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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un 01. 2019

아름답고도 발칙한 <파리의 딜릴리>

브런치 무비패스로 본 파리의딜릴리 매우 ㅊㅊ


아름답고도 발칙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화에 발칙한 소재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라니. 끝나자마자 감탄했다. 이렇게 훌륭한 애니메이션이, 훌륭한 영화가 나올 수 있는 프랑스 영화 생태계가 갖고 있는 연출진과 기술력이 부러웠다.  


파리의 딜릴리는 벨 에포크 시대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냥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을 아름다운 작화에 담아내고, 현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그려낸 사회파 애니메이션이다. 이런 장르가 따로 없겠지만, 사회상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라 내 맘대로 추가했다.  


아름답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대를 의미한다. 역사적 배경으론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파리가 번성한 시기를 의미한다. 전화, 철도, 자가용, 비행기 등 여러 과학 기술이 이때 발전해서 사실상 유럽의 전성기라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이렇게 잘났으니 제국주의가 정점을 찍을 수밖에 없고, 식민지도 정복도 어마어마했다. 

한 줄로 요약하면, 벨 에포크는 유럽의 마지막 경제-문화-사회적 전성기였던 셈. 참고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아티스트 (모네, 르누아르, 드뷔시, 마티스)가 이 시대에 태어났거나 작품을 그려냈다.  


파리의 딜릴리는 이 벨 에포크 시대의 중심에 있는 프랑스, 그 프랑스 중심에 있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벨 에포크 시대라는 명성에 뒤처지지 않는 비주얼을 뽑아내기 위해 무려 4년이나 자료 수집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사진을 찍고, 과거 그림을 모아내고. 심지어 하수도에도 들어갔다고 하니 할 말 다했다. 


그래서 영화 곳곳에 디테일이 살아있다. 에펠탑을 만든 에펠, 위인전으로 만난 마리 퀴리 (퀴리 부인), 우유의 파스퇴르 등 우리가 알만한 유명인과 아티스트들이 영화 곳곳에서 단서를 제공하거나 주요 역하을 수행 한다.  


발칙하다  


벨 에포크는 역사에 공부하는 여성이 등장하고, 그 여성들로 인해 문화가 융성하던 시기다. 앞서 말한 마리 퀴리, 까미유 끌로델, 사라 베르나르 등 위대한 아티스들이 등장한다. 새로운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위대했던 시기에 공부한 여성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냈고, 그 목소리는 파리와 프랑스의 역사에 깃들었다.  


파리의 딜릴리는 아프리카에서 온 소녀 딜릴리의 시각으로 그 역사를 그려낸다. 언더독의 입장으로 새롭게 등장하던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 당시 흔들리던 기득권을 발칙하게 비꼰다. 딜릴리는 어린 여자 아이이며, 뉴칼레도니아에서 파리로 이주한 소위 유색인종이다. 마이너 중 마이너의 관점으로 기득권을 비판하기에 발칙하다.  

영화 속에서 딜릴리의 대척점에 있는 이들은 ‘마스터 맨’이라 불린다. 이들은 백인 남성 기득권으로 여성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 구시대를 상징한다. 그들은 여성이 네 발로 바닥을 기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말하는 여성들의 세력화를 막기 위해 어린 여자 아이들을 납치해서 바닥을 기게 만든다. 소위 싹을 잘라버리는 작전이다.  


고전적이고 현대적이다. 벨 에포크라는 고전을 배경으로 현대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여성은 뭉치고, 이 여성들의 연대를 핍박하는 기득권의 그림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오늘 있던 퀴어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퀴어의 등장이 본인들의 기득권을 해친다고 과대망상하는 이들은 종교와, 질병과, 악마의 이름으로 퀴어를 핍박한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꽉 찬 이들은 당당한 여성에 거부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바람이 불면 돌담을 만든다. 하지만 누군가는 풍차를 만든다. 이 영화는 바람이 불 때 돌담을 만들던 이들을, 그리고 아직까지 만드는 이들을 통렬히 비꼬는 영화다.  


소녀들이여 신화가 되어라 


어릴 때부터 보아온 많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남자였다. 다간, 가오가이가, 마징가제트, 케이캅스, 선가드 등. 시대가 시대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웨딩 천사 피치와 천사소녀 네티를 제외하면 역경을 풀어내는 건 대부분 소년들이었다.  

파리의 딜릴리는 그래서 의미 있다. 소녀가 주인공이며, 그녀가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어른 여성들이 소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잡아주어 함께 해결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에 하나의 큰 고리로 세력이 된다. 이렇게 의미 있는 그림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만듦새도 좋고, 완성도도 좋고, 작화는 더없이 아름답다.  


파리의 딜릴리, 꼭 보기를 추천한다.  


브런치 무비 패스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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