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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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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un 23. 2019

비명이 훈장이 되는 순간


“일단 정직해야 해” 


#일의일기 에 자주 나오는 그 선배가 말했다. 일을 못하는 건 괜찮지만, 거짓말을 하는 건 안 된다고. 덧붙여 자기 일을 위해, 남을 괴롭히면 안된다고 말했다. 자기는 예전에 그랬고, 이제와선 미안하고 후회한다고. 그랬던 선배가 미웠고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고.  


만화책 베르세르크에서 그리피스는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동료와, 그들과 쌓아놓은 연대와 기억을 모두 희생했다. 만화책에만 있을 법한 상황은 아니다. 좋은 결과를 위해 어디까지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하나, 혹은 남을 채찍질해야 하는지 로-동자는 매일 고민해야 한다.  


남을 괴롭히지만 일 잘하고 압도적인 결과를 만드는 유능한 사람이 될지, 혹은 좋은 사람이 될지 내게 고르라고 하면 난 후자를 고를 것 같다. 근본적으로 내게 일이라는 것은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 내가 더 낫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거지 나쁜 사람이 되려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그 일이 궁극적으로 나로 하여금 ‘좋은 사람’ 혹은 ‘나은 사람’이 되게 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왜 해야 하는가 의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악명을 마치 명예로운 훈장처럼 여기는 사람들. 예전에는 더 했었지, 내가 그렇게 조졌었지.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만들어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만큼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야.  


그런 사람도 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어필하는 사람. 안타깝게도 고생과 불행 그리고 비명은 적으면 적을 수록 좋다. 우리는 고생을 자랑스러워해서 안된다. 그만큼 부끄러워해야지. 시발 봉준호도 표준근로계약서에 맞춰서 딱딱 일하는 마당에.  


이러면 현장에서 그게 되냐. 어쩌고들 한다. 그렇게 지키지 못할 현장이면 애초에 그 현장을 책임질 능력이 안되는 사람이다. 본인이 재가 될지언정 다른 사람을 갈면 안된다. 가수 이승환님도 공연 후에 팀 하나씩 호명하면서 멋지고 자랑스럽다고 하는 마당에. 다른 사람의 공을 말하긴커녕 갈면 안되지.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우리를 위해 하는 희생이라고? 희생은 자기가 하는 거지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내 꿈을 위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이유 없다. 난 다른 사람의 비명을 훈장으로 삼는 여러 사람을 혐오한다. 


유사-예술가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기행과 폭언을 좋은 결과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전문직의 대명사인 의사도 협업이 필요하고, 그 협업이 안되는 사람은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없다. 현대 문화 예술 산업의 정수라 볼 수 있는 게임, 음악, 영화 모두 세세한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시스템과 협업없이 한 명이 캐리하는 시스템은 사실 인디씬이라 불릴 만한 언더그라운드 빼고는 없다. 하다못해 1인 사업가도 협업의 연속인데.  


난 협업이 안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비명지르게 만들고 인격적으로 깎아내리는 사람이 더 좋은 아티스트나 크리에이터나 일 잘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동료의 비명을 수치스러워해야지,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아니 전세계는 일하다가 악마가 된 사람을 찬양하곤 했다. 하지만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일은 그 과정 중 하나다. 그 과정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고 악마가 되는 사람은 과연 사람인가. 세상에 혼자 하는 일은 없고, 혼자 사는 세상은 없다. 혼자 일하는 곳도 없고. 같이 일하고, 같이 사는 세상이다. 이곳에서 지켜야 할 룰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존중할 것. 그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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