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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pr 17. 2016

정부여당의 노동개혁은 선진적이었나?

시대에 역행하는 정부의 노동개혁

2015년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을 참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노동입법, 국정교과서, 한일 위안부 협의 등등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굵직한 이슈만 해도 무려 3가지가 된다. 모두 학계, 시민단체 등과의 협의 없이 일방 강행 추진한 정책이다.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된 현 국면에서 어떻게 타개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 물론 대통령은 여전히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다("朴대통령 "노동개혁, 꼭 이룬다는 신념으로 적극 추진").


"노동시장 개혁이 꼭 필요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노동개혁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 하에 이를 적극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별개로 각 정책들은 문제가 많아 보인다. 이 말은, 야당이 '야당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충분히 '구리기 때문에'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의 노동개혁 중 가장 구시대적인 발상은 바로 '고용보험'관련 법안이다. 정부의 노동입법 중 고용보험 법안은 '실업자의 취업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목적 하에, 수급조건을 강화하고 수급 총액을 줄였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슬로우 뉴스 기사에서 보자. ("새누리당 5대 노동입법 해부: 4. 고용보험법 – 실업급여가 재취업을 방해한다고?")


친여 성향, 친보수성향 일간지들 역시 이 의견에 동의하는 듯하다. 작년부터 꾸준히 친노동 입법 기사를 냈다. 조선일보는 "無給병가·실업수당 축소… '복지천국' 북유럽, 마음 바꿨다", 문화일보는 "노동개혁 ‘골든타임’ 놓치면 일자리 물거품" 등의 기사를 냈다. 자 그럼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정부의 노동입법은 과연 선진적이었나? 아니, '고용보험'에만 국한해서 보자. 진짜 시대 흐름을 꿰뚫는 법안이었을까?


한국의 노동시장은 여러모로 미국과 닮아있다. 약한 노동조합률, 강한 기업, 부실한 사회안전망 등등. 신자유주의 개혁이 대부분 '미국발 구조개혁'임을 감안하면, 미국을 보면 한국의 미래를 대충 점찍을 수 있다. 


셰일가스로 대표되는 에너지 혁명 등으로 미국의 경제가 조금이나마 부활했다. 실업률 수치도 낮고, 오바마 행정부도 항상 "우리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외친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미국의 정규직은 '9 to 5'일자리로 불린다. '9 to 6'가 기본인 한국과 대비된다. 역시 선진국이다.  지난 2010년 경제위기 이후 없어진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겼지만, 그 일자리는 기존 '9 to 5'라 불릴 수 없는 일자리들이었다. 1주일에 2일 10시간씩만 몰아서 하는 일자리, 자영업자를 재고용하는 등 기존과 다른 '대체 형태'의 일자리가 생겼다. Alternative arrangement다. 이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하버드 경제학자는 'Alternative'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Harvard economist: All net U.S. job growth since 2005 has been in contracting gigs )

The pair defined “alternative” as any type of temporary, gig, or contract work, including Uber drivers. 


블루 컬러만 이런 위험에 빠질 거라는 편견은 오산이다. 화이트 컬러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고소득 화이트 컬러의 핵심이던 법률 회사, 교육 관련 회사, 건강 관리 산업, 심지어 정부 일자리까지. 공무원도 비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한 시간제 일자리로 대체되는 셈이다. 대체 일자리의 광풍은 멈추지 않았다. Gig economy라고 하면 우버, 페이스북, 리프트 등 인터넷 산업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런 '온라인' 산업보다 '오프라인' 산업에서 노동 대체 효과가 컸다("Contract Workforce Outpaces Growth in Silicon-Valley Style ‘Gig’ Jobs"). 이런 대체 노동의 일자리는 주로 고령자, 저학력자, 여성, 흑인이 채운다. 실제로 한국의 시간제 일자리는 대부분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를 위한 정책이며, 이 정책은 오히려 임금격차를 악화시킨다("성별격차 악화시키는 여성 시간제 일자리"). 

문제는 이런 일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기존 사회 안전망 제도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영업자이자 동시에 피고용자인 사람은 사용자로 잡아야 하는가, 노동자로 잡아야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의료보험 지역가입자인지 아니면 회사 가입자인지라는 질문까지. 


좀 더 와 닿게 말하자면, 한국의 많은 비정규직-파견노동자들이 고용 보험이라는 제도에 들어가지 못하는 점과 닿아있다. 세월호 사고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가 돌아가신 교사분이 '기간제'라는 이유 하나로 순직 처리 하나 받지 못했다(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신청 '반려'… 유족 "포기 안 해) 정부의 제도보다 시장의 변화가 더 빠른 셈이다.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우리나라 정부가 고용의 형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자행되는 여러 행동들은 무섭고, 강력하다. 그를 바꾼다는 표현보단 그 변화에 저항해 속도를 늦춘다는 표현이 맞다. 


이 점에서 조선일보의 북유럽이 복지를 줄이고 있다는 식의 기사는 최악이었다. 북유럽과 한국의 시장은 매우 다르다. 북유럽은 한국보다 연금과 보험 등 사회 안전망의 역사가 오래됐다. 이 맥락을 제외하고 "복지의 아이콘인 북유럽도 복지를 줄인다. 한국도 따라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일은 옳지 않다. 한국은 연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부족했으며,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자식농사'로 노후를 대체하던 게 불과 20년 전이다. 또한 '일하게 만드는 복지'는 북유럽의 ALMP(Active Labour Market Policy)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다. ALMP는 유럽의 노동정책으로서, 재취업자에게 적극적인 교육을 가르치고 공공일자리를 주선시키는 등의 정책을 말한다(위키). 이 말인즉슨, 북유럽은 강력한 노동정책을 시행하는 동시에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다른 방안을 모색했다. 기초공사도 없는 한국에 저 이야기를 들이대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한국의 사적연금은 국민들의 '공적연금 대체방안'이라기보다는 중산층 이상 가구의 또 다른 재테크 방안인 게 사실 아닌가. 재정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사적연금을 활성화시킨다는 문구는 한국의 실정과 전혀 맞지 않다. 현재 한국 3040들이 사적연금 들었다간 ㅈ되기 십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중간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는 점점 위로 올라가고, 나머지 찌꺼기 일자리들만 남는다. 노동이라는 게 개인의 실력보단 부모의 사회적, 물적 자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결국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된다. 이 현상의 중심에서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재취업 기능 약화'라는 명목으로 고용보험의 수급액을 낮추는 게 답인가?


정부의 임무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시장의 변화를 예측해, 기존 제도가 포용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설치하는 게 우선이다. 노동자들이 고용보험을 쉽게 타 먹었다고 말하기에는 고용보험 가입률이 너무나 낮다. 자영업자는 고작 0.4%만 가입하고 위 본문에서 다룬 'Alternative arrangement'라 말할 수 있는 임시-일용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0% 수준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 비교. 고용보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출처 : 한국일보)

이제 전대표가 된, 김무성 새누리당 전대표는 이야기했다. 


글로벌 경쟁서 낙오자 안되려면 노동개혁으로 체질개선해야

정부의 노동입법은 과연 선진한국을 위한 정책이었는가. 오히려 낙오자를 양산하고, 낙오자에 대한 안전망을 철폐하는 정책이 아니었는가. 정규직이 과보호될 수도 있다. 상위 10%인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쉬운 해고'의 타깃은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 아니었는가(노조가 있는 정규직 노동자는 정부의 규칙보다 단체협약에 먼저 영향 받는다. 따라서 정부가 뭐라고 하든, 노사 협약이 먼저다). 낙오자를 더 낙오하게 만드는 정부의 노동입법은 옳지 않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낙오자들도 다시 뛸 수 있게끔 하는 일이다. 안전망을 좀 더 탄탄하게 만들고, 기존 제도가 포함하지 못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좀 더 세세하게 정책을 꾸미는 일이다. 한국의 GDP 대비 복지 비용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치지 못하는 거, 더 미치게 만들지 말고 기본부터 잘해야 한다. 


토인비는 말했다. "국가의 붕괴는 외부가 아닌 내부의 분열에서 시작한다". 나는 생각한다. 정부의 노동입법은 하위 90% 노동자를 철저하게 분열시켜, 우리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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