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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Mar 17. 2018

허허.

말은 이래도 많이 버는 게 최곱니다. 

초등학교 때 가장 어려웠던 일은 자기소개서에 부모의 직업을 적는 일이었다. 무직이라고 적기엔 아버지는 항상 어딘가에 나가 있었다. 직장을 적기엔 아버지의 적이 없었다. 몇 년 전 택배기사라는 직업을 갖기 전까지 내게 아버지의 직업란은 공백이었다. 직업란이 공백인만큼 지갑도 가벼웠을테다. 그럼에도 아들놈에겐 적당히 용돈을 챙겨주려했다. 안주어도 된다는 무뚝뚝한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얼마를 버냐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해"라고 답했다.


부끄럽지만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니까 잘 쓰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그저 자기 위로용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깨진 순간은 다름 아닌 가진 사람의 범죄를 볼 때였다. 위장전입, 병역기피, 음주운전,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논문 표절, 연구비 유용 등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연상케할 정도로 배우고 가진 놈들의 범죄는 어마어마했다. 


'유전무죄', '갑질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한국에서 힘을 가진 사람의 안하무인적 갑질은 예삿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준구 교수가 언급한 연구를 보자. UC버클리의 피프 교수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를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피프 교수는 소위 사회지도층이 높은 지위를 얻는 과정에서 탐욕과 비윤리적 행태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권력을 얻으라고만 배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냐는 배우지 않았다. 서울대에 들어가면 애인이 생기고, 삼성전자에 들어가면 1등 신랑감이 된다고 배웠다. 남자는 능력만 있으면 미인이 따라온다는 저질스러운 문구가 적힌 공책이 있었지만 그 위치에 올라갔을 때 어떻게 행동하라고 배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권력을 남용한다. 잘 쓰지 않고 무작정 쓴다.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온갖 폭력을 저지른다. 권력을 갖게 되면 느끼는 짜릿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폭력을 저지르고 권력을 과시한다. 성폭력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의 몸과 마음을 통제해 본인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갑작스럽게 권력을 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을 더 많이 저질렀다는 윌리엄스의 연구가 이를 방증한다.  


무작정 권력을 가지라는 말이 문제다. 비뚤어진 특권 의식을 낳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닌 권력을 공고히 하고 욕망을 챙기기 위해 남을 망가뜨려도 된다는 비뚤어진 특권의식 말이다. 비뚤어진 권력은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 방향은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나다. 이제 권력을 가지라는 말은 그만 두자. 권력을 가졌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이 더욱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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