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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un 17. 2016

<영화인물읽기> 라이언스톤 in 그라비티

지구에서 죽고, 우주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살아가다

1. 


누구나 한 번쯤 "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란 생각을 한다. 가 본 거리가 어디선가 본 거리 같고, 이 사람과의 대화가 어디선가 들었던 대화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그 느낌을 영어로 'Deja-vu', 한국어로 '기시감현상'이라 부른다. 다음 사전에선 '처음 해보는 일이나 처음 보는 대상, 장소 따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영화 Gravity(그래비티)는 하나의 데자뷰였다. '우주 조난을 당한 박사와 항해사의 생존기'라는 간략한 줄거리의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시종일관 관객을 압도한다. 아바타로 시작된 3D영화가 그래비티에서 그 절정을 맞이했다. 우주 위성의 잔해, 광활한 우주 그리고 티끌만한 인간의 모습을 3D효과는 물론이요, 웅장한 소리를 통해 구현한다.


실로 압도적이다


직관적 줄거리에 압도적 비주얼로 중무장한 영화를 90분 간 겪다보면 누구나 이 영화는 '볼거리'밖에 없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내러티브'다. 그간 나온 헐리우드 SF영화가 빈약한 주제의식을 풍만한 특수효과로 '감췄'다면, 그래비티는 특수효과를 통해 메시지에 '보색효과'를 더했다. 화려하지만 산만하지 않은 특수효과가 관객으로 하여금 간략하고 감성적인 메시지에 집중을 하게 했다. 이 글은 영화가 보여주는 메시지를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첫 번째 도구는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영웅의 12단계’이고 두 번째는 중심에서 '멀어짐'과 '가까워짐'의 요소이다. ‘영웅의 12단계’로 분석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기승전결이 주인공(산드라 블록)이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고, 이 모습이 영웅서사구조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이야기를 영상화 하는 과정에서 중심에서의 거리가 상당히 중요하게 역할했다.



2. '멀어짐'과 '가까워짐'의 시각적 요소와 그 의미


2-1) 맷과 라이언의 거리


큰 그림을 보면 결국 이 영화는 지구에서 멀어지기 위해 우주로 갔던 사람이 다시 지구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렸다. 세부적 요소를 보면, 각 요소 간의 '가까워짐'과 '멀어짐'이 여러가지 의미를 품고 있단 걸 알 수 있다. 영화 초반부에 나온 '멀어짐'과 '가까워짐'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각각 '두려움'과 '안정성'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주인공 라이언 스톤 박사의 시점에서 그러져있다. 영화 초반부, 라이언 스톤 박사가 우주선의 잔해로 인해 고통을 받는 부분에서 가까워짐은 안정적이고 멀어짐은 두려운 느낌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멀어짐과 가까워짐의 기준은 라이언 스톤 박사와 맷 코왚스키의 거리이다. 그녀는 코왚스키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이는 그녀가 슬픔을 '멀어짐'을 선택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역설적이다. 그녀는 맷이 죽을 때에도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계속 다가갔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직접 택한 '멀어짐'의 방식을 포기하고 '가까워짐'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2-2) 라이언과 지구의 거리


맷 이 죽은 후 그녀는 자신과의 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할 '중심'을 지구로 돌렸다. 지구에서 멀어진 그녀가 다시 가까워지기로 결정했다. 그 뒤로 '거리'와 '중심'을 암시하는 많은 요소들에는 지구가 중심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라이언이 생존을 위해 우주선을 타는 장면에서는 화면의 구석에 '지구'를 상정해놓고, 그녀가 그곳으로 '등산'하는 듯한 모습을 그렸다. 이는 특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에 한 구석에 '태양'을 그리는 것과 유사하다. 지구로 내려가는 과정도 지구를 중심으로 라이언이 '돌진'하는 듯한 모습의 구성을 그렸다. 자세히 보면, 마치 지구를 난자로 결정하고 떨어지는 우주선을 정자로 그린 듯하다. 이 구도가 '정자-난자'로 치환될 수 있는 이유는 영화의 시각적 요소말고도 영화의 내러티브와도 호응한다. '바다'에 추락한 그녀는 개구리를 지나치고 육지로 올라가서 두 발로 우뚝 선다. 이는 생물이 바다에서 기원했고, 양서류가 진화해서 땅으로 가장 먼저 선 생물이라는 사실과, 인간이 진화의 사슬에서 최정점에 있는 것과 연결시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라이언은 우주선이라는 정자와 지구라는 난자가 만나서 새롭게 태어난 인간이다. 이는 라이언이 우주에서 새로운 삶의 자세를 깨닫고, 자신이 떠나고 싶었던 지구로 기꺼이 돌아온 스토리와 연결된다.



3. 해석


2-1) 과 2-2)를 종합해서 고려하면 우리는 딸의 죽음으로 상정되던 지구가, 맷(인간)을 매개체로 '생명'이라는 새로운 의의를 가졌음을 추론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의의와 스토리를 연결해 볼 수 있다. 라이언 스톤은 하루하루 무력한 생활을 보내다가 NASA에 지원해 우주로 오게 된다. 그녀에게 우주는 '도피처'다. 중력도 아무 것도 없는 우주에서 그녀를 괴롭지 않다. 완전한 고요에서 그녀는 조용히 침전한다. 그녀는 삶의 이유를 모른다. 그녀에게 우주에서의 삶은 죽지 못해 사는 그저 그런 시공간이다.



까마득한 공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삶의 열망을 불러일으킨 건 무엇도 아닌 '죽음' 그리고 누군지 모를 '아난강'이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던, 사회적 동물로서의 '죽음'을 미리 맛 본 그녀에게도 생물학적 '죽음'은 공포였다. 그 공포 끝에서야 그녀는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런 그녀의 열망은 '맷'으로 형상화된다. 'Sit back and Enjoy the ride' 말을 남긴 맷. 삶이란 달리기에 이유는 필요 없다. 우리는 존재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달리는 거란 맷의 말은 그녀 생의 불꽃을 다시 태운다. 그리고 그 불꽃은 지구로의 귀환으로 이어졌다.




외딴 우주에서의 '고독'을 치유해준 건 누구도 아닌 타인, 우연찮게 라디오에 잡힌 이누이트족 '아난강'이었다. '지구'에 사는 아난강이 '우주'의 스톤에게 희망을 준다.  '우주'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뿐, 그녀를 치유해주지 못 했다. 오히려 그녀를 더 병들게, 외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주'에서 '지구'로, 하강이지만 '침전'이 아닌 '상승'을 향한다. 지구에 추락한 그녀는 지구 가장 깊은 곳인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다. 자신의 발로 한걸음 한걸음 육지로 향한다. 그렇게 그녀는 '육지'위에 굳건히 선다. 그 굳건함은 개인을 뛰어 넘어 집단으로, 집단을 뛰어 넘어 '인간'의 올바른 자세를 보여준다.



새로이 태어난다


이 세상엔 60억 개의 외로움이 있다는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고독하고, 상처받는다. 그럴수록 사람은 문을 닫고 자기 자신을 가둔다. 멀리 떨어져 있음은 상처를 주지 않을지언정 그 상처를 치유시켜주지 못 한다. 오히려 그 상처는 곪고, 썩고, 짓무른다. 최고의 살균은 햇빛이란 말처럼 사람의 상처는 사람에게서만 치유받는다. 

아프면 아플수록,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사람은 밖으로 나가고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사람의 상처에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는다. 이렇게 그래비티는 영웅적 서사와 거리라는 시각적 요소를 바탕으로 인간에게 '답'은 결국 '인간'에게 있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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