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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Oct 19. 2018

1분 1초가 아까웠던 강연 후기

배달의 민족 마케터 이승희님 강연

"아, 시간 아깝다.”


시간이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2시간 20분이었다. 오해하지 말고. 


그냥 1분 1초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아무리 맛난 음식을 먹어도 침 튀기고 얼굴이 벌게진 아저씨와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면, 지난 16일의 2시간 20분은 1분 1초가 너무 아까울 정도로 귀중했다. 세상에서 가장 밀도 있는 2시간 20분. 이런 후기를 어떻게 남겨야 할까, 그 시간에 몰입한 분들의 감정의 결을 어떻게 담아야 할까 검지 손가락을 깨물고 고민할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뭐냐고? 그건. 힝 속았지?




“혹시! 여기 참석하시는 분 계신가요?”


트레바리 국내 이슈 46 톡방에서, 한 분이 톡을 주셨다. 트레바리는 주기적으로 회원들만 참가할 수 있는 여러 행사를 진행하는데, 이번 달엔 배달의 민족 마케터 승희님의 강연이 있었다. 승희님의 강연에 참석하시는 분이 있나 묻는 톡이었다. 생각해보니, 얼핏 캘린더에서 봤었다. 근데 그날 일정이 원래 잡혀 있어서 불가했다. 그래서 그냥 툭하고 넘어갔나 보다


그 톡을 보고 다시 내 캘린더를 봤다. 어라? 비어있더라. 약속이 취소됐다. 내 비어있는 캘린더를 보고 바로 신청했다. 원래 이런 만남은 우연처럼 다가오는 법이다. 사실 오랫동안 뵙고 싶었다. 브런치에서 모집한 강연은 추첨에서 떨어졌기에 더욱 간절했다.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그게, 그런 사람이 있다. 딱 들어오자마자 뭔가 그 공간을 자신의 아우라로 채우는 그런 사람. 승희님이 그런 분이었다. 글과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느껴지던 생기가 그대로였다. 일을 마치시고 바로 오셔서 피곤하셨겠지만, 강연이 진행되자 전에 없던 생기를 발산했다. 야, 루피. 이런 게 패기냐? 싶더라.



그래, 나는 이승희다


강연 내용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좋았다. 배달의 민족 마케팅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해주시고, 본인이 삶을 꾸리는 방식과 감각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배민 꿈나무는 어떻게 시작됐고, 치믈리에는 어떻게 진행됐고, 인간 이승희를 채우는 여러 이야기를 말씀해주셨다. 마케터 이승희와 사람 이승희에 대한 소회가 함께 있었다.



강연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배민스럽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재밌고, 더 가볍고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인의 경험담을 하나씩 꺼내 주셨다. 액션플랜은 작고,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너무나 공감했다. 해보고 싶은 게 있고, 그게 의미가 있다면 거기에 살을 붙이기보다 뼈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 일단 작게 시작하고, 해본 다음에 더 붙여야지. 그래, 나는 유노윤호다.



사실, 브랜딩은 미묘한 영역이다. 하루 이틀 만에 브랜드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서비스와 제품의 완성도 없이는 불가하다. 많은 회사는 브랜딩을 매출에 당장 도움을 주지 못하는 소모비용으로 보고, 브랜딩 관련 부서는 그저 돈 쓰는 부서로 찍히기 쉽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리더의 생각이 중요하다. 브랜딩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보고, 해야 하고, 가치 있는 일로 보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선 리더가 열려야 한다. 승희님의 능력이 100이더라도, 이를 소화해낼 수 없는 문화라면 승희님의 결과물은 -100이었을 거다. 승희님을 비롯해 배민의 수많은 크리에이티브와 성공적인 퍼포먼스 뒤엔, 이를 가능케 한 문화가 있지 않나. 그리고 그 문화의 정점엔 김봉진 대표가 있지 않나.



마케터의 필수 역량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그 질문엔 탐구와 선별이라는 답이 따라왔다. 세상을 탐구하고, 그 수많은 탐구 결과물을 선별하고 연결해 새로운 맥락을 찾아내야 한다. 그 맥락에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하면, 협업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승희님은 피피티에 1) 작고 2) 빠르게 그리고 3) 세부적으로 생각하기가 있었다. 작고 빠르게 진행하는 건 예산의 효율적 집행 및 운영과 아이디어 측면으로 볼 수 있고, 세부적으로는 운영과 협업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협업하다 보면, 내 생각과 상대방 생각이 달라서 결국 각기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대환장파 티를 마주한다. 이런 대환장파티를 막기 위해선, 각자 상상한 바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해야만 한다. 오랫동안 함께 산 부부도 아 하면 어하지 않는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말해야 한다



실행력은 기록에서 온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선 생각이 탄탄해야 한다. 생각이 탄탄하기 위해선 기록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상에서 흘러가는 수많은 순간에서 받은 짧은 영감을 글로 남겨야 한다. 승희님은 항상 노트를 지니시고, 인스타그램에도 메모를 자주 하신다. 인스타그램 주소는 @lovebrander @ins.note @___usedproject  내 인스타는 @realizesomethinspecial (묻어가기)



기록은 습관이다.  현대인의 습관은 SNS다. 고로, SNS에 기록을 많이 하자. SNS는 일상의 낭비가 아니다. 일상의 감상을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노트다. 난 공유와 연결의 힘을 믿는데, 내 감상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감상과 연결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와 나오고 가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새로운 의미를 발굴하거나.



나의 일상은 그 어떤 예술품보다...읍읍


승희님은 일상의 예술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상에서 감명을 받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이 기록을 실행하고 자신의 삶도 채워보고 마케팅도 진행하는. 일상에서 감명받기 위해선 사소한 것에 감동받아야 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작은 거에 눈물 나게 감동하고, 남들이 놓치는 디테일에 영감 받는 사람들. 사소한 것에서 위대함을 발견하고, 일상의 아름다움과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꼼꼼함.


왁자지껄한 사람이어야 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호기심이 왕성한, 눈빛이 초롱초롱한 사람 말이야. 승희님은 그런 분이셨다. 너무 멋있던데. 


승희님만큼이나 오신 분들도 멋있었다. 보통, 이런 강연은 강연자만큼이나 청취자의 퀄리티도 중요하다. 제 아무리 대단한 감독이 와서 GV를 진행해도, 질문이 개떡 같으면 환장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직접 일하시면서 생긴 고민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현업 마케터분들이 많으셔서 질문의 수준이 높았다. 나같이 "헤헤 이승희님 보러 간다 ㅠㅠㅠ 넘 좋음 ㅠㅠㅠ 싸인받아야지 ㅠㅠㅠㅠㅠ" 환장하는 팬심만으로 간 사람은 적었다. 각자의 고민이 담긴 질문이 많았다. 업에 대한 질문도 많고, 그냥 사람으로서 질문도 많았다.


물론, 이 분의 강연이 의미 있던 이유를 공간에서 찾아본다. 승희님이 학교에서 강연하셨으면 멋있었을까? 같이 참여했던 육헌님은 그간 강연 중 가장 좋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단순히 그날 컨디션이 좋으셔서 그랬을까? 그건 또 아니다. 강연은 커뮤니케이션이고,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합이 맞아야 한다. 트레바리라는 곳에 기꺼이 돈을 내고 지적 교양을 채우신 분들 중에 승희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오신 분들이라 공간의 아우라가 달랐고, 그래서 더 좋은 이야기가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중 하나는, 더 이상 채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팀이 아니라 콘텐츠 팀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승희님의 답변이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등을 가리지 않고 자사의 콘텐츠가 있으면 커뮤니케이션은 플랫폼 변화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배달의 민족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뚜렷하고, 김봉진의 카리스마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조직이 이루고자 하는 가치,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팀원 사이의 믿음과 리더의 비전까지 촘촘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면, 메시지는 자연스레 생긴다. 인사팀에 물어봐도, 제품팀에 물어봐도, 서비스개발팀에 물어봐도 '우리 회사는 이거 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뚜렷해야 한다. "대체 우리가 하려는 게 뭐지?", "이 회사는 뭘 해결하는 걸까?", "무슨 가치를 주지?", "우린 여기에서 뭔 짓을 하는 거지?", "대체 이 회사가 있어서 1g이라도 나아지는 거 뭘까?"라는 수많은 "야 그딴 고민을 왜 해?"라는 말이 나올 법한 질문 말이다.



살 빼야 하지만 촉촉한 초코칩은 먹고 싶어


가슴이 말랑말랑하고 촉촉해야 한다. "에이, 내가 저거보다 잘할 수 있는데", "에이, 뭐 그딴 거에 그렇게 생각해", "에이 뭐 말이 되는 소리야?", "야 그게 비용이 얼만데", "그게 뭐 의미가 있어?" 이렇게 딱딱하고 시니컬하게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 내게 필요 없다.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고, "와, 저런 걸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저걸 저렇게 연결 짓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나오는 사람. 내가 감탄한 사람들은 모두 가슴이 촉촉했다. 촉촉한 초코칩 좋아하나?



일 잘하는 사람의 조건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체력이 중요하다. 생활 체력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에 지치지 않는 영감 체력 말이다. 그 영감 체력을 기르기 위해 승희님은 좋아하는 카페를 몰아가기도 하고, 브런치에 글도 쓰시고, 인스타그램도 엄청 왕성하게 사용하신다.


결국, 나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고, 이를 어떻게 기록하고, 이를 누구와 공유하고, 어떻게 일로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압도적으로 흥미로운 개인인 배달의 민족 마케터 이승희를 보자, 나는 구현모의 크루들이 생각난다. 딱딱하게 뭉쳐 있지는 않지만, 그거 보러 갈래?라고 말할 수 있고, 너 이거 봤어?라고 기사 공유할 수 있고, 너 이거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을 수 있는 친구들. 이런 영상 해보고 싶지 않아?라고 물을 수 있고, 이거 해볼래?라고 던질 수 있고, 새로운 생각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 물음표 투성이인 모호한 세상에서 각자의 느낌표를 툭툭 던질 수 있는 그런 크루들. 카톡방에서 툭툭 일 얘기를 해도 즐겁고, 툭툭 헛소리를 해도 깔깔댈 수 있는 그런!



결국, 각자의 영감과 상상은 우리가 함께 해야 일로 되고 예술품이 된다는 결론을 조용히 내렸다. 갑분결.


이 글은 이승희님에 대한 팬심 100으로 이루어진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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