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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니 Apr 14. 2016

생각의 나이, 나는 어른이야

빨리 무언가 이루어야만 했던 그 시절의 기록

      

 사람은 고통 속에 성장한다는 말이 맞나보다. 온실속의 화초같던 사람도 군대를 다녀오거나 사회생활을 하면 생각이 바뀐다. 그래서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들었다고 말하고, 여자들은 사회생활을 좀 해봐야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안다고 말한다.

요즘 들어서, 나는 생각의나이라는 것을 주제로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동안 쉼없이 달려왔던 탓일까. 나는 항상 내가 어른이라고만 생각했다. 다 컸다고 생각했고, 나이에 맞게 뭔가를 얼른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스물 세 살때부터 이 증상이 시작된것 같다. 중국 교환학생을 마친 후 한국에 들어온 직후 나는 바로 4학년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사실 중국에 가기 전 2학년때는 이제 학년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서글퍼했다. 그래서 남은 2년동안은 뭔가 빠르게 배우고, 이루어야만 할것 같은 내 안의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그 답답함의 발로 속에 중국에 다녀왔고, 4학년이 되었을 때 시작한 중국어 복수전공 학점을 채우기 위해 1년간은 꾸역꾸역 전공학점으로 21을 채워서 들었다. 졸업학점이 130이었는데, 나는 162학점을 들었다. 학점으로만 따지자면, 장학금으로 두 학기를 세이브하고 한 학기는 공짜공부를 한 셈이었다. 그래도, 나름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를 좋아했던것 같다. 아마 내가 외국어를 좋아하니까 그랬겠지. 






 스물셋이 되자, 4라는 숫자가 주는 어마어마한 부담감 때문에 “나는 이제 어른이야.”라고 결론내려버렸다. 그리고 당장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증명사진을 찍었고 인턴 자리를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이곳저곳 지원해보았다. 그들은 내 안의 스토리를 물어봤고, 내가 뭘 잘하는지. 보유한 자격증은 몇 개나 되는지 등의 세세한 신상정보를 물었다. 운이 좋게, 잠깐이지만 중국에서 인턴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4학년 2학기가 슝 지나가고, 추가학기를 듣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지만 그 때 왜 추가학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6학점 재수강 과목이었다. 딱 두 과목이 C+이었고, 다른 과목처럼 무조건 잘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내 성적표에 옥의 티를 남기기 싫었던거다. 별로 좋아하지 않은 과목이었고, 예상대로 점수는 아주 살짝 올랐을 뿐이었다. 안 들어도 별 문제없을 그런 느낌? 그래서 굳이 회사에서 괜찮다는 최소학점만 넘으면 약간 더 올리려고 추가학기를 신청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4.5 만점이라고 했을 때, 3.5 이상이면 되는것 같은 느낌? 물론 4 넘으면 좋지만 3.5~4.0 사이인데 0.몇 올리려는 노력은 그닥... 특히 3.7이상이면 굳이 재수강 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기회비용이라는게 있는데, 돈과 시간을 생각했을 때 그거 영점 몇 올리자고 다른 기회를 포기하게 될 수가 있다. 게다가 한학기라는 시간. 일주일에 고정된 시간 수업을 들어야하는데, 그 시간이면 인턴을 하거나 여행을 다녀오거나 좀 더 다른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렇게 스물넷의 마지막 학기는 굳이 들을 필요 없었던 수업과 알바(평일+주말)을 뛰며 유럽여행 경비를 마련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정말 가고싶었던 곳에 가보지 않는다면, 취업을 해도 기쁘지 않을것 같았다. 그래서 딱 4개월, 눈 질끈감고 일했다. 한때는 나도 금수저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정말 아무걱정 없이 부모님이 어학연수 보내주고, 1년동안 몇천만원 써도 아무렇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사회에서 일해보니까 돈 번다는게 결코 쉽지 않다는걸 깨달았다. 그 중에 저축하는것도 힘든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매년마다 교육비와 생활비로 돈을 써야하는데, 대학까지 지원해주신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집에 두 명이 대학생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버지 회사에서 어느정도 학자금이 지원되어서 빚은 없었다. 만약, 졸업하고나서 어마어마한 학자금 빚까지 있었다면 정말 우울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저축하는 돈도 결코 많지는 않지만, 그 돈이 고대로 학자금 대출로 나간다면 으악. 생각하기도 싫다.






비록 대부분의 여행자금은 과외와 알바로 충당해야 했지만, 그래도 대학 4년동안 든든하게 지원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뭔가 드디어 목표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적이었지만, 나름대로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고 나의 로망이 담긴 첫 유럽여행이었다. 그곳에 있는 내내 행복했다. 새롭고 창조적인 기분, 도시를 옮길때마다 느껴지는 새로운 에너지가 내게 풍부한 상상력을 주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취업스터디를 시작했는데, 잘 적응을 못했던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는 심각할 정도로 마음이 조급했다. 하루빨리 취업을 하고 싶었고, 하반기까지 가기에 심적으로 너무 약해져있었다. 불안했고 또 불안했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2014년 여름 취업을 했다. 취업과 동시에 졸업을 했고 그 때 나이가 스물 다섯이었다. 그 때도, 스물셋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다. 빨리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3년동안 조급함 속에 갇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어린 나이인데, 왜 그렇게 혼자 어른행세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무언가 빨리 이루지 않으면 안돼. 그 조바심 속에 나는 마라톤을 해야할 거리를 50m 달리기 속도로 질주해버렸다. 






한 번 사회를 맛본 후 다시 취준생이 되어 인생을 설계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조급하진 않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게 맞는 일은 어떤건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단점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쉽게 말하면 1년간은 성장의 시기였다. 생각의 나이라는건 자기가 생각하기에 달린것 같다. 서른 살이 보면 20대가 어려보이고, 스무살 후반에겐 스무살 중반이, 스무살 중반에겐 스무살이 어려보이는거다. 상대적인거지만, 우리는 항상 그 나이가 주는 무게감에 눌려 자꾸 조급하게 생각하고 빨리 행동한다.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야하는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학생때는 대학가려고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 때는 또 다른 관문인 취업을 위해서 달린다. 취업을 한다고 끝난건 아니다. 승진과 혹은 이직의 갈림길 속에 커리어를 찾아 방황한다. 그리고 서른이 될 즈음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그 나이 때 해야만 하는것들과 요구하는 것들이 있지만 적어도 의무감에서 너무 갇혀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차피 내 삶의 주인공은 나고, 선택을 하는 것도 내 자신이다.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거,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다가 자신이 정말 하고싶었던 일을 못했다는 사실. 적어도 그러진 말아야겠다. 내 인생에 주도권은 내가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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