우산 없이 소나기를 맞은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별 생각이 없었고, 중학교 때는 게임만 하다가 외고를 가라고 하더라. 외고를 가니까 스카이를 가면 된다더라. 스카이를 가면 삶이 풀리는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주위의 어른들은 좋은 고등학교를 나오고 좋은 학교를 가면 좋은 기업에 쉽게 갈 수 있듯이 말씀하셨다. 근데, 아니더라. 


“수능 볼 때가 좋지”라거나 “니네 때가 제일 행복할 때다”라는 말에 조금 공감이 간다. 배워왔던 세상과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갈 세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맨몸으로 배우는 건 항상 힘들다. 항상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고민했고, 누구의 말을 들으며 살아왔던 사람에게 선택권이 떨어지니 힘들다. 


그래서 처음엔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일까 고민했다. 내 스스로 경로를 개척하기보단 누군가 개척한 경로를 따라가고 싶었다. 아무 것도 없는 내 이야기보단 무언가 이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 존나 성공한 사람이 운영하는 기업이랑 주갤럼이 운영하는 기업이랑 같겠냐구.


근데, 내 선배들이 살아온 세상이랑 내가 살아갈 세상이 너무 다르더라. 무언가 보장이 되던 시대, 학벌이 지대가 되던 시대가 지나갔다. 기업이 학교에 와서 줄을 서는 시대도 아니고, 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입시를 치룰 때는 정시가 절반은 됐는데, 이젠 정시로 뽑는 숫자가 너무 없단다. 비슷한 느낌이다. 


스물 위, 서른 아래. 아이와 어른 사이. 아이라기엔 민망하고, 어른이라기엔 부끄럽다. 배부른 소회일 수 있다. 나보다 먼저 세상에 던져진 사람도 많고, 나보다 힘든 사람도 많다. 객관적으로 봐서 내가 그리 나쁜 조건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위에 있지. 근데, 이런 위치에 있는 나도 이런 생각이 들면 대체 얼마나 잘못된 걸까. 

사실, 누구를 강하게 원망한 적은 없다. 모든 건 내 몫이니까 말이다. 굳이 원망하자면 ‘민주화’ 세대가 좀 원망스럽긴 하다. 왜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냐고 탓하고 싶은데, 그들도 뭐 알았겠거니 싶더라. 


선배들의 성공공식이 깨지는 마당에, 우린 스스로에게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믿고 의지할 게 없다는 것 하나만 변함없는 시대에, 한 번 사는 세상에 우리 스스로에게 한 번 걸어봐야 할 수밖에 없다. 


근데, 그게 너무 어렵다. 자존감 지키기 어려운 시대다. 발에 치이던 꿈을 짓밟아야 겨우 1인분 할까말까한 시대다. 꿈을 향해 달리라는 어른들의 말에 비아냥만 나오는 시대다. 7년의 밤이 지난 터널 끝엔 겨우 한 줌의 담담한 소회만 남은 걸까. 


가끔은 바란다. 한 번 사는 인생에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기를 말이다. 내 모든 선택의 출처가 나에게 있기를 말이다. 7년의 밤 동안 내가 배운 것은, 이 밤이 지나고 내 앞에 남은 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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