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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Oct 07. 2017

2016년 추석풍경

과거의 오늘, 저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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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병원엔 아침 7시 30분까지 출근했다. 응급실, 중환자실, 병동, 정신병동, 호스피스 병동 등등에 세탁물을 돌리고 나면 대충 1시간이 걸린다. 그 1시간 동안 별의 별 꼴을 다 본다.

ER에 실려온 노인 분이 힘이 없으셔서 침대 위에서 변을 보시는 상황도 있었고, 베드를 갈아드리면 살가루가 소복히 쌓여있는 노인 환자도 계셨다. "남자들은 똥 하나 겨냥 못하냐!!"라고 소리치는 청소노동자분, 아침부터 코드 그린인가 레드 터져서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들, 돌고 나면 옛날 미드 <킹덤> 생각이 나는 정신병동과 상대적으로 고요한 중환자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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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세탁물만 돌리지 않았다. 철마다 들어오는 선물들이 있다. 농장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그냥 개인적으로 후원하시는데 갖가지 과채류가 온다. 오이, 수박, 포도, 호박선물 등등.(보훈병원이라는 기관 자체에 은근히 기부물품이 많이 온다) 등등.


그럴 때는 위에 말한 병동에다가 중상이보조 아저씨들이랑 베트남참전용사모임사무실, HID사무실, 행정실까지 온갖 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요즘은 90% 가까이 현역 판정이라 그런지, 공익 수가 부족했고 혼자 저런 선물을 돌리다보면 퇴근이 늦어지는 건 부지기수였다. 간호사 쌤들은 "현모야 고생했다"며 포도 한두 송이를 줬다. 딱히 포도를 좋아하지 않던 나는 그때 친구들이랑 자주 모이던 카페 사장님한테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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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들어오는 시기는 대개 명절 때고, 그럴 때마다 괜히 씁쓸해지는 풍경이 있다. 일반병동은 대개 그렇다.

보훈병원은 그 특성상 노인분들이 많고 상대적으로 장기 입원환자가 많다(병원 1층은 점심만 되면 동네 노인회관이 된다). 혼자 뚝딱뚝딱 처리할 수 있는 젊은 환자들과 달리 이분들은 가족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의사의 진료, 처방, 검사 등등 대부분이 노인들에겐 쉽지 않고, 처리하는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다. 서비스업 노동자로서 살 때 가장 골 때리는 경우는 중년남성과 노인분들을 대할 때 자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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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족이 잘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너무나 길어진 투병 생활에 보호자가 지쳐 나가떨어진 경우다. 혹은 보호자가 삶에 치여서 오지 못하는 경우. 중환자실에 있다가 병동에 오고, 병동에서 장기 치료에 들어가는 그런 경우는 보통 환자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경우'다. 연명치료에 들어갔지만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서로 지친다. 아무리 피가 섞인 가족이어도 투병생활엔 버틸 수 없다.


아, '언제 죽을지 눈에 보이는' 호스피스 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화기애애하고 가족이 자주 찾아온 듯하다.

처음 그런 상황을 만날 땐 솔직한 심정으로 이해가 안갔다. "어떻게 가족을 버리지?", "어떻게 안 올 수가 있지?" 싶었는데, 아니더라.


1주일, 1달, 3개월, 6개월 병원에서 공익을 할수록 환자와 환자 보호자가 서로 나가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병 때문에 날카로워진, 온갖 심통이 나는 환자는 아무리 가족이어도 받아줄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보는 것도 힘들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혹은 날 가장 사랑해주던 사람이 신체적으로 쇠약해지고 병들어가고 무너지는 모습은 지켜보기 어렵다.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아도, 떨어질 수밖에 없긴 하다. 보호자에겐 보호자로서의 삶도 있고, 보호자 아닌 개인으로서의 삶도 있다. 회사는 다녀야 하고, 애는 봐야 한다. 개인으로서 사회적 인간의 역할을 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진행된다. 어쩌겠냐. 보호자도 인간인데.

막말로 모든 걸 버리고 보호자 역할만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돈이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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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투병생활을 간호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돌아가시긴 할 것 같은데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경우'가 가장 피말린다. 왜냐고? 투병은 실전이니까.


병원에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 밥값, 병원입원비용 등등. 병원에서 언제 연락올지모르니 계속 대기타고 있어야 하니 내 생활은 망가진다. 1주일만 병원에서 보호자 역할해도 화장이나 옷차림은 신경쓰지 못한다. 드라마에서 풀메이크업으로 간호하는 캐릭터는 진짜 리얼리티제로다. 만약 재수없게도 6인실에 자리가 없어서 1인실이나 2인실에 한 3일만 있어도 돈 100단위로 깨진다.


투병생활이 그렇다. 보호자나 환자나 서로 밑바닥의 밑바닥을 보고 처절하고 힘들고 난장판이 된다. 병원에 입원해서 장기투병을 하는 순간, 깨끗하고 존엄한 죽음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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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할아버지는 입원하시기 직전 본인 스스로 연명치료를 거부하셨다. 자주 입원을 하신 마당에 연명치료를 하는 것은 생을 보장하지도 못하고 본인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셨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겐 삶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자식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도 있기 마련이다. 아직 거기까지 안살아봐서 모르겠지만 살기 위해서 가족에게 안 좋을 꼴을 보이고 싶진 않으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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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이 본인 및 가족의 연명치료 거부에 대해 이상한 방향으로 왈가왈부를 한다. 불효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그게 효도라고.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해 연명치료를 거부할 것을 사전에 천명한 본인의 뜻을 따르는 게 효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도리다.


그분 가족의 선택을 보며 사람들이 논해야 하는 것은 '존엄사' 혹은 '웰다잉'이지 '부모가 아픈데 어디 감히 여행을 가'따위가 아니다. 자유, 개인, 시민, 법치, 보수 등을 논하는 분들이 저런 프레임을 운운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우리에겐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있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효도라는 미명 하에 존엄하지 않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연명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단 말이다. 효도가 어떤 놈인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부모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효도다.


자유와 청년을 기치로 내세운 사람들이 부모의 선택을 따른 것을 '불효'라는 명목으로 고발하는 촌극이다.

뭐 저런 분들이 항상 나같이 적당히 그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치를 보면서 "길게 살아보지 않아서 모른다, 요즘 젊은 것들은 징징댄다"거나 "실전경험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1년 투병생활을 한 환자의 보호자에게 "부모가 아픈데 여행을 가다니"따위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서 그분들도 참 "실전경험이 없구나" 싶었다.


막말로 그렇게 SNS할 때 부모님한테 카톡이나 드리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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