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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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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Sep 25. 2018

[도쿄여행] 2일차 2편, 돈카츠는 없어

하지만 커피와 맥주는 있어








사이드워크스탠드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주로 나카메구로라고 불리는 지역은 그쪽이다. 파인애플의 달달함과 카페인의 씁쓸함으로 체력을 완전히 회복해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주택가를 지나고 지나고 지나서 지하철역 근처로 왔다. 오는 길에 EXILE이라는 일본 그룹의 홍보관에 들어갔다. 보니까 멤버들 연령대 꽤 있어 보이더라. 방금 나무위키를 보니, 일본의 유명 댄스그룹이고 국민그룹이란다. 1장, 2장, 3장 이렇게 그룹에 시즌이 있어 멤버간 나이차가 꽤 있다. 어쩐지 중년 여성 팬들이 많더라고.













흐린 여름 하늘을 보면서 구시렁대니까 어느덧 오니버스 커피에 왔다. 오는 길에 분위기가 퍽이나 좋았다. 주택가 한 가운데에 있고, 전철 근처에 있어서 쿠쿠..쿠쿠..쿠쿵... 대는 기차 소리가 계속 들렸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보다 영화 <원티드>가 떠올랐따. 이러고 있다가 주인공 아빠 총알 맞고 사망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여기도 핸드드립이 유명했다. 어떤 메뉴가 좋냐고, 원두 추천해달라고 묻고 물어 핸드드립 차가운 걸 마셨다. 일본의 네임드 카페는 자체적으로 원두를 팔고, 드립 장비를 판다. 한국 같은 경우 디저트를 팔거나, 분위기를 파는 게 전부인데 여기는 자체적으로 파는 물건이 많았다. 모든 개인 숍들이 그랬다. 자영업 한두 개가 발전한 게 아니라 자영업들이 다른 짓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서비스도 발전했다. 그럴싸한 표현으론 생태계라고 적어야겠다. 자영업 생태계가 성장하니 개인 숍들도 이렇게 사이드 프로덕트를 파는 일이 어렵지 않은 듯하다. 




















줄이 꽤 있었다. 점심 직전 오전이었는데도 웨이팅이 있었고, 2층엔 빈 자리가 없었다. 빈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고 들어가니 한국인 여행객들이 있었다. 여여커플이랑, 남녀커플. 모델 같이 훤칠한 키에 간지나는 패션을 뽐내는 패셔니스타 커플이 나가고, 쭈구리 여행객 구현모가 앉았다. 한국인 여행객들은 창가에 앉아 오고 가는 기차를 풍경 삼아 서로를 찍었다. 
















난 벽화를 찍고, 친구 클로이가 레미 만년필로 공책 첫 장을 적었다. 무어라고 적었는지 지금 와서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매우 긍정적인 이야기였을 테다. 그 전날에 우울하고 쭈구리인 상태로 있다가 친구 윤여훈한테 기운 받아서 기분 좋아졌으니 말이다. 오니버스 커피는 참 분위기가 좋다. 시작부터 끝까지 좋았다. 하얀 벽도, 그 벽에 적혀있는 갈색 글씨도, DSLR로 서로를 찍어주는 한국인 커플마저 보기 좋았다. 물론 나는 쿠쿠쿠쿠..쿠쿠쿠쿠... 밥솥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기차를 찍었다.


























재호가 알려준 돈카츠 톤키에 가려고 나섰다. 지나가는 길에 어제 본 가게 dessin이 생각나서 들렀는데, 아쉽게도 닫혀있었다. 



































톤키까지 걸어갔다. 한 20~30분 정도 걸린다. 지나가는 길에 가구점 노티리? 여튼 이름 기억안나는데. 여튼 거기에 갔다. 다양한 소품이 많았다. 일본 가구점 소품점에 오면서 원하는 그림을 잘 구현하는 능력에 감탄했다. 아파트나 좁은 개인 주택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인 도쿄인들에게 북유럽 벽난로 감성을 보여주고, 이 침대만 있으면 세상 멋진 도시인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이 모든 미쟝센에 종업원은 없다. 종업원분들은 카운터에, 그리고 그 그림 바깥과 복도에 있다. 도움이 필요하면 다가가지,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그 분위기는 만끽할 수 있는 접객 가이드라인이 있는 걸까.

















톤키 가는 길에 강가를 따라 걸었다. 음, 정말 더러웠다. 4대강 보고 뭐라 할 게 아니었다. 한창 상태 안 좋은 성북천마냥 수질이 안좋았다. 날씨가 흐리고 강도 더러우니 거참.




















빌라가 대부분이었다. 그 많은 빌라 1층엔 커피 스탠드나 개인 편집숍이 들어있었다. 간판은 없었고 창을 통해 본 가게 안엔 다양한 잡화가 많았다. 옷가게인지, 소품가게인지 알기 어려운 그런 개인 편집숍들 말이다. 계속 말했지만, 더이상 품목 사이 경계는 의미없어졌다. 커피 스탠드 디자인은 그와중에 이뻤다. 




















학생들 하교길이랑 겹쳤다. 죽창은 너도 한방이고, 나도 한방이다. 사진도 너도 한방, 나도 한방이다. 저 팔뚝에 근육이 있으면 더 멋졌을텐데. 아, 셔츠 갈아입은 거다. 첫째 날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아예 티셔츠 한 장을 에첸엠에서 새로 샀다. 옷 봐준 클로이에게 다시 한 번 감사. 논문 쓰느라 고생하는 클로이에게 다시 한 번 애도. 











메구로역 근처에서 모델들을 많이 봤다. 우리가 보는 여러 화보의 패셔니스타들이 이렇게 누추한 길거리에서 허겁지겁 사진을 찍었구나. 원래 알고 있었는데, 그 촬영 장면을 보니까 더 웃겼다. 메구로역도 나름 힙한 동넨가보더라. 블루보틀도 있던데.











기껏 간 돈카츠 톤키는 닫혀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닫혀있었다. 오지게 걸어서 피곤한 나머지 ‘시발 ㅠㅠ’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점심 존버하고 갔는데 닫혀 있다니. 젠장. 어차피 온 김에, 이 근처 카페 한 군데 더 가려고 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가는 길에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하필 대부분 가게가 브레이크타임이라 못먹었다. 시스템이 철저한 프랜차이즈와 달리 개인 음식점이 많은 일본에 ‘브레이크타임’은 필수다. 기계처럼 착착 돌아가게끔 식재료를 다 준비해주는 프랜차이즈와 달리 개인 가게는 혼자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손님이 없을 때 아싸리 준비하고 가는 게 낫다는 뜻.



















강가 근처 스위치커피도쿄에 갔다. 안타깝게도 우유 관련 기계가 다 고장나서 아메리카노밖에 안됐다. 일본은 아메리카노보다 핸드드립이나 라떼를 먹는 게 낫다. 왠지 모르겠는데, 적잖은 카페에서 라떼를 메인 메뉴로 삼는다. 메인 메뉴로 밀어주면 먹는 게 인지상정이었는데, 그냥 아메리카노로 만족했다.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가게 앞 의자에 앉아서 시간 때우고 일어나려는 찰나에 유모차를 끌고 여성분이 들어오셨다. 그분이 내가 본 유일한 손님이었다.


커피를 이렇게 섭취하니, 배가 고프진 않았다. 원래 물을 미친 듯이 마시는 사람인데 물 대신 커피를 마시고 그 커피가 씁쓸해서 식욕을 없애주니 배고파도 버틸 수 있었다. 일본 골목길을 배회하며 나카메구로역으로 향했다. 우중충한 하늘에 밝지 않은 주택을 보니 왠지 일본 공포영화 특유의 우울한 정서를 이해할 수 있겠더라. 














도쿄 골목길과 서울 골목길을 비교하자면, 도쿄는 평평하고 서울은 울퉁불퉁하다. 경사길이 많기 때문이다. 도쿄가 동네 구획화가 더 잘되어있는 듯하다. 강남 기준으로, 고층 빌딩이 많은 서울과 정말 다른 분위기다. 강북 기준으론, 도쿄가 더 이동이 편했다. 


그렇게 나카메구로역에 도착해 근처 초밥집에 갔다. 어차피 먹을 거,  초밥을 먹고 싶었다. 검색해서 괜찮은 평을 받은 가게에 갔다. 알고보니, 학교 선배도 한 번 갔다고 하더라. 괜찮았다. 영어를 하실 줄 모르는 종업원과 주방장이었지만 영어 메뉴판을 준비해주셨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이, 야야, 응응 (실제로 한 말) 이러면서 주문했다. 파파고나 구글 번역하면 되는 걸 갖고 바보처럼 말했다 ㅋㅋㅋㅋㅋ 이이 으으 그그 야야 응응. 방언터졌다.























좀 더 무리해서 미들급 스시집에 가서 오마카세 먹을 수도 있었는데(절대적으로 비싸도 일본에선 이렇게 먹는 게 더 이득이다), 너무 배고파서 그냥 세트로 먹었다. 음. 맛있었다. 참치를 왜 육고기에 비유하는지 알겠더라. 이게 맛이 진짜 좋다. 맨날 싸디 싼 것만 먹다가, 이런 걸 먹으니 와시댕. 이게 녹는 거구나 싶었다. 잘 먹지도 않는 생맥주를 시켜 음미했다. 음, 얼굴 시뻘개지는 바이브 느껴진다. 솔직히 술에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따위 없다. 한 번 술찌는 영원한 술찌다.




















저저저저 와사비 김밥 저거.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와사비를 좋아해서 간장에 와사비를 더 풀어서 먹었는데, 와시댕 너무 많이 풀어서 먹다가 바로 코로 뿜고 예능 찍을 뻔했다. 피토할뻔했다. 근데, 맛있더라. ㅎ_ㅎ;;;


주방장 아저씨한테 달걀 초밥이랑 저 참치뱃살을 하나 더 달라고 해서 먹었다. 저기 나오는 닭고기 간장절임(?)도 맛있더라. 몇 번 리필해서 먹었다. 이렇게 먹으니 배부름을 넘어 배터지겠더라. 이렇게 적고 보니 진짜 오지게도 쳐먹었는데, 그래서 난 지금 돼지새끼... 현모세끼..돼지새기... 


그렇게 밥을 먹고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어제의 우울한 기분 따위 기억나지 않고, 아픈 발과 부른 배와 시뻘개진 얼굴만 남았다. 음.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몰골을 누구에게 보여야 할까. 고민하다가, 지유가오카로 향했다. 이유는 별 게 없었다. 조금 더 걷고 싶었고, 조금 더 여유있는 동네를 가고 싶었고, 윤여훈이 가보면 후회 안 할 거라고 했다. 난 친구를 믿었다. 사실,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그렇게 지유가오카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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