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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Sep 21. 2018

[도쿄여행] 2일차 1편 - 다이칸야마 한 잔 주세요.

허영심은 가득히요


음. 늦게 눈 떴다. 말하고 생각하듯, 눈뜨고 어디 갈지 생각했다. 음, 어디를 가야 할까 오늘은? 날씨가 맑으면 좋을 텐데, 다행히 컨디션은 좋았다. 여행 내내 컨디션은 빨간색 화살표였고, 날씨는 파란색 우중충 화살표였다. 흠, 아침부터 허세 지수를 높이기 위해 츠타야 T사이트에 가고자 결정했다. 그래, 오늘은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로 시작해서 힙함을 낭낭하게^^! 채우고 나카메구로에서 카페인을 쏟아붓자는 게 오늘의 컨셉. 서울에서도 하루에 커피 3~4잔은 마시고 물도 오질라게 마셔서, 딱히 부담은 안 됐다.

둘째 날도 일본 하늘은 흐렸다. 사실 내내 흐려서 뭐라 첨언할 게 없다. 흐린 하늘을 보면 편지 대신에 규동을 먹자. 일본 유명 체인점에서 규동 하나를 때렸다.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구글에 검색했다. 저 날달걀을 어찌저찌 풀고 시치미를 어기영차디영차하면서 뿌려서 먹으면 된다. 맛있었다. 다시 먹을 맛은 아니다. 다만, 아 이게 일본의 백종원 입맛이구나 싶더라.



일본 편의점 최애 간식은 이 초코모찌. 달달구리하고 폭신폭신하고 몰캉몰캉한 게 음~ 살찌는 맛! 완벽하게 살찌는 맛이었다. 이걸 먹고 살이 안 찔 수 있어? 너 이거 하나만 먹을 수 있어? 라고 끊임없이 되새기는 맛이었다. 존나 개쩌는 자제력의 나는 다행히 한 봉투만 먹었다. 내가 아는 다른 사람이었으면 적어도 3~4봉지는 먹었을 맛이다. 물론, 나는 이거 대신 음식을 개쳐먹었다. 열량 총량의 법칙이라고 들어봤나? 하루에 먹을 꿀꿀 열량의 양은 정해져있다. 언제, 무엇으로 채우냐가 다를뿐이다.

















다이칸야마는 패밀리마트마저 힙했다. 패밀리마트의 색깔을 벽에다가 갖다 박고 새로 디자인했다. 여기는 고-오급 개인샵들이 많은 거리다. 한국으로 치면, 신사동 + 가로수길? 사실 잘 모른다. 나 그런 데도 몇 번 안 가봤다. 츠타야 티사이트로 가는 길에 본 수많은 가게들이 고오급 개인편집숍이라 오지게 비쌌다. 택스 프리해도 비싼 그런 친구들. 배신자들.











지나가는 길에 르꼬르동블루라는 빵집을 봤다. 프랑스 유명 제과제빵 관련 학교인데, 요즘 유난히 디저트에 꽂힌 나로선 피할 수 없었다. 참새는 방앗간을 못 피하고, 꿀꿀현모는 꿀꿀꿀꿀. 점원한테 물어서 가장 잘 팔리는 달달한 빵 두 가지를 먹었다. 


하나는 빵오쇼콜라, 하나는 저거 레몬을 위에 올린 빵. 컵케이크도 많았는데, 아침부터 먹기는 조금 부대꼈다. 일본은 앞서 말했다시피 기본 음식 (면, 쌀) 을 참 잘한다. 크로아상도 마찬가지다. 가장 만만해보이지만, 잘 만들기는 너무나 어려운 그 크로아상. 수준급의 크로아상이 많았다. 일본의 식문화는 대-단하다.




안타깝게도, 맛은 그저 그랬다. 전체적 빵의 식감은 좋았으나, 더 초콜릿이 많았으면 좋았을 빵오쇼콜라. 그리고 너무나 달아버린 저거저거 빵. 



츠타야 티사이트는 가덴과 달랐다. 책에 집중하고, 책과 관련된 레스토랑이 있었다. 진짜 부유한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해뒀다. 좋은 책에, 좋은 음식에, 음악까지 들을 수 있다. 아, 그런데 레스토랑은 별로였다. 난 유난히 아침부터 풍겨오는 음식 냄새에 역함을 느끼는데, 여기가 좀 그랬다. 음식 냄새가 유달리 심했다. 레스토랑은 건물도, 층도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지나가는 길에 들렀는데도 좀 역했다. 

츠타야는 서점, 레스토랑, 음악 감상실을 불문하고 낮은 조도의 조명을 썼다. 아늑한 느낌과 마치 나만을 위해 조용한 공간이 배치된양 다정한 느낌을 줬다. 몽글몽글하고, 무엇이든지 우아하게 받아주고 고상하게 이야기할 듯한 누나 느낌. 특히 이 티사이트의 핵심은 유리다. 유리는 건물을 지을 때 보온과 보냉이 좋지 않아서 효율적이지 않다고 들었다. 건축재로선 빵점이지만, 전시용으론 다르다.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하고, “나 이런 것도 하는 사람이야”라고 남에게 보여줄 때 느끼는 허영심을 자극하기엔 이것보다 대빵이 없다. 







허영심 가득한 티사이트를 지나서 카우북스로 향했다. 전시도 자주 하는 개인 서점이다. 가는 길에 다양한 개입숍을 들렀다. 하나 같이 이뻤지만 하나 같이 비싸서 못샀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가게는 여기. 여러 명이 공동 운영하는 가게인데, 자기네가 원하는 물품을 가져와서 전시하고 판다. 이렇게 개인이 큐레이션하고, 파는 가게들은 서울에도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은 정말 1인이 아니라 일종의 크리에이티브 팀으로서 운영된다. 그래야 돈을 함께 뿜빠이하거든. 이런 개인 숍은 결국 팀 내지 개인 크리에이티브의 발현이자 카리스마의 표출이다. 회사원으로서 다 하지 못하는 자아실현을 바깥에서 하듯, 개인 숍 운영 역시 자아실현의 일부. 혜지랑 가게를 운영하고 싶더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어둠이 깔리면, 우리는 춤을 출 거야. 춤추며 절망과 싸우고, 웃으면서 낙관을 껴안듯이.

일본은 물성이 지배한다. 음원보다 앨범이고 테이프고 블루레이고 디비디다. 카세트테이프를 디자인 소품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일본에서 드물지 않다. 이 친구들이 갖고 있는 아날로그, 오프라인, 물성에 대한 향수, 아니 향수라기 부르기엔 현재에도 진행되기에 여기에 느끼는 집착은 무엇일까? 






카우북스는 디자인 서적을 모아뒀다가 아니라 여튼 그냥 개인이 구제 책 모아둔 가게다. 전시도 연계해서 많이 한다. 자유를 위한 모든 것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디자인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일본어 책이 많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서점이고 옷가게고 더이상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보더리스다. 슬로건과 가치에 맞는 모든 물건을 두는 곳이 가게이고 가치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사회인이다.












사이드워크스탠드커피. 음, 내 최애가 될 만하다. 여기 메인 메뉴는 파인애플 아메리카노다. 아메리카노에 파인애플 시럽을 끼얹었다. 맛이 좋다. 딱 깔끔할 만큼 달달구리하다. 시럽만큼 찐득하지도 않고, 메이플 시럽처럼 입에 감기지도 않는다. 깔끔해서 좋았다. 파인애플 맛이 너무 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잘 묻어간다. 김밥 마지막에 바르는 참기름이 김밥 풍미를 잘 살리듯이, 파인애플 향이 은은한 게 좋았다. 





일본 와서 셀카라는 걸 찍어봤다. 음, 너무나 못생겨서 디카로 찍고 그 프레임 안에 담긴 나를 찍기로 했다. 성공적. 맥북으로도 찍어봤는데, 얼굴이라는 게 쉬이 만족하기 어렵다. 더 웃어야지. 현모야 못생기면 웃어야 돼. 유노?

















사이드워크스탠드, 정말 평화로웠다. 주택가에 있었고, 여행객보다 현지인들이 많이 왔다. 나는 여유롭게 앉아서 커피를 즐겼다. 음, 커피를 즐기기보다 그저 시간을 보냈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망한 영화는 돈보다 시간이 아깝고, 여행에서 시간이 곧 금이라는데, 사이드워크스탠드에서 보낸 시간은 돈도, 금도 아니고 다이아몬드였다. 파인애플 색깔로 칠해진 다이아몬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그 묘한 이질감과 카페 손님으로 들어가 그 풍경에 섞여지는 감각 요리조리 셀카를 찍어보며 나라는 피사체를 다시 보는 이 감각의 합성은. 음. 변태다. 결국 남은 건 몇 장의 셀카와 잊지 못할 파인애플의 얇고 가벼운 단맛이지만, 그때의 시간은 내게 축적됐다. 


사이드워크스탠드를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커피를 부수기 위해 나카메구로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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