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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Mar 17. 2018

오늘 고민한 것.

안 저지르는 게 최선입니다만

주변인이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친구는 피부가 까맣고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고 따돌림당했다. 교실 뒤에서 레슬링을 하면 그 친구는 항상 당하는 역할이었다. 수련회 때 다른 친구들은 그 친구의 바지를 벗기고 희희덕댔다.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중학교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등하교를 같이 하는 친구는 내게 같은 반 친구에게 몰래카메라를 찍혔다고 울며 말했다. 가해자는 내 친구를 포함해 다수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피해자의 주변인이자 가해자의 주변인이었다. 왕따 피해자의 친구이자 가해자의 친구였고, 몰래카메라 피해자의 친구이자 가해자의 친구였다. 방관자이기도 했다. 왕따에 대해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했고 가해자를 말리지도 못했다. 몰래카메라를 찍은 친구와 절교하지도 못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해자 친구와 데면데면하게 인사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일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당할 확률만큼 목격할 확률도 높다. 누구나 가해자 내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그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성범죄와 왕따 등 일상에서 일어나는 범죄에선 주변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해외 대학 등에선 성폭력 목격자를 대상으로 한 목격자 개입 프로그램을 교육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국내 대학에 설치된 성평등센터도 피해자 뿐만 아니라 피해자 지인으로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 주변인으로서 윤리는 조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해자 주변인은 침묵하기 마련이다. 성폭력, 직장 내 따돌림, 학교폭력 등 일상에서 이뤄지는 범죄는 더욱 그렇다. 가해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기 그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해자 주변인을 포함한 구성원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데엔 가해자를 방관한 주변인이 있기 마련이다. 가해자 주변의 그저 좋은 친구들 때문에 가해자는 사건을 사고로 치부하고 잘못을 실수로 생각한다. 비판적이지 않은 주변인 때문에 가해자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피해자는 더 큰 시름에 빠진다. 가해자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가해자를 엄하게 다그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말해야 한다. 가해자가 교화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를 가르쳐야 한다.


물론, 직접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주변인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많은 사회학자가 지적했듯, 성폭력과 왕따 등의 범죄는 필연적으로 사회 구조를 반영한다. 그 범죄의 고리를 깨기 위해선 같은 사회 구성원인 주변인이 나서야 한다. '나는 몰랐다'라는 말은 책임을 피하기 위한 변명이다. 세상은 당사자가 아닌 목격자가 바꾸기 마련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친구를 위해서라도 가해자 주변인으로서 윤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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