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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Oct 01. 2018

선량하던 모든 이의 빛나던 순간

우리 모두, 켜지고 꺼지기 반복하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이다

무슨 매체를 좋아하냐 물으면 항상 예술가 인터뷰 잡지 더 톡스를 열망한다고 말한다. 휴먼 오브 뉴욕, 휴먼 오브 서울 등 인터뷰 콘텐츠를 사랑한다. 우리나라의 마이크는 수많은 기득권자가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지만 향기나는 이야기를 가진 시민을 향해야 한다. 기사에 잠깐 나오는 취재원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구현해야 한다. 시민을 향한다면서, 정작 시민의 평범한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실리지 않는다. 재수없다. 


좋은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 오랫동안 바라는 꿈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당시의 시공간을 글과 영상 그리고 사진으로 표현해내는 일을 하고 싶다. 비즈한국과 인터뷰 기획을 진행한 이유도 거기에 있고, 최근 EBS 콘텐츠를 만들 때 구글 독스로 사연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 진리는 그 어떤 비범한 사람들의 치열한 토론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너무나 무던한 일상 속 대화에 있다고 믿는다. 


지루한 이야기다. 인터뷰란 무엇인가. 단순히 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일인가? 아니다. 그건 받아쓰기에 불과하다. 인터뷰어가 자신의 시각으로 인터뷰이를 해석하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반박하고 되묻고 진솔된 이야기를 끌어내는 과정이다. 


진솔한 이야기는 감정에서 나온다. 페르소나를 무너뜨리고 그 사람의 숨겨진 생애사를 끄집어내야 한다. 인터뷰어는 그 사람에게 진실되게 다가가 과거와 지금 그리고 감정을 동시에 끌어내야 한다. 사람에게서 웃음을 끌어내는 일이 어렵듯이, 진실된 인터뷰 역시 정말로 어렵다. 무엇이 진실된 인터뷰냐 물으면 정의할 길이 없지만, 적어도 인터뷰가 박제되지 않고 생생하다면 절반의 성공은 이루지 않았을까. 


인터뷰 영상 콘텐츠는 많다. 하지만 수많은 인터뷰 콘텐츠는 티카타카가 아니라 뻥축구다. 그냥 차고, 만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적을뿐이고, 인터뷰어의 관점따위 없다. 혹자는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관점이 반영된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는 전략적 차별화일뿐 좋은 내용을 만드는 데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좋은 재료를 가지고 매운탕 만드는 우를 범하기 쉽다. 실제로 셀레브 이후 수많은 인터뷰 콘텐츠가 지루한 이유에는 인터뷰어의 관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지면 인터뷰에 집중했다. 이진순의 열림과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의 인터뷰는 슬랙에 따로 검색어를 지정해, 항상 알림을 받아놓았다. 적당한 긴장과 인터뷰어의 관점 그리고 인터뷰이의 감정까지 활자와 사진으로 표현한 좋은 글들이다.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을 산 이유는, 별 게 없다. 사실 내가 다 읽은 기사들이다. 그저 책으로 읽어보고 싶었다. 


재수없는 면도 있다. 좌절과 상처와 굴욕이 상존하는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담고 싶었다지만, 인터뷰이는 대부분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국종, 채현국 등. 


오히려 비범하고 위대해보이는 사람들의 평범한 순간과 사람냄새가 나는 고민을 담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위인전 콘텐츠가 아니다. 위대해보이는 사람들을 인간답게 그려내는,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 뒤에 숨겨져 있는 그들의 생애사와 그 생애에 그려져있는 나이테를 낱낱이 드러내는 인터뷰 콘텐츠다. 


아, 참말로 사람냄새나는 콘텐츠다. 한여름의 목수에게서 느껴지는 땀내나는 콘텐츠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 잉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안심할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첫 목차는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였고, 마지막은 노인을 용서하지 말라는 채현국 이사라는 점도 맘에 들었다. 의인이 되기보다 가족 곁에 있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쉬이 답하지 못하는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가 조금 살 만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책을 시작한다. 이 책의 인터뷰이 모두 좋은 세상을 바라고 고민한다. 마지막 목차에 있던 채현국 할아버지의 글엔 "생각하면서 살라"는 구절이 있다. 그래, 좋은 세상을 위해선 나와 같은, 장삼이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가능하다. 위대한 일인의 열 걸음이 아니라 평범한 모두의 한 걸음이 필요한 시대. 우리 모두 지난 촛불 때 만나지 않았는가. 


이상적이다. 모두가 운동가가 될 수 없고, 모두가 한 걸음 내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뷰이를 위대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이 책은 희망적이다. 그렇게 위대한 이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고, 울고, 웃고, 우리네 옆에 있는 동네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저렇게 대단해 보이는 사람도 결국 나와 같다면, 나 역시 그들처럼 위대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나 같이 졸렬한 장삼이사는 이런 대단하지만 숨겨져 있던 비밀에 감탄한다. 정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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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인터뷰의 가치를 저평가한다. 실제로 몇몇 언론 교수는 오리아나 팰라치는 인터뷰어일뿐, 저널리스트가 아니라고 답했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기술자로서 훌륭한 인터뷰어는 그 자체로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저널리스트의 임무라면, 훌륭한 인터뷰어만큼 훌륭한 저널리즘 실현가가 어디있겠는가. 


http://www.yes24.com/24/goods/630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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