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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Oct 14. 2017

불운.

내 아픔에 대해 단 한 번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병명도,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병명도 내 아픔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듯이 내 아픔은 언제나 오롯이 내 소유였다. 부모는 자기 잘못인것마냥 미안해했으나 내 입에선 원망보단 누구의 책임도 아니란 말만 나왔다.


그날 이후로 많은 게 바뀌긴 했다. 무릎이 붓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오른쪽 무릎을 곧게 폈던 적은 아마 중학교 때가 마지막일 거다.


죽을 듯이 아플 때도 많았다. 근데 이젠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갑자기 오른쪽 눈에 허연 점막이 낄 때도, 결막염인 줄 알았던 놈이 척추염의 합병증이란 걸 알았을 때도, 시력을 영구히 잃을 수 있던 위험함 놈이란 걸 알았을 때도 무덤덤했다. 의사 선생님이 진지하게 위험하다고 말할 때 난 허허 웃는 게 다였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데, 뿌얘진 내 눈으로 인해 원근감이 없어진듯 모든 게 희극처럼, 모든 게 비극인 것처럼, 모든 게 내 운명인 듯했다. 그저 웃으며 친구들에게 옮는 병이 아니라 말하고 그저 불편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아무런 인과관계없는 불운에 떨어졌는데 누구를 탓하랴. 불운과 불행에 책임질 사람은 없다. 행운이 내 것이라면 불운도 내 것이다.


한 번도 내 아픔을 직면하지 않았다. 간에 빡센 약을 먹고 아주 심할 땐 마약성 진통제도 맞았지만 내 병과 직면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마주해야 하는데 마주하지 않았다. 무너질까봐.


완치가 불가하고 평생 관리해야하는 병이라는데, 해결도 불가한 놈을 만나서 뭐하랴. 괜히 지치기만 할뿐이다. 병이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듯이, 난 더 열심히 발버둥쳤다. 지칠 때면 카페인을 먹고, 아플 때면 진통제를 먹고, 일이 없으면 뭐라도 만들려고 했다. 허슬.


근데 어째 발버둥칠수록 더욱 더 늪에 빠지는 기분이다. 채찍질할수록 힘이 나기보다 내 한계를 마주한다. 내 능력을 파악할수록 내 꿈에 대한 날개가 꺾이는 기분인데, 요즘 그렇다.


아플 때면 붓는 무릎, 미열에 시달리는 이마, 지치는 몸상태. 모두가 내 족쇄다. 아직 지치면 안되는데, 이 병과 타협하면 그동안 쌓아둔 무언가가 무너지는 기분일텐데 말이지.


어제는 ㅂㄹㅅㅇ, ㅂㅈㅇ, ㅎㅈ의 카톡방에서 징징댔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3분인지 30분인지 3시간인지 모르겠지만 울었다. 시간은 중요치 않다. 11년째 앓는 이 병이 아직도 익숙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괜히 세상이 미웠다. 억울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책상도련님으로 살던 중학교 때 날 찾아온 병이 미웠다. 나쁘게 살았으면, 부도덕하게 살고 친구를 왕따시켰으면 모르겠는데 진짜 그때의 난 잘못한 게 없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완치가 불가한 이 병에서 자유로워지면 어떨까.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좀 더 다양한 일을, 재밌게 할 수 있었을까. 가끔은 그런 상상도 한다. 난 언제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런 인과없는 불운의 삶 속에서 나란 존재는 너무나 외로울뿐이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 더 열심히 발버둥칠 수 있게, 행복할 수 있게. 아직 한계를 직면하기에, 난 너무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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