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같은 공간을 쓰지만 머나먼 상대, 직장 동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내가 조직을 바꾸거나 이직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몸담고 있는 팀 사람은 그대로일 뿐이다.
간혹 퇴사자가 발생하면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긴 하지만
고정 인원에서 크게 변동이 생기진 않는다.
직장동료를 친구라고 부를만할 때는 기억해보건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스물다섯의 여름이었다.
나와 또래였고 동기로 입사한 그 친구와는 제법 빠른 시간 안에 친해졌다.
팀이 워낙 수직적인 분위기였기에 동기였던 우리는 메신저로 얘기를 하며
점심시간에는 같이 식사를 하며 대화를 트기 시작했다.
저녁 여섯 시가 넘어서 업무를 넘겨주는 부당한 상사의 지시를
혼자서 끙끙 앓으며 버텼다면 더 힘들었을 텐데
그 친구가 있어서, 어쩌면 상사 욕이나 실컷 하면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었기에
첫 회사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퇴사를 고민했을 때, 그래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동기였으니까.
회사 내 절친이 있다는 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의미라서
회사 일을 좀 더 즐겁게 해 나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직장을 친구 사귀러 가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회사 내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직을 하고 새로 들어간 조직에서도 나와한 살 차이가 나는 후임과
같은 시기에 일을 시작했기에 회사 내 절친이 되었다.
공적으로는 선배였지만, 사적으로는 친구처럼 언니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둘 다 처음 해보는 업무였고,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같이 고민하면서 전우애가 생겼다고 할까.
같은 업무를 했지만, 둘 다 일하는 성향이 비슷해서 트러블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 친구는 내가 그동안 봐왔던 신입사원 치고 손가락에 들 정도로 일을 잘 해냈다.
일 뿐만 아니라 태도가 좋았다.
"나도 저 친구처럼 신입사원 때 해볼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위에서 업무 지시를 받게 되면 어려움이 있어도 싫은 내색 없이 도전하는 정신이 있었고
본인이 모르는 업무가 발생하면 "못하겠다"가 아닌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더 가르쳐주며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 외적으로는 사람을 잘 챙겼다.
소소하게 사탕, 초콜릿 등 누군가 당 떨어지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힘내라면서 작은 선물을 놓고 가기도 하고
남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일을 본인이 솔선수범에서 먼저 하고 베푸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직장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잘 지냈다.
2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며 일의 합을 맞춰오다가
그 친구가 가족 사업을 하게 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타 부서에서 사내공모로 지원하여 들어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 후임과 너무 손발이 맞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다.
성향이 완전히 다른 동료와 같은 일을 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몇 년 전, 나는 운영 업무와 마케팅 업무를 50%의 비중으로 일을 했다.
새로 들어온 그 동료의 직무는 운영 100% 였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그 동료가 하지 않았던 일을 백업하느라 마케팅 업무를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이랬다.
그 동료는 메일, 메신저 보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메신저도 몇 시간 후에나 봤고, 메일도 마찬가지여서 상대편 고객사에서 전화가 오거나 역으로 내게 문의가 왔다. 그렇게 돌고 돌아온 일은 그 동료가 보지 않는 사이, 내가 시급히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 두 번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렇게 쌓이는 업무가 점점 많아져서 결국에는 내 업무조차 업무시간 내에 끝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일처리가 꼼꼼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산을 하거나 숫자와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곧잘 실수가 있었고 그 동료가 실수를 하게 되면 같이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 동료가 쓴 메일이나 결재는 꼭 한 번씩 빨간펜 선생님이 된 기분으로 체크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1년간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가는데, 내가 인내할 수 있는 한계치의 범위도 끝이 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가 너무 몰려서 야근하며 피로에 절어 있을 때
이번에도 제휴사에서 그 동료가 처리한 업무에 대한 문의가 들어왔고
"더 이상은 못 참겠어!!!"라며 예전에 내가 말없이 처리했던 일을 그 동료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돌아온 반응은 "그 일 원래 선임님이 하던 일이잖아요. 바쁘면 서로 알아서 해주는 거잖아요."였다.
그때 나는 돌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도움'이라고 생각해서 했던 일이,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당연'해지고 그 일은 마치 '내 일'로 여겨진다.
결국 그날 그 동료와 싸웠고, 3개월 전부터 퇴사 노래를 불렀던 그 동료는 이번에도 상사에게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고 몇 번 잡아주었던 상사는 그간의 히스토리를 듣고 더 이상 잡지 않았다.
"그 동료는 퇴사했을까?"
아무래도 퇴사는 홧김에 한 소리였는지, 다시 사내 빈 공석을 찾아 사내 공모로 다른 팀으로 넘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는 사내 공모제가 활성화되어있었는데, 지금은 잘못된 선례가 많아서 사내공모제 자체가 폐지되었다.)
성향이 맞지 않는 동료와 일을 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만약 우리가 사적으로만 만났다면, 그냥 카페에서 소소하게 대화만 할 정도로 만났다면
그렇게 신경전을 할 필요도, 서로 싸울 이유도 없었겠지만
'같은 일'이라는 목표를 두고서, 한 사람이 하지 않으면 다른 한 사람이 처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마치 일인 일각을 하든 서로 합이 맞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때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배운 것은,
쉽게 남의 일을 도와주지 말자. 도와줄 때는 자연스럽게 가져가지 말고, 반드시 '네 일'을 이번에 도와주는 거라는 걸 분명히 하자. 할 말은 쌓아두지 말고 하자. 그게 쌓이면 언젠가든 독이 되어 폭발해 버린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제법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는 일적으로 엮이지 않은 타 부서 친구들이다.
동기로 만나거나, 동호회에서 만나거나. 일적으로 엮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로써 받은 스트레스를 타 부서 동료와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물론 같은 팀 내에서도 친한 동료를 만들 수 있다.
심지어 바로 내 후임이었던 첫 번째 동료와는 그 친구가 퇴사를 한 이후에도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며
매년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건 분명 성향 차이의 문제다.
서로의 성향이 잘 맞아야 하고, 서로 일하는 스타일을 이해하고 맞춰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같은 업무를 맡게 된다면 둘이 하는 업무를 100% 이해하고, 모든 것을 공유해야 오해가 없다.
서로가 어떤 업무를 하고 있어서 지금 이만큼의 시간이 든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 업무에 대해 도와줄 수 있고, 반대로 도움을 받았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여유로워질 때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확실한 건, 학창 시절일 때보다 직장에서 친구 찾기가 제법 어렵다는 점.
그나마 신입사원일 때, 동기라는 이름으로 묶인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서른이 넘어갈 즈음, 점점 사회에서의 친구 찾기는 소원해져만 간다.
가끔은 외로워서 회사 내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은 친구가 필요하다가도
"회사 다니는 게 뭐 다 그렇지. 괜히 친해져 봤자 이상한 소문만 나돌아" 하면서
동료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