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정대 없어서 행복합니다.
'제 3자 효과’라는 놈이 있다. 미디어효과이론에 나오는 놈인데, 쉽게 말해 제 3자인 일반 사람들의 능력을 무시하고, 내 능력은 높게 보는 이중잣대다.
예를 들어, EXID 하니가 위아래 춤을 추거나 아이유의 제제가 길거리에 울려퍼지면 “어머어머, 나같이 씹선비에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배운, 이 시대의 지성인에겐 문제가 없지만 저~~기 인간백정 구현모는 저거 보고 여자를 성적대상화할 거고, 왜곡된 성의식을 가질 거고 페도필리아가 될 거란 말이야! 저런 건 전부 없애야 해!” 따위의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제3자가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 영향을 크게 받을 거란 전제에 의해 미디어를 규제하면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가 아니다. 그저 제3자가 만든 미디어에 대한 타인의 수용능력이 나보다 현저하게 떨어질 거라는 일종의 가정이다.
일종의 편향적 가정에 의해 사람들이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많은 미디어 검열 현상이 이런 형태의 담론을 바탕으로 일어났다. 당장 제제사태만 봐도, 저런 댓글이 많았는걸.
https://www.youtube.com/watch?v=kLIK5AW72KI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올리려 했다. 약 20%. 많은 소비자들은 지금도 충분히 높은 생리대 가격을 올리려 하는 회사에 분노했다. 결국 하루만에 인상은 취소됐다.
생리대 가격 인상 소식이 나오자, ‘깔창생리대’ 로 대표되는 저소득층 여학생들의 고충이 기사화됐다. 돈이 없어서 생리대를 깔창으로 대신했다. 보다 나은 친구는 깔창 대신 휴지로 대신했다.
왜 이 문제를 얘기하지 않았을까? 이 친구들은 이미 얘기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자애가 생리대도 안 챙기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생리대 문제는 쉽지 않다. 10대, 여성, 생리대. 앞의 두가지는 사회적 약자이며, 뒤의 생리대는 그간 공론장에서 다루지 않던 소재다.
왜냐고? 성문제니까.
10대의 성은 꽤나 폐쇄적이다. 한국 사회는 10대 앞에서 섹스, 자지, 보지, 항문, 생리, 몽정 등의 단어를 쓰는 걸 ‘민망’하거나 ‘금기’시한다. 쉬쉬하는 풍경이다.
왜냐고? 10대는 아직 미숙하니까.
10대는 제3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나약한 존재니까.
쉬쉬하는 풍경이니, 공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보건실 선생님도 공감하지 못하는 소재를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울까. 상상할 수 없다.
10대니까, 나중에 알아도 되니까 지금 말하지 않아도 되는 소재는 없다. 한국은 유독 미성년을 어리석고, 무언가 배울 필요 없고, 지금 무언가를 알면 안되는 사람으로 보기 마련이다.
특정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미루고, 숨기기에 급급해봤자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 아니 나아지긴커녕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 때 상황을 악화시키기 쉽다. 우리가 A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A 부분에서 문제가 안생기리란 보장은 없다.
그 소재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다면, 더더욱 꺼내서 이야기해야 한다. 생리부터 섹스까지 10대 때부터 알아야 한다. 삶과 밀접한 부분에 대해 대화하는 걸 ‘너넨 아직 어리니까'라는 이유로 미루는 걸까.
한국의 폐쇄적인 성문화와 한국의 rape culture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폐쇄적인 성문화로 인해 저질의 성교육이 나오고, 이 때문에 rape culture가 생기는 건 아닐까 싶다.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금기시되어야 하는 이야기는 없다. 상처를 가리면 곪기 마련이고, 곰팡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존재든 햇빛 앞에서, 대중 앞에서, 자유로운 공론장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