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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16. 2017

터미널, 사람들.

대학원 동기의 졸업 여행으로 통영을 가기로 했다. 내 졸업이야 1년이나 남았지만, 동갑 석사 센빠이 신영이랑 소영이의 졸업을 축하하는 겸이다. 원래 대만이나 상해를 가자고 했으나 원래 이상과 현실의 만남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블라디보스톡도 생각했는데 결국은 통영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교수님의 비행과도 겹치니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독자권익위는 8시였고, 끝내고 터미널에 오니 10시 반이었다. 10시 50분 버스였는데, 취소하고 12시 50분으로 바꿨다. 친구놈들아… 죽이고 싶었다^^. 


터미널 의자에 앉아 친구들을 기다렸다. 이 시각에 사람들은 어디를 갈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봤다.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안된다. 가뜩이나 거북목인데 더 나빠진다. 컴퓨터를 많이 하는 대두는 거북목이 될 수밖에 없다.


피엠피로 음악을 듣는 군인, 캐리어를 끄는 외국인, 고개를 숙이고 폰을 만지는 내 나이 또래의 남녀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터미널 가게 상인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하릴없이 TV를 보며 손님을 기다리는 분들, 바쁘게 커피를 만드는 투썸플레이스 알바들, 카페에 앉아 노닥거리는 커플들,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국적, 성별, 인종, 지역 가리지 않고 모습은 대개 비슷했다. 


터미널은 그런 곳이다. 여기가 아니었으면 절대 만나지 않았을법한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난다”는 같은 목적을 갖고 모인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이 하나의 목적을 갖고 모이는 공간. 이처럼 이질적인 동시에 동질적인 공간이 어디 있을까. 누군가가 떠나면 누군가가 온다. 떠나는 동시에 모이기도 한다. 통영행 버스 뒤에는 서울행 버스가 온다. 


터미널 사람들은 우리네 삶과 닮았다. 각기 다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 같은 공간에 우리네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졌으니,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지만 우린 끝없이 서로를 비교한다. 엄마친구아들, 엄마친구딸, 나보다 앞에 있는 차, 학교 동기, 고등학교 동창들 말이다. 각자 다른 삶을 꿈꾸는데, 모두가 경쟁자처럼 보인다. 상행선과 하행선을 비교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없는데, 좌회전과 우회전을 비교하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이 없는데 말이다. 고뇌에서 탈출하고 싶다면서 고뇌에 빠져든다. 


흔히들 삶의 방향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 맞는 말이다. 얼마나 빨리 가느냐만큼 어디로 가냐가 중요하다. 근데 왜 우린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고 시기하고 질투할까. 남을 보고 비교하는 것만큼 삶의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행위가 없다.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진중히 생각해 그곳으로 향하면 남은 진짜 남일뿐이다. 남을 남으로 보는 것, 그 사람들의 방향이 나와 다르니 화낼 필요도 없다. 그저 보내주면 되는 거다. 내 삶에 들어온 이를 사랑하고, 내 방향을 바라보는 것. 내 삶의 주체성을 회복해 완전히 너와 내 세계에 존재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내가 바라는 가치를 내 삶으로 끌어들이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 내 방향이 정해지면 상관없다. 천호역에서 마을버스 02를 타든, 05를 타든, 340을 타든, 3411을 타든 어차피 내 도착지는 고덕 아남아파트니까. 빨리 가는 오토바이를 부러워할 필요도, 편하게 가는 자가용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근데, 부자는 부럽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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