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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May 24. 2018

<스탠바이, 웬디>

논리적인 유일한 해답은 스탠바이를 위한 전진. 



나아가기 위해선 선을 마주해야 합니다. 마주하고 그 선을 넘어가야 합니다. 대개, 그 선은 내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나아가기 위해선 나를 마주하고 넘어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나를 마주하고 내 안에 무엇이 있고 없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너무나 아픕니다. 아프고 힘들기에 쉽지 않지만 꼭 해야만 합니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는 웬디가 스스로를 마주하고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영화 속 웬디는 자폐증을 앓습니다. 항상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하며 끊임없이 되뇝니다. 떠오르는 문장, 남이 툭 던진 말 등 많은 게 적혀 있습니다. 그 때문에 목에 건 노트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깁니다.  



노트만큼이나 스타트렉을 사랑합니다. 모든 스타트렉의 설정을 외우고, 대사를 문자 그대로 ‘단어 by 단어’로 외웠습니다. 친구들은 웬디가 스타트렉을 얼마나 외웠는지 내기하고, 웬디는 항상 연전연승을 거둡니다.  


아침 기상부터 저녁 수면까지 빡빡하게 적혀 있는 웬디의 삶에 불현듯 하나의 특이점이 생깁니다. 첫 번째는 하나뿐인 친언니인 오드리의 딸입니다. 즉, 웬디에게 조카가 생겼죠. 웬디는 조카가 보고 싶어 그만 시설에서 나오고 싶어 하지만, 오드리는 웬디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반대합니다. 두 번째 특이점은 바로 스타트렉 대본 공모전입니다. 스타트렉을 너무나 사랑해 자신만의 대본을 쓰던 웬디는 공모전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편물 제출 시기를 놓치고, 직접 인편으로 전달하기로 합니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는 전형적인 로드 무비입니다. 대부분의 사건이 LA를 향하는 여정에서 생기기 때문이죠. 흥미롭게도 영화에서 웬디가 탄 차량은 단 한 번도 회전을 하는 구간이 없습니다. 연출의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영화 내내 웬디의 차량은 직진만 할 뿐입니다. 고속도로에선 당연히 그러겠으나, 시내에서도 좌회전 혹은 우회전도 아닌 호나우도 무회전처럼 직진합니다. 공모전에 대본을 내기 위해 LA에 간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과정을 비유했을까요? 


하지만, 역경은 많습니다. 전부 다 말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웬디를 이용합니다. 약간 모자라 보이는 웬디를 속여먹으려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을까요. 도덕책은 책일 뿐입니다.  



웬디의 여정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자폐증이라는 장애를 소재로 하지만, 이는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 내지 결핍에 대한 비유일 뿐입니다. 웬디가 대본을 내기 위해 혼자서 캘리포니아에서 로스 엔젤레스까지 가는 여정에서 웬디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수많은 한계와 금기를 넘습니다. 절대 가지 말자고 수십 번이나 되새겼던 마켓 가를 넘어가고, 버스에 몰래 강아지를 태우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대본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 다시 작성할 정도로 엄청난 기억력과 손 힘도 보여줍니다. 그렇게 웬디는 나아갑니다.  


웬디의 주위 사람들도 성장하고 결핍을 채워갑니다. 스스로 해낼 수 있고, 자기 앞가림할 수 있다는 웬디에게 “스탠바이”하자고 외치던 담당 선생님과 친언니는 웬디의 막힘없는 전진에 감탄합니다. 항상 사회에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본인들이 웬디를 받아 들을 준비가 안 된 셈이죠. 어떤 고난 속에서도 다음 단계를 위해 전진하던 웬디와 달리 본인들은 전혀 스탠바이 안 된 상태로 멈춰 있었습니다. 



실제로 웬디는 “저는 작가예요”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며 본인의 노력과 저작물에 무엇보다 큰 자부심을 드러내죠. 대본을 읽은 사람들도 웬디의 대본에 따봉을 줍니다. 웬디의 언니와 담당 선생님은 웬디가 너무나 부족하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웬디는 누구보다 준비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한계를 만듭니다. 이래서 안 될 거야, 저래서 안 될 거야 라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의 한계 앞에서 좌절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떠한 장애가 오고 역경이 있어도, 우리 인생의 방정식에 나올 유일한 해답은 ‘전진’일 테니까요. 





브런치 시사회를 통해 봤다. 행복하지만은 않은 시기였으나, 이미 신청해놨기에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글 역시 써야만 하기에 쓰고 있다. 그런 것치고 대부분 진심을 담았다. 


끊임없이 내 결핍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야 내 존재의 한계와 의미와 결핍에 대해 진중하게 하나씩 적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일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에 놓여있는 수많은 점을 연결해 나라는 별자리를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비어있는지 성찰하는 과정. 


어쩌면 난 내 안의 '마켓가'를 알지도 못한 채, 너무나 쉽게 떠들지 않았나 반성한다. 내가 했던 수많은 행위들, 그동안 찍었던 점들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언제나 출발할 수 있게 스탠바이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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