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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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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23. 2018

넥타이는 되지 말기

혼자라고도 생각말기ㅠ


"요즘 소화가 잘 안돼. 자존심 상하게"


"왜?"


"그러게. 와이셔츠 때문일까?"



와이셔츠와 거리가 멀다. 어느 정도냐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가진 와이셔츠는 끽해야 2개 정도. 학부 때는 학교 잠바와 리버풀 바람막이 그리고 검은색 노스페이스 티셔츠와 유니클로 청바지면 모든 게 해결됐다. 대학원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반바지에 슬리퍼 질질 끌고 다녀도 문제되지 않았다. 얼마나 편하게.


내 정확히 반대편에 학부 친구 S가 있었다. S는 항상 댄디하게 옷을 입었는데, 셔츠와 슬랙스차림이 적당히 잘 어울렸다. 헐랭이를 뛰어 넘어 그지스타일로 다니던 나와 그 친구는 정확히 대척점이었다. 물론, 친구로서 잘 지냈다. 밥 잘 사주는 좋은 친구다.


검정 노스페이스 티셔츠와 츄리닝 그리고 구겨넣은 신발은 내가 무엇을 먹어도 그대로 소화할 수 있게 해줬다. 학교 앞 이세돈까스에서 혼자 돈까스를 먹고, 갑자기 디어브레드가 먹고 싶어 올리브 치아바타와 시금치 치아바타를 연달아 쑤셔넣어도 문제 없었다. 체한다거나, 너무 많이 먹어서 토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거참. 마! 내가 좀 먹어봐서 아는데!


아, 근데 와이셔츠를 입으면 항상 체했다. 맞지 않는 옷이었다. 손목 단추를 잠그고, 카라를 세우고 단추를 다시 잠그고 거울 앞을 보면 굳다 못해 언, 아니 얼다 못해 그냥 화석이 된 내가 있었다. 그 상태로 점심을 먹으니 체한다. 하도 체하니 아침에 음식 냄새만 맡아도 역했다.


근데, 웃긴 건 어떻게든 음식은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칼국수를 먹든, 부대찌개를 먹든, 모밀을 먹든, 뭘 먹든 위장에는 들어간다. 소화를 못 하는 게 함정.


하하호호 점심을 먹고 올라오면, 결국 남은 건 적당한 더부룩함과 답답한 와이셔츠 단추다. 아씨, 너무 풀고 싶고 당장이라도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싶은데 갈아입을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거기. 그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삼각형으로 생긴 거기를 꾹 누르면 소화가 잘 된다길래 꾹꾹 눌렀다. 꾹꾹 눌르면 끅끅 대는데, 그 모습이 웃겼다.


자주 체하다보니 탄산을 찾는다. 쿠팡PB탄산수, 프랑스에서 온 오랑지나(잉카콜라도 들어와라!), 오로나민C, 게다가 거의 먹지 않던 콜라까지. 탄산수를 뺀 나머지 탄산 음료는 다 먹고 나면 입에 달짝지근함이 기분 나쁘게 남아 잘 찾지도 않았는데, 급하면 찾게 된다.


뜬금포로 체하니 서럽더라. 아니 내가 너무 잘 먹어서 90키로까지 육박하던 놈인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갑자기 꿀꿀부심이 차오르고 내 자신이 서러웠다. 아, 근데 갑자기 친구 H가 하는 말이 떠올랐다.


"작은 속옷을 입으면 몸에 자국이 남는 건 둘째치고 소화가 너무 안되어서 자꾸 체하게 돼"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사실, 내가 직접 체험한 게 아니니 그냥 끄덕일뿐이지 그 이상의 공감은 어려웠다. 역시 사람은 맞아야 안다.


큰집은 넥타이였다. 수능 공부는 잘 되냐며 여자친구는 있고 앞으로는 뭐하고 싶냐며 묻는 어른들의 질문은 내 목을 꽉 조이는 넥타이였다. 아, 반팔티를 입고 나이키 츄리닝을 입어도 그 넥타이만 만나면 버틸 수 없었다. 넥타이가 불편하다 느끼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걱정했다. 사촌 형들은 그런 질문 받아도 잘만 버티고, 별 불만도 없는데 왜 나만 이러지? 라고 생각했다. 이 불편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그 불편한 시기를 지난 다음이었다. 아이고, 억울해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색한 옷을 입고, 꽉 끼는 속옷을 입고 살다보면 체하게 되고 자국이든 뭐가 남게 된다. 밀봉당하지 않아도 될 팔뚝이, 와이셔츠로 밀봉당하니 가렵고, 가려우니 긁게 되고, 긁게 되니 피가 나고, 그 피는 밀봉한 와이셔츠에 묻는다. 불편한 와이셔츠를 입고 벨트를 쪼인 상태로 밥을 먹으니 체하게 된다. 불편한 속옷을 입고 밥을 먹으니 체하게 되는데 속옷 안입으면 음음. 뭐, 쿠사리. 유노.


맞지 않는 틀에 사람을 넣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위장으로 배우니 생각이 아주 조금 말랑해졌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보이고 관습처럼 여겨졌던 틀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불편하고 탈출하고 싶은 감옥이다. 그래 친구 S에겐 와이셔츠가 너무나 편하지만, 내겐 코르셋이더라.


어색하고 불편한 와이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불편한 속옷처럼 우리는 사람을 자주 불편한 틀 속에 끼워넣는다. 나이, 성별, 학교, 성애까지. 사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너무 쉽게 나이를 묻고, 학교를 묻고, 여자친구 내지 남자친구를 묻는다. 나이라는 위계에 넣고, 학벌이라는 위계에 넣고, 나아가 특정 성애의 틀에 넣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누군가의 넥타이가 되지 않기 위해 남자친구 내지 여자친구는 만나는 사람이 있냐는 그럴싸한 문장으로 바꾸고, '남자가' 혹은 '여자가'라는 단어를 지워 틀을 없애려 한다. 사람이, 더이상 사람에게 체하지 않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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