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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Mar 13. 2024

운전이 뭐죠? 먹는 건가요?

5전 6기 운전면허 기능시험 도전기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기능시험에 무려 6번이나 도전했다. 내가 면허 시험 중에서도 기능에서 여러 번 떨어졌다는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다들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 심지어 운전면허시험장에서 5번째 탈락하고 나오는 날, 나의 표정이 얼마나 슬퍼 보였는지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처음 본 도장 담당자분께서도 나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 딸과 이름이 같네… 내 딸도 면허 금방 땄으니 다음에는 붙을 거야"




반복된 탈락은 나라는 사람의 자신감을 바닥 끝을 너머 지하까지 끌어내리기 충분했고, 모두들 쉽게 통과하는 기능시험에서 나는 왜 자꾸 떨어지는 것인지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한 다음 바로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안전교육을 수강하고 필기시험을 고득점으로 합격해 나는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로 시작했다. 필기시험의 다음 관문인 실기 시험을 위해 주변 운전학원을 알아봤을 때 생각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당시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았던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하는데 80만 원 정도의 비싼 학원 비용을 내는 것이 굉장히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며칠을 검색한 끝에 기가 막힌 학원 한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집 근처에 새롭게 오픈한 실내운전면허 연습장이었다. 당시 집에서 도보 20분 거리쯤에 오픈한 연습장으로 특가 이벤트로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운전면허취득과정을 연습할 수 있었다. 특히 늦은 시간까지 운영을 하는 곳이라 퇴근하고 연습을 하러 방문하면 딱이라는 생각에 주저 없이 바로 결제를 하고 등록했다. 이날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르는 채...




학원에 처음 갈 때만 해도 나는 얼른 면허를 따야겠다는 목표 의식과 운전을 배운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비록 자전거는 잘 타지 못하지만 나는 운동 신경은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전과 운동신경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 그 두 가지가 비례할 거라는 이상한 논리로 무장한 채 실내운전연습장에서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시간을 보냈다. 



당시 내가 얼마나 운전에 진심이었는지 오픈한 가게의 사장님께 성실함으로 인정받아 사장님께 특별 코치까지도 받는 애제자로 등극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매일 퇴근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원에 들러 1시간 30분씩 맹연습에 몰입했다. 심지어 저녁을 건너뛰고 열심히 연습하는 날이 많았는데 다른 수강생들과 달리 열심히 연습하는 내 모습에 사장님은 감동을 받으신 모양이었다. 매일 저녁 연습을 하면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나 과자를 하나씩 나에게 건네주기도 하셨다. 그런 사장님의 기대에 부응해 하루빨리 운전면허에 합격해서 사장님의 자랑거리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계속된 탈락이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실내운전연습장에서는 연습만 하면 분명 100점으로 모든 코스를 통과했었다. 하지만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막상 실제 차의 핸들을 잡으니 모든 것이 이상한 것 투성이었다. 그렇다. 나는 응용력이라고는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경우 수업 시간에 배운 공식 그대로만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숫자가 바뀐 문제는 아예 손도 못 대고 찍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실제 차량이 아닌 모의 시뮬레이션 기계로 운전 연습을 하고 면허를 합격하기를 바랐다니.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나의 매우 부족한 응용력이 운전면허시험장에서도 나타난 것이었다. 시험장에서 타게 되는 노란색 차량의 운전대는 내가 학원에서 연습하는 것과는 당연히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핸들감이라던지 차폭감에 대한 응용력이 바닥이었던 내가 시험장에서 만나게 된 노란 차와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꽤나 많이 필요해 보였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하며 무려 다섯 번의 재시험을 응시했다. 심지어 지역도 바꿔가며 이상한 집착을 부려댔다. 하지만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실내운전연습장이 아닌 학원에서 실제 차량을 가지고 열심히 연습한 다음 면허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실내연습장에 비용 전부를 지불한 상태라 학원을 가지 않는 것은 큰 손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학원을 더 이상 갈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창피함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오픈 이벤트로 등록한 다른 수강생들이 한 명씩 운전면허 취득 소식을 전달할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출장, 바쁜 업무, 접수 마감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연명하기에는 이제 더 이상 핑곗거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다섯 번째 탈락을 끝으로 실내연습장으로 향하던 성실했던 발걸음을 끊어 버렸다.




그 이후 몇 번이나 실내운전연습장의 사장님께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셨다. 요즘은 왜 학원에 나오지 않는지, 함께 등록한 다른 분들은 면허에 합격해서 수업을 끝냈는데 면허 취득은 어떻게 되었는지… 하지만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차마 5번이나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갈 수가 없다고, 지방으로 출장을 장기간 가서 갈 수 없다고 죄송하다며 통화를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슬픈 애제자의 모습을 차마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마 이 정도 핑계를 댔으면 사장님도 나의 반복된 탈락 사실을 눈치채셨지 않았을까?



결국 1년이 지난 다음 운전면허학원에 정식으로 등록해 나는 제대로 다시 처음부터 운전을 배워나갔다. 다행히 실내운전연습장에서 차량에 대한 친숙함을 가진 상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학원에서는 기능 시험과 도로 주행을 한 번에 합격하고 운전면허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정말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얼마 전부터 혼자 운전을 시작했다. 나로서는 정말 대단한 발전일 수 없다. 이렇게 힘겹게 면허를 취득하고 운전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사실은 나는 응용력이 지독히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어느 순간 이런 나의 성향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어떤 목적지를 지름길로 가게 된다면 이동 시간이 짧아지게 된다. 하지만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주변의 풍경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같이 짧아지게 된다. 옛날 어른들이 급하게 서두르는 사람을 보고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고 주의를 주고는 했다. 나 역시 성격이 매우 급하기는 하지만 무엇인가를 배울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원칙대로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간다면 그 나름대로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오래 그 길을 걸을 수 있고

조금 더 오래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조금 더 오래 내가 배운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시간과 노력을 오래 투입해야지만 결과가 나오는 일들이 있다. 때로는 자신보다 빠르게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느리게 배우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찾아가며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쩌면 진정 나다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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