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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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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Oct 01. 2018

아주 조금은, 요가 자세가 편안해졌다.

숨 참지 말고 쉬면서 삽시다. 


4주 간의 요가 수업 끝에 얻은 건 약간의 편안함이었다. 배꼽을 허리로 당기고, 가슴을 위로 펴는 부장가 아사나에서 나만의 편안한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자세는 이를 악물고 나와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데, 그 곳에선 이를 악물지 않아도 된다. 근육의 긴장과 골목을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아주 조금 편안해졌구나라는 감상만이 남는다. 




오늘은 참 날씨가 좋았다. 아니, 9월부터 계속 좋았다. 이렇게 좋은 가을 하늘을 뒤로 하고, 일요일의 두어 시간을 투자해 몸을 비틀어대는 이유는 별 거 없다. 너무나 편안한 나의 방이라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한 발자국만 벗어나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자기 계발서에 자극받은 건 아니었다. 그냥, 일요일에 집에 있고 싶지 않았고 나갈 핑계가 필요했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했는데, 오기가 생긴다. 요가도 ㅇㄱ이고 오기도 ㅇㄱ다. 요가를 하면, 오기가 생긴다. 조~금만 더 뻗으면 되는데 그게 안 되더라. 그러니까 집에서 허리도 제껴보고, 요가 매트도 사고, 옆구리도 비튼다. 음, 남는 건 살밖에 없다. 




요가는 나와의 싸움이다. 조금만 더 팔을 뻗으면 손바닥이 땅에 닿을 거 같은데,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몸을 완전히 제낄 수 있을 거 같은데, 구현모 이 새끼야 조금만 더 열심히 하라고 이새끼야! 라는 말이 속으로도, 얼굴로도 나온다. 요가 선생님은 "누구나 굴욕적인 표정이 나오지만 현모씨는 처절하게 싸우시더라고요"라고 말씀하신다. 아, 처절한 내 몸뚱아리.




그래. 나와의 싸움이다. 이 좋은 날씨에 작은 주택을 개조한 요가원에서 살과 핏자국과 딱지가 남은 몸뚱아리를 요리 틀고, 저리 트는 싸움 말이다. 할 때마다 "진짜 어릴 때부터 하면 좋았을 텐데. 아주 조금이나마 몸이 유연하게 살덩어리가 없을 때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후회와 싸우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부리려고 몸을 이렇게 비트는가. 요가란 무엇인가"라는 허무와도 싸운다. 




숨을 쉬어야 한다. 너무 힘들다고, 저걸 더 하고 싶다고 배에 힘을 주고 숨을 꽉 참을 필요 없다. 숨을 쉬어야 한다. 참으면 될 자세도 안되고, 숨을 쉬면 더 부드럽게, 그리고 더 자연스럽게 자세가 된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숨을 참지 말자. 숨을 참고 몸에 힘을 주면 몸이 굳는다. 숨을 쉬면서 유연하게 살자. 




몸뚱아리와 싸우고, 오기와 싸우고 집에 가는 길은 묘하게 뿌듯하다. 그래, 오늘도 해냈어! 그래, 오늘은 저번주보다 저 자세가 조금 더 편했어! 라고 괜히 속으로 뿌듯해 한다. 




그래서, 기분이 좋고 날이 좋아서 한강에 갔다. 부를 사람은 없었다. 박진영은 노원에, 박리세윤은 집에 있고, 국범근은 약속을 깼다. 혼자 가서 편의점에서 라면도 먹고, 호로요이도 마신다. 해가 지는 한강에서 라면을 먹는 이 여유가 너무 좋았다.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집에 가면서 먹고 싶은 걸 먹고, 자발적으로 느슨하게 고립된 이 풍경이 좋았다. 한강 벤치에 몸을 비스듬히 누워 취기를 뺐다. 



요가 글을 썼지만 아직 허접이다. 아직까지 몸을 완전히 뒤로 제낄 수도 없고, 요가를 하고 앉으면 몸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더라. 그럼에도, 할 거다. 음, 왜냐고 물으면 나만의 편안한 공간을 좀 더 찾아보기 위해서.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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