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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Oct 18. 2017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

사람에 쉽게 접속할 수 있다는 뜻은, 그만큼 쉽게 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는다. 사실 소설 자체를 읽지 않는다. 근래 소비한 활자의 대부분은 비문학과 에세이다. 영화와 소설 그리고 만화는 현실에서 겪을 수 없는 극한의 체험을 위한 도구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사랑과 같은 경험을 현실에서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특수한 쟝르의 콘텐츠를 보거나 읽는다. 사랑과 관계는 글로 배우지 않고 직접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간접 체험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에 감탄한 경우는 많지만, 묘사하는 감정에 이입한 경험은 손에 꼽는다. 모든 관계는 각자의 모양새가 있기 때문에, 소설가와 작가가 그리는 관계에 이입하기 어렵다. 내 관계는 오롯이 나의 소유이듯, 그려낸 가상의 관계에 공감하기 어렵다. 유사한 경험이 있지 않는 이상 말이다.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은 관계관을 남겼다. 사람과 사람, 친구 혹은 연인의 관계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 생각했다. 관계는 소유가 아니라 접속이다. 내가 그 사람과 언제, 어떻게, 무슨 모양새로 접속하냐에 따라 관계가 결정된다. 관계가 소유가 아닌 이유는 내 의사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뜻에 따라 구매가 가능하고, 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 외장하드는 분명히 내 소유이지만 관계는 다르다. 너와 나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소유가 아닌 접속으로 묘사하면,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관계의 무게가 아니라 관계가 얼마나 오랫동안 접속됐으며 얼마나 자주 접속을 키고 끄느냐로 따지게 된다. 너와 내가 접속한 지 얼마나 오래 됐으며, 이 접속이 상호의 의사에 따라 얼마나 자주 꺼지고 켜지냐에 따라 관계의 수준이 결정된다. 접속이 오래 될수록, 자주 켜질수록 (꺼지지 않고) 높은 수준의 관계다. 


굳이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표현하자면, 너와 나의 접속이 얼마나 쉬이 끊어지냐에 따라 가벼움과 무거움을 따질 수 있다. 쉬이 끊어지면 가볍고, 아니면 무겁다. 상호 의사에 따라 결정되기에 내 뜻만으로 결정되진 않는다. 


쉽게 접속할 수 있다는 뜻은 역으로 쉽게 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모두의 친구가 누구의 친구도 아니듯이, 누구와도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가벼운 관계로 점철됐을 확률이 높다. 이 말은 오히려 무거운 관계를 지양하며 본인의 속내와 타인을 연결하지 않는 성향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즉, 쉽게 접속하는 사람은 오히려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추측해본다. 


내 관계에 대한 가치관이 무엇이냐 물으면, 내 입에서 나온 말보다 타인에 의해 내려진 평가가 좀 더 믿을만 하기 때문에 친구의 말을 인용하겠다. 친구는 내가 속내를 쉬이 내보이지 않는 사람이고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의 진심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난 친구의 말에 수긍하고자 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성격이 맞아야 하고, 관계에 대한 서로의 가치관이 맞아야 한다. 관계를 소유로 생각하는 사람은 접속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맞지 않고, 반대도 가능하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처음부터 새드 엔딩이 결정된 사이였다. 누구에게도 영속되지 않으려 했던 사빈나만 살아남은 결말이 신기했다. 내가 작가라면, 프란츠를 살렸을테다. 


내가 사람과 맺는 관계가 내 소유이길 지향한다. 내가 맺은 관계가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전히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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