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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an 13. 2019

멋지게 인사하는 법


면접장의 핵심은 자기 인상을 남기는 일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짧은 십여 분의 시간 동안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가 아마 우리와 직장상사가 처음으로 하는 인사일 테다.


멋지게 양복을 입고 면접을 보는 게 첫인사라면, 언젠가는 끝인사를 해야할 시간이 온다. 나에겐 그 시간이 조금 빨리 왔다. 취'직'을 한 이후, 새롭게 취'직'이 됐고 새롭게 된 곳이 나랑 더 맞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옮기기로 했다. 


그간 일의 일기에 출연한 선배에게도 물었고, 직장 선배는 아닐지언정 그 업계 선배에게도 물었다. 어쨌거나저쨌거나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럴싸한 첫인사만큼이나 괜찮은 끝인사가 필요했다. 당시 나는 팀에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와 신입사원 프로젝트 총 2개에 얽혀있었다. 운좋게도 첫 프로젝트는 내 퇴사일 전주에 모든 일이 끝났다. 


후자는 드라마틱했다. 당시 나와 내 동기는 브랜딩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회사 선배들 및 주요 간부분들에게 발표를 해야만 했다. 나를 포함해 전체 동기가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와중에 나혼자 먼저 내리겠다고 말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전체 사기에 해가 되고, 모양새 역시 좋지 않다. 그래서 프로젝트 최종 발표일날에 동기들에게 말하기로 했다.


발표는 순탄했다. 내 소임도 다했다. 선배들과 간부분들의 질문엔 어쩌다보니 내가 전부 답했다. 그렇게 큐엔에이가 끝나고, 인사팀과 우리만 남은 상황이었다. 인사팀분들에게 조용히 시간을 부탁드렸고, 난 동기들만 남아있는 그 회의실에서 내가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말을 하는 일 자체도 어려웠지만, 마음 정리가 더 어려웠다. 여름부터 함께 한 동료와 이별하는 일은 어렵다. 그렇게 자주 이별해놓고도 이별은 어렵다. 마음엔 굳은 살이 쉬이 박히지 않는다. 한 배를 탄 동료에서 이제 그냥 같은 바다 위에 있는 또 다른 항해사로 바뀌는 과정은 내 마음에서 순탄치 않다. 아예 동떨어진 회사로 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현업에서 좋든싫든 부딪칠 수밖에 없겠지만 같은 배의 선원이 아니니까 입장도 다를 테다. 


떠나는 날에, 선배가 조용히 날 불러서 커피를 사주셨다. 직장이 아니라 업에 관심 있는 모습과 많이 묻고 배우려는 태도를 잃지 말라고 말씀해주셨고, 나는 언제어디서든 선배로 모시겠다고. 선배라고 부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이벤트 물품 300개를 나른 건 함정이다. 



멋지게 인사하는 법이라고 제목을 썼지만, 사실 멋진 인사는 아니다. 작별인사엔 항상 아쉬움이 남고, 우리는 그 아쉬움을 멋있다고 묘사하지 않는다. 헤어질 때는 멋진 인상보다 서로에게 아쉽고 그리운 인상이 더 좋게 남는 법이다. 


멋지게 헤어지는 법은 간단하다. 떠나는 사람으로서 윤리를 지키면 된다. 떠나는 사람의 윤리는, 남은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다. 우리는 종종 남은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마냥 나쁜 이별인사를 나눌 때가 있다. 이 좁은 세상에 다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데 그런 나쁜 인사를 나누는 일은 옳지 않다. 나와 내 동기들은 각기 다르게 생긴 것마냥 각기 다른 결정을 할 뿐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일의 일기를 쓰듯이, 우리는 그저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면 된다. 남은 곳이 어떻냐느니 어쩌고저쩌고 구시렁대면서 전에 있던 보금자리를 욕하는 일은, 결국 내 동료를 욕하는 일이고 나를 욕하는 일이다. 


일의 일기에 챕터 하나가 끝났다. 새롭게 옮기는 곳에서도 내 일기는 계속 될 거고, 다른 선배가 나올 테다. 아마 그곳에선 내 동료들과 나누는 일기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전직장에선 나만 유일한 막내였기에 쉬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새로 옮긴 직장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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