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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Sep 20. 2018

[도쿄여행] 1일차 3편 - 어서 오세요. 츠타야에,

싫음 말구

나카메구로를 벗어나 츠탸야 가덴에 갔다. 사실 나카메구로랑 거리가 멀어서 안 가려고 했는데, 동윤이가 한 번 꼭 가보라고 해서 갔다. 거리도 꽤나 멀었다. 유난히 동떨어져 있었거든. 비가 추적추적 오다가 갑자기 호오오오오우하면서 왔다. 우산 사는 건 사치다 싶었는데, 안 사면 도저히 이동이 불가해서 300엔 주고 하나 샀다. 일본의 하늘은 한 번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동한 츠타야 가덴. 졸라 컸다. 츠타야 가덴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컨셉 하에 책을 비롯해 전자기기 그리고 수많은 생활용품을 모아둔 츠타야판 이마트다. 사실 이마트라기엔 크기도 작고 품목도 적어서 좀 커진 교보문고라고 생각하자. 


츠타야는 손에 잡히지 않는 높은 벽장에도 책을 전시해 분위기를 풍긴다. 그래. 츠타야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위 ‘프리미엄 에이지가 사용하는 브랜드입니다’라는 이미지는 정말 마음껏 풍긴다. 이 라이프스타일이 나와 맞거나 내 취향에 맞다기보다 그냥 허영심을 제대로 자극하는 스타일이다. 여기 연예인이 왔대! 라는 느낌을 극대화했다. 


가게 전체의 공간 디자인이 흥미로웠다. 가게 전체가 유기적인 매대였다. 음식 관련 서적을 보다가 오른쪽으로 눈을 흘깃하면 음식 관련 소품을 전시해뒀다. 소품 따로, 책 따로 분리한 교보 + 핫트랙스와 정말 달랐다. 라이프스타일 해커라고 해야 할까. 너 음식 책 봤지? 그러면 귀여운 조리기구 보는 건 어때? 책 보면서 붐업된 허영심에 소비자 특유의 장비병을 더하면 구매가 빡. 


영화와 음악 잡지 뒤에 이어폰이 있고, 자기계발 서적 뒤에 가방과 만년필 등 직장인 문구류가 있고, 그 옆에 직장인 대상 자전거가 있었다. 아이들 잡지 뒤엔 아이들 장난감이 있다. 판의 미로가 아니라 츠타야의 지름신 미로로 명명하자. 


츠타야 가덴 윗층엔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 2 프로모션이 진행됐다. 극중 주인공들이 사는 방을 그대로 구현했단다. 아직 안봐서 패스. 


츠타야 가덴이라고 하지만, 다른 브랜드도 많이 입점했다. 1층엔 애플 스토어가 있었고 2층엔 파나소닉과 츠타야가 함께 만든 리얼 라이프 스튜디오라는 곳이 있었다. 낮엔 직접 오프라인 세미나도 가진단다. 가전제품 브랜드가 왜 이런 스튜디오를 꾸리는 걸까? 마치 OTT가 뉴스 브랜드로 품격을 갖추듯, 제조업도 우아한 브랜드를 갖기 위해 하는 걸까? PR내지 마케팅이라기엔 과녁이 맞지 않는다. 브랜딩이라는 더 거대한 틀로 보면 이해가 가는데, 이런 자그마한 규모로 파나소닉 브랜드를 살릴 수 있을까? 


일본은 잡지 천국이다. 프로레슬러를 위한 잡지, 스튜어디를 위한 잡지 그리고 노인을 위한 잡지도 있다. 2030패셔니스타가 아니라 6070길거리 패셔니스타를 인터뷰한 책도 봤다. 노인의 삶을 우아하게 그려낸 순백의 잡지도 있다. 옛날 일본 에도시대 야한 그림만 모아둔 잡지도 있다. 참, 기묘한 나라다. 활자 중독에 니치한 분야도 생존가능할만큼 거대한 수요가 있는 나라. 



하하. 


피곤해졌다. 미리 알아놓은 가게 우동신에 가려고 했다. 가게는 숙소 근처였다. 신주쿠역으로 이동해 우동신에 갔다. 줄은 길었다. 내 앞에 6~7팀이 있었다. 내 바로 앞은 미국에서 온 30대 커플. 갑자기 궁금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오게 된 걸까? (난 친구한테 물었다). 용기를 내 물었다. 


이 가게 어떻게 알고 왔어? - 음, 구글에서 찾아봤어 - 이 가게를 찾아본 거야? - 아니, 그냥 우동을 치니까 나오더라 - 아 그렇구나 너희는 인스타그램 안 써? - 아, 쓰지. 물건 사기 전에 리뷰 보려고 쓰는데 거기 다 fake잖아. 그냥 참고용 - 아, 그렇구나. ㄱㅅㄱㅅ 


여행오면 묘하게 뻔뻔해진다. 어차피 난 동양인이고 모국어가 영어도 아니니까 어버버대도 괜찮고, 쟤네는 어차피 내 수준에 맞춰 영어해줄 거고. 영어 대화 망치면 내 목이 날아가는 비즈니스 대화도 아니고, 그냥 캐주얼 대화니까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음, 그렇게 기다리자 가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참 좁았다. 도쿄는 땅값이 비싸서 건물을 좁고 효율적으로 쓰는 방식이 많이 발전했다. 커피도 ‘카페’가 아니라 ‘스탠드’에서 팔고, 음식점도 bar 좌석을 최대한 활용한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비좁았다. 



나는 냉우동+야채튀김 세트에 닭고기 튀김을 추가했다. 거기다가 생맥주 한 잔을 더했다. 음, 풀세트다. 한국에서 맥주 한 잔이면 얼굴이 시뻘개지는 주제에 무슨 맥주를 시켰냐! 고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취할 거면 여행지에서 취할란다. 아니나 다를까, 맥주 한 잔에 시뻘개졌다. 그래도 기분좋았다. 닭고기 튀김은 너무나 맛있었고, 면발은 음 죽여줬다. 이게 면발이구나. 면의 맛이 이런 거구나. 맛있는 면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굵은 면은 양념이 쉽게 배어들지 않아 별로라는 내 지론을 정면 부정하는 발견이었다. 두꺼워도 양념을 잘 흡수할 수 있고, 탱글하면 된다. 


기본기. 일본 음식점에서 기본기의 중요함을 배운다. 면집은 면이, 밥집은 밥이, 스시집은 음 스시가? 아니 여튼 기본기가 중요하다. 화려한 디자인과 그럴싸한 음악과 분위기있는 뷰보다 그 마무리점을 찍는 음식이 중요하고 그 음식은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머문 숙소의 컨셉은 페북 글 복붙. 이 글을 쓰고 복숭아맛나는 2프로 부족할 때 같은 물을 마시고 잤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숙소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신주쿠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혼자 가는 거라 에어비엔비는 딱히 땡기지 않았고, 캡슐호텔은 위치가 안 좋았다. 좀 이뻐보이는 게스트하우스를 찾다가, 북앤베드 게스트하우스에 안착.


컨셉이 좋았다. 북카페를 넘어서 북게스트하우스. 활자중독인 일본답게 책장을 인테리어 컨셉으로 잡아 온갖 곳에 잡지와 만화책 그리고 소설책을 두었다. 언뜻 보면 별마당 도서관이다.


그렇다고 책을 추천한다거나 그러진 않는다. 책은 장식이다. 사실, 우리에게도 책은 장식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그만 아닌가.


벽은 책장이고 천장엔 아키라 만화책이 장마다 찢어져서 걸려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이다. 화장실과 방에 붙어있는 안내용 공지도 책 페이지에 매직으로 휘갈겼다.


보기엔 이쁘지만 숙소로선 별로다. 일단 전체적으로 숙소가 좁다. 타올은 따로 돈을 내야 하고, 심지어 현금은 안 받는다. 사실 이건 숙소의 서비스화라고 보면 이해할 만하다. 고깃집에서 술파는 느낌. 아, 노 캐쉬가 정책이란다.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숙소 사용한다고 관련 혜택을 주진 않는다.


1박에 약 5만 원으로 그냥 무난한 가격이다. 한국인은 나밖에 없다.


한국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하면 파티, 만남, 술을 그렇게 강조한다. 여기는 그 대척점에 있다. 여행갈 때 누구나 책 한 권쯤은 가져가는 심리를 그대로 표현한 공간이다. 이렇게 개인의 취향을 공략한 공간은 오랜만이다. 심지어 창가에 의자를 갖다놔서 페북 프사 건지기도 좋겠다. 난 혼자 와서 못 건졌다. 


일본에 와서 조명에 감탄한다. 츠타야, 그럴싸한 개인 가게 그리고 여기까지 웜톤 조명에 저조도를 사용해 분위기 내는 데 아주 그만이다. 책 읽기도 그럴싸하고, 잠도 잘 온다.


아, 안전해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혼성 도미토리이고 여성용 도미가 따로 있진 않지만, 모두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좁아서 괜찮다. 두 겹 커튼에 자석을 달아서 밖에선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2층 침대 갖다놓은 도미토리보다 개인 공간은 철저하게 지킬 수 있다.


한국의 게스트하우스는 어떤지 궁금하다. 아, 난 무슨 책을 가져왔냐고? 트레바리에서 읽을 내 월급은 정의로운가, 매거진비-츠타야, 당신의 반짝이는 순간. 얼마나 읽었냐고?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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